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굴지의 대기업 계열의 모 신용카드사는 1998년 5월 경쟁사에 대항하기 위해 캐시백 제도를 도입하면서 판촉 비용이 무려 15배나 늘었다. 이 서비스 개시 전인 1997년에는 연간 10억원에 불과했던 판촉 비용이 시행 2년만인 지난해에는 무려 150억원으로 급증한 것이다. 2년간 약 10% 가량의 회원수 증가를 감안하더라도 가히 폭발적인 증가가 아닐 수 없다.

이 회사의 판촉 비용이 급증한 이유는 간단하다. 현금 환원(Cash Refund) 때문이다. 누적 마일리지에 따라 회사에서 정해 놓은 사은품만 제공하던 시절, 각 기업의 그럴싸한 광고와 달리 고객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극히 미미했다. 모 카드사 관계자에 따르면 고객들이 실제로 찾아가는 사은품 규모는 전체 누적액의 20~30%에 불과했다.

한 예로 모 정유사가 예전에 고객 사은용 경품 비용으로 연 50~60억원을 책정했는데 실제로 지급된 액수는 10억원 내외에 그쳤다. 상당량의 적립 포인트가 회사가 정한 지급 수준에 미달돼 그대로 사장돼 버리곤 했다. 경품 자체가 실속이 없어 소비자들이 포기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런 연유로 소비자 보호단체에서는 “쓸만한 경품을 받으려면 집 한채를 날리거나 20년은 걸려야 된다”며 “경품 행사는 소비자를 우롱하는 처사”라는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형식적인 누적 포인트, 그리고 고만고만한 경품이 소비자들에게 어떤 매력도 주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에 유행처럼 번져가고 있는 캐시백 제도는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분명 한단계 진일보한 서비스임에 틀림없다.


계열·일반 가맹점 적립포인트 달라

그러나 신용카드사나 제휴카드사가 실시하고 있는 현행 캐시백 서비스를 자세히 분석해 보면 소비자들이 쉽게 알아내기 힘든 ‘함정’도 없지않다. 국내 신용카드사는 예외없이 자사 계열 가맹점과 일반 가맹점으로 포인트 적립을 구분해 계산한다. 삼성카드의 경우 자사 계열사 위주로 구성된 보너스 클럽 가맹점의 경우 보너스 포인트를 구매액의 3~5% 가량을 지급한다. 그러나 일반 가맹점의 경우에는 1%를 넘는 경우가 드물다.

일반 소비자들이 보너스 클럽 가맹점을 이용할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생활에 꼭 필요한 소비는 대개 E마트와 같은 일반 가맹점에서 이뤄지게 마련이다. 더구나 적립된 포인트의 사용도 주로 계열 보너스 클럽 가맹점에서만 가능하도록 규정해 놓았다.

LG카드도 LG생활건강(7%), LG정유(리터당 15원) LG홈쇼핑(5%) LG전자(3%) 등 자사 계열사 가맹점은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고 적립 포인트도 비교적 높은 편이다. 비계열사가 주류를 이루는 일반 할인포인트 가맹점은 대부분 호텔, 콘도(3%)류의 숙박업소나 택배서비스, 안경점, 제화점(이상 5%) 등으로 고작해야 일년에 한두번 이용 할까말까하는 곳이다. E마트와 같은 대형할인점의 포인트 적립포인트는 1%에도 못미친다. 겉으로는 수만개의 가맹점을 보유하고 있다고 선전하지만 실속을 별로인 셈이다.

또 하나. 일반 소비자가 캐시백 포인트로 10만원의 현금을 타내려면 과연 어느 정도 신용카드를 사용해야 될까. 대기업 계열사에서 일하는 K과장(35)의 경우를 예를 들어 보자. K과장의 가족은 초등학교 다니는 두 자녀와 전업 주부인 부인을 포함해 총 4명. 25평 아파트에서 살고 있으며 국민패스카드를 사용한다.


광고만 요란, 소비자 해택은 미미

K과장은 매일 서울 영등포구 구로동에 있는 아파트에서 종로에 있는 회사까지 자동차로 출퇴근하는 오너 드라이버다. 왕복 35㎞ 거리여서 한달 평균 약 120ℓ의 휘발유를 소비하고, 월 15만원 상당의 유류비를 카드 결제한다.

카드사로부터 리터당 20원의 보너스 포인트가 주어져 유류비로 인한 월 포인트 적립금은 2,400원 정도다. 여기에 K과장의 부인이 신용카드 가맹점인 E마트에서 매달 식료품비로 35만원 가량을 쓴다.

이 곳에서는 1,000원당 3원이 적립되기 때문에 매달 적립금은 대략 1,050원. 여기에 외식비를 매달 15만원으로 잡으면 적립 포인트는 600원(1,000원당 4원)이 추가된다. 이 밖에 카드사의 가맹점에서 의류 등 기타 5만원 상당의 물건을 산다고 가정할 경우 다시 700원(1,000원당 14원)의 적립금을 추가로 받는다. K과장 개인의 술값이나 밥값을 빼더라도 그의 가족이 한달간 이 회사의 카드로만 결제하는 금액은 총 70만원이 되고 적립 포인트는 4,750원이다.

K과장이 이렇게 모은 자신의 적립 포인트로 10만원의 현금을 신용카드사로 부터 받으려면 약 1년9개월간, 총 1,470만원 어치를 구입해야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사이에 다른 변수가 생겨 액수가 가감될 수는 있다 하더라도 결코 적지 않은 기간이고 금액이다. 대신 신용카드사 입장에서는 거의 2년간 대기업 계열사 과장급 한 가족의 외부 지출을 거의 독점할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모 신용카드사 관계자는 “캐시백은 단골 고객을 장기적으로 유치하기 위한 새로운 마케팅 기법의 하나”이라며 “회사의 요란한 광고와 달리 소비자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그리 많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서비스 비용, 결국은 소비자에게 돌아와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게 있다. 캐시백 서비스로 발생하는 비용 분담 문제다. 현재 신용카드사가 실시중인 캐시백 제도의 비용은 대개 카드사와 가맹점이 나눠 분담한다. 그러나 실제 신용카드사가 부담하는 비율은 전체의 20~40%에 불과하다.

대부분 가맹점들에게 이 비용을 떠맡긴다. 일반 가맹점의 입장에선 신용카드사 회원들을 유치하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카드사의 판촉 비용까지 떠맡는 것이다. 이것은 곧 제품 가격의 인상이나 질 저하 가능성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기업으로 하여금 신제품 개발이나 서비스 개선은 뒷전으로 밀어놓고 오직 손님을 끌어들일 유인책에만 골몰하게 만들 위험도 크다. 물론 그 피해는 소비자에게 고스란히 돌아오게 된다.

삼성경제연구원의 장영 수석연구원은 “캐시백은 자칫 기업이 제품이나 서비스가 아닌 인센티브로 승부하게 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며 “인센티브로 뺏은 고객은 인센티브로 뺏기게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기업은 인센티브 경쟁에, 소비자는 인센티브 찾아 나서기에만 골몰하는 악순환에 빠질 위험이 크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면 캐시백 서비스는 이전의 어느 제도보다 유리한 것만은 틀림없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이용하는냐에 따라 약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독이 되기도 한다. ‘감나무 밑에 누워도 삿갓 미사리를 대어라’라는 속담이 알려주듯 작은 소비 하나라도 철저하게 ‘득실’을 따져보는 것만이 올바르고 건전한 소비로 가는 길이다.

송영웅·주간한국부 기자


송영웅·주간한국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