김대중 대통령이 1월19일 “시민단체의 선거활동 보장 요구는 국민의 뜻으로 보아야 하며 이를 법률로 규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김대통령은 “시민단체의 선거활동 금지는 권위주의적 발상에 기초한 것이다. 우리 대중들은 인터넷 등 모든 수단을 다 갖고 있고 사이버 공간을 통해 모든 것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법률로 이를 규제할 수는 없으며 현명한 국민의 뜻을 믿고 맡겨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한나라당은 “법치주의를 파괴하고 포기하겠다는 것이며, 법과 질서의 최종 수호자인 대통령으로서는 할 수 없는 발언과 상황인식”이라고 맹비난했습니다. 자민련도 한나라당과 같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시민단체들은 위의 상반된 견해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말이 시민단체들의 활동에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한걸음 더 나아가 곱씹어 봐야 할 게 있습니다. 시민단체들의 낙천·낙선운동은 자정능력을 상실한 정치권을 시민의 힘으로 바꾸자는 것입니다. 몇몇 인사들에 대해 국회의원을 못하게 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왜곡된 정치풍토를 바로 잡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여야 합니다.

낙천·낙선운동은 궁극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한 과정입니다. 시민단체들은 이를 위해 참정권 행사를 제한하는 선거법 개정을 촉구해 왔고, 여론의 지지에 힘입어 정치권도 개정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습니다. 공천과정에서 시민단체들의 의견을 참조하겠다는 반응도 얻어냈습니다. 학계 시민단체 언론계 법조계 인사가 참여하는 선거구획정위도 구성됐습니다.

과정의 절반은 이끌어 낸 셈입니다. 이같은 과정이 필요했던 것은 합법적인 방법으로 좋은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것입니다. 국민의 참정권 행사를 제한하는 선거법을 바로잡기 위해 시민단체들은 구속되는 것도 불사한다는 각오를 천명했고, 여론의 지지에 힘입어 그 성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지요. 이 역시 하나의 과정입니다.

절반의 성공을 거둔 과정이 정치풍토를 바꾸는 온전한 성공이 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넘어야 할 산들이 많습니다. 그 산들은 처음 넘었던 산들보다는 넘기가 한결 쉬울 것입니다. 정치권이 여론에 사실상 항복했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입니다. 잘못된 정치풍토 바꾸기라는 궁극의 목표 달성을 위해 수단의 정당성도 확보해야 합니다. 수단의 정당성없이 이뤄진 결과는 후유증이 남을 수 있습니다. 후유증은 시민단체의 장래 활동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법이 지켜지지 않으면 혼돈과 혼란이 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혼돈과 혼란을 막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과정인 법이 제대로 개정돼야 합니다. ‘시민단체의 선거활동을 법률로 규제할 수 없다’가 아니라 법률로 이를 명문화해야 합니다. ‘이현령 비현령’을 막는 것입니다. 지연 혈연 학연으로 얼룩졌던 우리의 선거풍토, 보스 정치의 폐해 등을 되새기고 표만을 의식한 무분별한 발언 등도 경계해야 합니다. 이 또한 시민의 힘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총선시민연대가 연대에 들어오려는 단체에 대해 검증을 하는 것이나, 대학생들의 직접적인 연대 참여를 완곡히 거절한 것은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부작용 등을 고려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야가 더 많은 의석을 확보하기 위해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식 선거전을 펼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삐걱거리는 2여 공조, 가열되는 여야간의 흠집내기 공방 등이 이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시민단체의 활동에 편승한 경쟁후보간의 마타도어도 그 어느 선거 때보다 기승을 부릴 것입니다. 여기다 급조된 단체들이 낙선운동을 하겠다고 나서는 형국입니다. 상당수는 그들만의 이익을 위해 흑색선전으로 여론을 호도하려 할 것입니다. 이같은 분위기는 이번 선거가 극도로 혼탁할 것임을 짐작케 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정치풍토 바꾸기라는 궁극의 목표가 국민(유권자)의 참여에 의해 이뤄진다는 점입니다. 시민과 함께 정치권과 정치인의 일거수 일투족, 한마디 한마디를 감시하고 분석해 정확한 정보를 끊임없이 제공해야 합니다. 유권자가 올바른 결정을 하도록 도와주는 것이자 투표에 적극 참여케 하는 것입니다. 시민들의 참여없이는 운동으로 끝날 뿐입니다.

정재룡·주간한국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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