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긴급자금 지원사태를 촉발시킨 종금사 문제가 2000년 새해들면서 대우 환매사태 여파로 다시 불거져 나와 자칫 종금사를 상대로 한 예금고객들의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1997년의 종금사문제와 2000년의 종금사문제는 그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1997년 당시의 종금사는 외화부채, 특히 단기 외화부채 상환 불능에 빠져 도산한 것이지만, 지금의 종금사들은 외화부채와는 상관없이 국내 대기업인 대우그룹에 대한 콜자금(단기자금)지원에 따른 일부 종금사의 유동성 악화로 이어진 것이다. 대우그룹의 유동성 위기에 따른 파장의 결과이기도 하다.

1997년의 경우와 같이 최근의 나라종금 사태는 국가위기로까지는 진전되지 않을 전망이지만, 대우채 환매를 앞두고 나타났기 때문에 금융시장의 혼란을 가중시킬것으로 보인다. 즉 문제가되는 것은 2월8일 대우채 환매가 95%까지 허용됨에 따라 거액의 자금이 투신사 및 증권사 등에서 빠져나감에 따라 또 다른 금융기관이 유동성 위기에 직면하지 않을까 하는 연쇄도산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비하여 정부는 약 30조원에 이르는 대우채 환매에 대비하기 위하여 한국은행 등을 통한 유동성 공급에 차질이 없도록 준비를 하고 있고 종금사 문제에 신속한 대응을 하기 위해 나라종금을 영업정지시킨 것으로 보인다.


브릿지콜이 발단, 유동성 악화로 이어져

일반적으로 종금사는 해외로부터 외화를 차입하여 이를 국내기업 등에 장기로 대출해주는 금융기관이다. 그리고 여유자금이 생기면 기타금융기관에 단기자금(콜자금)을 빌려주기도 한다. 1997년의 종금사 위기는 종금사들이 경쟁적으로 해외에서 단기자금을 조달하여 이를 기업에게 장기로 대출한 것이다.

그 결과 단기 외화부채가 누적됐고 이는 모두 국가채무로 변하게 되어 1997년 IMF사태 직전에 우리나라의 총외채 규모가 약 1,500억달러를 넘어서게 됐다.이러한 상황하에서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에서 먼저 외환부족사태를 맞았으며, 그 여파로 단기자금을 대출해 준 외국금융기관들이 종금사로부터 단기외화자금을 회수함에 따라 우리나라도 결국 1997년 11월 외환부족사태에 직면했던 것이다.

그러나 2000년 초 현재의 종금사 상황은 1997년의 경우와는 달리 단기외화부채의 누적이 아니라 종금사가 대한투자신탁의 여유자금(단기 콜자금)을 빌려 이를 대우 계열사에게 지원한 것(브릿지 콜)이 발단이 되어 1999년 8월 대우그룹의 유동성 위기 이후로 문제가 된 것이다.

즉 나라종금과 대한투자신탁과의 콜거래가 불분명하게 전개되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태인 것이다. 1999년 8월에 대우의 유동성 위기 사태 여파로 은행의 경우 이미 대손충당금 적립 등을 마친 상황이지만, 이번 나라종금과 대한투자신탁의 대손 주체는 확실한 구분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나라종금이 영업정지를 당한 이유는 나라종금과 대한투자신탁이 대우계열사에 지원했던 단기자금거래 1조원이 모두 나라종금이 지원한 것으로 소문이나돌면서 나라종금의 부도가능성에 따른 예금인출이 급격하게 이루어 졌기 때문이다.

나라종합금융과 대한투자신탁은 1999년 7월 대우계열사에 지원된 1조원 규모의 콜(금융기관간 단기자금거래)자금 회수 문제를 놓고 심각한 마찰을 빚어 왔다. 나라종금 예금주들은 이 다툼의 파장을 우려해 예금을 빼 내갔고, 나라종금은 자율적인 해결이 어려워지자 대한투신을 상대로 소송을 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하기도 했다.

두 회사의 다툼은 대한투신이 1조원의 콜자금을 대우캐피탈에 제공하면서 나라종금을 거치는, 이른바 브릿지(중개) 콜로 운용한 데 따른 것이다. 이후 대우캐피탈을 비롯한 12개 대우계열사가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대상으로 선정되면서 채무가 동결되었다. 이때부터 1조원의 콜자금을 누가 1차적으로 상환해야 하느냐를 놓고 마찰을 빚어 왔다.

나라종금은 콜자금을 받아쓴 곳이 대우캐피탈과 대우계열사인 만큼 자금상환의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 회사는 당시 대한투신이 지정한 조건대로 대우계열 금융회사인 대우캐피탈과 다이너스클럽코리아에 자금을 건네 줬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대한투신은 콜자금을 1차로 빌려준 곳이 나라종금이고 이 회사 발행어음을 담보로잡은 만큼 무조건 상환해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금감위, 2개 종금사에 5,000억 긴급지원

금융감독위원회는 나라종금의 영업정지 사태가 다른 종금사로 파급될 것으로 우려됨에 따라 2개 종금사에 대해 은행을 통해 5,000억원을 긴급지원하기로 했다.

또한 은행이 2개 종금사에 각각 3,000억원과 2,000억원을 지원하게 했다. 즉 개인들이 예금을 인출해도 종금사들이 자체 유동성으로 충분히 대처할 수 있고 필요하면 은행의 자금 지원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종금사의 유동성 위기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나라종금을 제외한 나머지 9개 종금사는 대우손실(여신, 채권)을 지금 모두 반영해도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 최저 6.5%이상이어서 나라종금(-7.1%)과는 차별화되고 있다.

또한 종금사들이 보유한 대우채권 5,800억원 가운데 4,700억원을 나라종금이 갖고 있어 나머지 종금사들은 피해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2월8일 투자신탁회사들의 대우채권 환매비율이 95%로 확대되는 시점을 앞두고 자칫 금융회사들의 연쇄적인 유동성부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지만 정부의 환매 및 종금사에 대한 확고한 대책의 영향으로 나라종금이 영업 정지된 첫날인 1월22일의 경우 9개 종금사의 예금 잔액은 전날보다 300억원 가량늘어난 것으로 밝혀져 앞으로 종금사 위기는 대우채 환매 사태의 진정과 함께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천일영·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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