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동(樂園洞)!

이름이 담고 있는 뜻 그대로 지상낙원으로 불리는 낙원동은 1914년 일제가 우리 국토를 유린하면서 창지개명(創地改名)할 때 한성의 중앙부인 교동, 탑동, 어의동 일부와 정선방의 한동, 관인방의 원동 일부를 떼내 합치면서 시내의 중심인데다 주변에 절골 및 탑골공원이라는 낙원지가 있다며 붙인 것이 오늘날의 낙원동 유래다.

낙원동 241번지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양의(洋醫)인 박계양의 계양병원이 있었던 곳이고 17번지는 우리나라 최초로 종두(種痘)를 실시해 천연두를 예방한 지석영 선생의 생가터이기도 하다. 당시의 계양병원은 흐르는 세월과 함께 개성빌딩으로 바뀌었으나 소문난 추어탕집과 값싼 해장국집으로 여전히 유명세를 유지하고 있다.

계양병원이 유명해진 데는 다른 이유도 있다. 병원도 병원이었지만 홍명희, 정인보, 여운형 등 대한제국 말엽의 독립운동가들이 은밀히 모였던 밀회 장소였던 것이다. 특히 1909년 매국노 이완용이 이재명으로부터 피격을 당하자 박계양 선생은 “나라를 팔아 먹고 친일행각을 한 이완용의 죄는 결코 용서할 수 없으나 인술을 펴야 하는 의사인 이상 치료해줘야 한다”며 끝까지 이완용을 돌보아준 일화도 있다.

낙원동은 또 서울 북촌과 가까운 관계로 궁궐과도 관련이 깊었다. 58번지에는 조선조 숙종때 희빈 장씨의 대빈궁이 있었으며, 교동초등학교는 옛날 인조의 사저인 어의궁 자리에 세워졌다. 이 어의궁을 중심으로 생긴 낙원동 시장은 종로 이북지역의 가장 큰 시장 가운데 하나로 꼽혔다.

대한제국 융희 3년에는 한성시장 조합이 설립될 정도로 큰 시장을 이룬 이곳 낙원동 시장(옛 어의동 시장)은 오늘날에도 서울 상업지역의 중심지를 이루며 번창하고 있다.

284번지 도로위에 건축된 낙원상가 2층은 전국 최대규모의 악기종합상가. 전국 모든 악사들이 일자리를 찾아, 악기를 구하기 위해, 관련 정보를 얻기 위해 모여드는 집합장소이기도 하다. 1970년대 이후 80년대, 그리고 지금까지도 전국의 악사들이 새벽 인력시장을 형성해 그날 그날의 일자리를 찾는 모습도 이 곳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이 곳의 독특한 문화와 전통에 끌린 주민들은 최근 인사동의 번창과 돈의문길의 국악로 행사들에 고무된 듯(?) 지역발전 방안을 활발하게 논의했다. 그리고 낙원동을 전국에 알릴 수 있는 길을 모색했다. 그 결과 작년 10월 17일 낙원동길이 ‘일요일 차없는 거리’로 지정됐고 ‘명품악기_떡전거리 문화축전’도 무난히 열 수 있었다. 이 행사는 앞으로도 계속된다.

특히 일요일 차없는 거리 행사는 세계 희귀동물 전시, 전통악기 전시 및 연주, 재래식 전통 떡 만들기 재현, 한과 만들기, 전통음식 만들기 등을 중심으로 노래자랑, 대학 동아리 공연, 대중가수 초청 공연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잔치판이 되고 있으니 그야말로 땅이름처럼 ‘낙원’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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