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봉수가 일약 신데렐라로 올라선 다음에도 바둑계 주도권이 그에게로 한꺼번에 넘어온 건 아니다. 오히려 그가 19세 명인에 올라서 바둑계의 오랜 지론이던 ‘40대 정점론’을 졸지에 뭉개버린 다음에도 서봉수가 없었던 2년전과 다름없이 바둑계는 돌아가고 있었다.

챔프가 된 후 1년동안 서봉수는 여타 기전에 얼굴을 거의 내밀지 못한다. 그 1년이면 가장 서봉수로서는 화려한 나날을 보낼 때라고 봐야한다. 어디를 가나 명인으로 칙사 대접을 받을 것이다. 최소한 새로운 도전자가 나타날 때까지는 천하가 다 자신의 발굽아래 놓일 때.

뿐만 아니라 바둑도 무척 세어지기 마련이다. 비록 판정 시비가 일어난 끝에 챔피언 벨트를 따낸 ‘무자격’챔피언일지라도 같은 상대와 리턴매치를 할 적에 당당히 이기는 경우를 보아오지 않았는가. 그 사이 벨트의 관록이 생긴다는 얘기다.

그런데 서봉수는 승단시합에서는 승승장구를 했으나 다른 기전에서는 본선 물고기가 되기조차 쉽지 않았다. 그 당시 같은 입단 동기인 양상국이나 이듬해 입단한 장수영 이동기 등도 그만한 성적은 올렸으니 꼭 서봉수만 유독 눈에 띄는 신병은 아니었던 것이다.

달콤한 명인의 시절은 금세 흘러갔다. 1년이 흘러가고 어느새 서봉수가 도전자를 맞이해야 하는 시절이 돌아와 버린다. 세월은 무진장 빨리 흘러간 것이다.

73년의 상황은 다시 4인방의 시절이었다. 최고위 왕위는 김인에게, 국수는 윤기현에게 들어가 있고 명인은 서봉수의 것이다. 그리고 신설기전인 최강자전은 다시 조남철의 수중에 들어갔고, 패왕전은 주최자의 부도로 중단되어 버렸다.

타이틀홀더 이외에는 역시 정창현이 힘을 썼고 그즈음 조훈현이 서서히 본령을 과시하기 시작하고 또다른 엘리트 유학생 하찬석도 기세가 대단했다.

70년 군문제로 귀국한 하찬석은 제대와 더불어 균형 잡힌 바둑으로 각광을 받는다. 좀 있다가 생기는 일이지만 국수와 왕위에 연달아 도전권을 쟁취하는 등 김인 주도의 바둑계 판도도 서서히 복잡해지는 단서는 하찬석으로부터다.

따라서 명인을 따냈음에도 불구하고 팬들이나 서봉수를 명인으로 불렀지 바둑가에서는 여전히 찬밥신세였다. 한마디로 아직도 서봉수를 명인급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솔직한 현상이었다.

제5기 73년의 명인전 리그는 용광로같은 열기를 뿜고 있었다. 아닌게 아니라 최약체 챔프 서봉수가 기다리고 있으니 도전권 자체가 챔프라는 인식이 상당히 유포된 까닭이었다.

조남철 김인 윤기현 정창현 강철민 조훈현 유건재 등이 리그멤버였다. 유건재를 빼고 나면 어느 한명도 만만히 볼 수 없는 챔프급 도전자후보였다. 리그전을 시작하자마자 전승자가 한명도 없는 등 실로 불꽃튀는 리그전 양상이었다.

결국 정창현으로 낙점된다. 5승무패로 선두를 달리던 정창현은 4승1패의 강철민에게 덜미를 잡혀 각기 5승1패로 공동 선두가 된다. 따라서 동률재대국 끝에 정창현이 드디어 도전권을 따내는 것이 쉬울까, 20세 서봉수에게 도전기를 벌이는 것이 쉬울까, 따라서 전반적인 분위기는 역시 서봉수의 1년천하를 예상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크게 3가지였다. 첫째 명인의 경혐이 일천하여 운으로 딴 타이틀이란 점, 둘째 도전자 정창현이 검증된 강자로서 파죽지세로 올라와 도전자가

되었다는 점, 셋째 명인전이 해마다 챔프가 방어를 해낸 적이 없는 전통이 있다는 점 등이다. 하나같이 그럴싸한 이유들이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뉴스와 화제

ㆍ조훈현, 예내위 돌풍 잠재우다

1월 17일 한국기원에서 벌어진 제43기 국수전 도전1국에서 조훈현은 이창호를 이기고 승승장구하던 예내위를 꺽고 먼저 1승을 올려 국수 방어에 1승을 남기게 되었다. 이날 대국에서 조9단은 난전을 유도하는 예9단의 작전에 말려 한때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예9단의 결정적 실착을 틈타 승기를 잡았다. 도전 제2국은 31일 벌어지며 인터넷으로 생중계될 예정이다. 인터넷 주소는 www.baduk.co.kr

ㆍ신라면배 한국선두

제1회 신라면배에서 한국이 3승을 올려 선두에 나섰다. 2차 대회까지 치러진 현재 한국은 조훈현이 일본에 강적 요다 노리모트를 꺽는 수훈으로 3승 2패를 달리고 있어 일본 중국의 2승2패, 1승2패를 앞지르고 있다. 남은 기사를 알아보면 한국은 조훈현 유창혁 이창호, 일본은 야미다 조선진, 중국은 창하오 마샤오춘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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