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중략)…세 영이 히브리 음으로 아마겟돈(armageddon)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요한묵시록( 성경) 16장 13~16절)

한마디로 세상 마지막 날 마귀 휘하의 동쪽 왕들과 천상 군대가 아마겟돈에서 최후의 전쟁을 벌인다는 내용이다. 기독교 문화권인 서양에서는 이 구절을 인용해 원래 고유 지명인 ‘아마겟돈’을 ‘최후의 전장(戰場)’이라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아마겟돈을 ‘최후의 전장’으로 본다면 한국의 은행들도 편을 갈라 속속 아마겟돈으로 모여들고 있다. 전국의 22개 은행들이 예금보호 범위 축소를 둘러싸고 자산 규모도 크고 주가도 높은 소위 ‘우량은행군’, 주가는 낮지만 자산규모는 큰 ‘기존 대형은행군’, 주가와 자산이 모두 열세인 ‘후발·지방은행군’으로 나뉘어 최후의 일전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우량·대량·지방 세집단으로 나뉘어

세 집단은 예금자 보호범위의 축소를 둘러싸고 완전히 상반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우량은행군의 경우 보호범위 축소를 환영하는 반면 이미 고객의 동요를 체감하고 있는 후발·지방은행군은 시행 연기를 요구하고 있다. 기존의 대형은행군들은 겉으로는 중립을 고수하고 있지만, 보장범위 축소가 자신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저울질하고 있다.

현재 가장 바쁘게 움직이는 곳은 후발·지방은행군. 이들은 정부와 지역 정치권을 상대로, 원리금을 전액 보호해주는 현행 제도의 연장이나 보호한도의 확대를 요구하며 치열한 로비를 펼치고 있다.

일부 지방은행의 경우 예금인출사태를 경험한 뒤 “예금자 보호제도 손질만이 금융시장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특히 지난해 말 일본 정부가 예금자 보호제도 적용시한을 1년 연장키로 결정한 것과 4.13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민간의 로비에 약해질 수 밖에 없는 점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우량은행군은 “예금보장범위 축소는 금융구조조정의 핵심이며, 이를 연기하라는 요구는 경쟁력 없는 금융회사들의 안이한 희망을 반영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김정태 주택은행장은 “보장범위가 축소될 경우 금융권이 일대 혼란에 빠진다는 일부 주장은 근거가 없다”며 “일부 금융기관과 예금자를 위해 이미 예고한 제도를 손질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정부 역시 아직까지는 예금보장범위의 축소를 예정대로 추진할 방침이다. 이헌재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2일 청와대 출입기자단과의 회견에서 “올해 말까지만 예금이 전액 보장되고 내년부터는 2,000만원 까지만 보호되는 예금자 보호법을 개정해 달라는 건의가 있으나, 이는 예금자 및 금융기관의 모럴 헤저드(도덕적 해이)를 초래하고 대외 신인도를 떨어뜨릴 우려가 있다”고 반대 입장을 명백히 했다.


예금보장범위 축소 놓고 치열한 로비전

각 은행들은 예금보장범위 축소를 놓고 치열한 로비전을 벌이는 한편 다른 쪽으로는 보장범위 축소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대책을 마련중이다. 특히 지방은행의 경우, 원리금이 2,000만원을 초과해도 예금보장 혜택이 주어지는 이색 상품을 개발하거나, 은행에서는 보기 드문 경품행사로 예금을 끌어모으고 있다.

전북은행의 경우, 3월부터 고객 예금이 2,000만원을 넘어서면 다른 명의의 계좌로 자동 이체되는 신상품을 판매할 예정이다. 이 상품은 가입한도가 2,000만원 이하로 이자가 붙어 원리금이 2,000만원을 넘으면 초과 금액이 가족 명의의 다른 계좌로 자동 이체된다. 요컨대 한 계좌의 예금액이 2,000만원을 넘지 않도록 만들어 원리금을 100% 보호한다는 것이다.

대구은행은 대출연계 상품을 내놓는다. 예금액이 2,000만원을 초과하는 시점에서 예금 불입액의 일정비율을 무보증으로 신용 대출, 고객이 보장받을 수 없는 금액을 최소화한다.

대구은행은 또 2월말까지 김치냉장고, 금강산 여행권, 프로젝션TV 등을 매일 경품으로 내걸어 예금을 끌어모으고 있다. 대구은행 관계자는 “경품행사로 1월 한달동안 예금이 1,000억원 이상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다른 지방은행들도 2,000만원 이상 정기예금에 대해 2~3개 은행별로 자동분산 예치할 수 있는 공동 제휴상품의 개발을 검토중이다.

우량은행군과 기존 대형은행군도 금융권을 전전하는 자금을 끌어모으기 위해 점포망을 확충하는 한편 ‘큰 손’고객 유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주택은행은 올해안에 소매금융 위주의 소형점포를 100개 신설, 연말에는 전국 지점수를 628개로 늘릴 예정이다. 국민은행 역시 올해에 14개의 점포를 신설할 계획이며 한미, 하나은행도 각각 10개와 5개의 점포증설을 준비하고 있다.

아마겟돈에서 벌이는 은행들의 마지막 전투에서 누가 최후의 승리자가 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조철환·주간한국부 기자


조철환·주간한국부 ch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