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포드'

노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아르바이트가 있다거나, 정신과 의사에게 상담하러 가는 것이 예사롭다는 미국의 이야기는 머잖아 우리의 현실이 될 거라고들 한다. 그만큼 현대인들은 속내를 털어놓을 대상과 시간의 부족을 느끼고 있다. 그러고 보면 수다로 상징되는 한국 아줌마의 문화가 각광받을 날도 머지 않은 것 같다.

로렌스 캐스단 감독의 ‘멈포드·Mumford’(12세 이용가 등급, 브에나비스타 출시)는 정신과 상담실을 중심으로 갖가지 사연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평화로워 보이는 작은 마을이지만, 의외로 고독, 성적 불만, 불안 등으로 시달리는 주민이 적지 않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비밀을 듣게 되는 젊은 정신과 의사, 그에게도 남모를 사연이 있다는 식으로 아기자기하게 이야기가 펼쳐진다.

멈포드라는 작은 마을로 이사온 지 넉 달 밖에 안되는 멈포드(로렌 딘)라는 젊은 정신과 의사의 사무실은 어느새 마을 사랑방이 되었다.

멋진 근육질 남자로 변신하여 글래머 걸들의 유혹을 받는 상상을 하는 뚱보 약사 헨리, 이혼 후 무기력증에 시달리고 있는 소피(호프 데이비스), 끊임없이 물건을 사들이지만 포장도 풀지 않고 쌓아두기만 하는 상류 사회 부인 알시아(메리 맥도넬), 빼빼 마른 몸매에도 불구하고 패션 잡지 모델처럼 되어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리는 바네사. 이들은 멈포드에게서 이렇다할 처방을 듣지는 못하지만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고 한다.

전세계 모뎀 시장의 23%를 장악하고 있는 벤처 기업을 이끌고 있는 청년 사업가 스킵(제이슨 리)마저 멈포드에게 친구처럼 지내며 상담을 해달라고 제안한다. 주식 값이 떨어질까봐 공개적으로 사무실을 드나들 수 없다는 것.

돈만 보고 덤비는 여자들 때문에 여성 로봇을 만들어 대리 만족을 하고 있는 스킵과 친구가 되면서 멈포드는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던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다. 멈포드 자신은 정신과 수업을 받은 일조차 없는 국세청 직원 출신이라는 것.

나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주고 조언을 해주는 정신과 상담의의 고민은 누가 들어주는가. 수많은 신도들의 고백을 들어야 하는 신부님의 고뇌만큼이나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결국 우리 모두가 둥그런 원의 한 점이 되어 서로의 이야기를 연쇄적으로 들어주면서 격려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이상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물론 코미디인 만큼 영화의 해결은 훨씬 극적이고 황당하지만.

직접 각본을 쓰는 것으로도 유명한 로렌스 캐스단은 필름 느와르풍의 요부 이야기 ‘보디 히트’로 감독 데뷔하기 전 ‘스타 워즈’ 시리즈와 ‘보디 가드’ 같은 세계적인 흥행작의 대본을 써왔다.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관심을 보이고 있어서 ‘실버라도’ ‘와이어트 업’과 같은 서부극에 손을 대는가 하면, ‘그랜드 캐년’ ‘우연한 방문객’ ‘더 빅 칠’ 같은 잔잔하고 감동적인 영화들, ‘프렌치 키스’ ‘바람둥이 길들이기’ 같은 아웅다웅 코미디에도 일가견이 있음을 과시하고 있다. ‘멈포드’는 감동과 재미를 함께 추구한 소품이다.

옥선희·비디오 칼럼니스트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