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수도권 전진배치…득표력은 의문

여의도를 바라보는 국민의 희망 중 하나는 ‘정치의 노령화’ 탈피. 보스정치에 순치되고, 정쟁을 위한 정쟁에 물든 구태 정치권을 ‘젊은 피’로 물갈이해야 한다는 희망이다.

최근 실시된 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유권자의 압도적 다수가 신인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선 중진의원과 참신한 정치신인이 맞설 경우 후자를 찍겠다는 응답이 79.6%에 달했다. 반면 중진의원에게 투표하겠다는 응답은 11.8%에 그쳤다.

국회의 노령체질을 개선할 주역은 386세대를 비롯한 30~40대 ‘젊은 피’일 수 밖에 없다. 과연 이번 4·13총선에서 ‘젊은 피 돌풍’이 일어날 수 있을까. 판단기준은 두 가지. 우선 각 당에서 공천한 젊은 정치신인과 무소속 신인이 얼마나 되는가를 살펴보면 된다. 또하나는 이들 젊은 후보의 득표력. 여론의 희망만 놓고 본다면 젊은 신인이 대부분 금배지를 달아야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여론조사 결과가 실제 투표결과와 일치하지 않는게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30~40대 신인들 서울·수도권에 몰려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17, 18일 각각 발표한 1차 지역구 공천자 명단을 보면 ‘젊은 피’를 바라는 여론을 어느 정도 반영한 냄새가 난다. 민주당의 공천후보는 30대 21명(12.7%), 40대 40명(24.2%)이고, 한나라당은 30대 16명(7.4%), 40대 46명(21.4%)이다. 자민련은 30대 4명(3.7%), 40대 21명(19.4%). 하지만 이들 30~40대가 모두 신인은 아니다.

민주당은 현직의원(40대 12명)을 제외할 경우 30~40대의 새 인물은 49명이다. 한나라당도 현직의원 11명(30대 1명, 40대 10명)이 공천명단에 포함돼 있어 신진 인사는 51명에 그친다.

민주, 한나라 양당은 이들 30~40대 신인을 전략적 격전지역인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 집중 배치했다. 변화를 바라는 유권자의 성향을 십분 감안해 바람몰이하겠다는 전략이다. 민주당은 서울 45개 선거구 중 30대 9명, 40대 7명 등 16명을, 수도권 지역에는 12명을 공천했다. 한나라당도 서울에 30~40대 14명을 후보로 내세웠다.

새 얼굴 중 두드러진 것은 운동권 출신 386세대의 약진. 민주당 후보로는 서울에서 임종석(성동·34) 전 전대협의장, 허인회(동대문을·37) 전 고대총학생회장, 우상호(서대문갑·37) 전 연대총학생회장, 김윤태(마포갑·35) 전 고대총학생회장, 이인영(구로갑·35) 전 전대협의장이 공천티켓을 거머 쥐었다. 지방에서는 박재혁(마산합포·39) 전 경남대총학생회장이 유일하게 학생운동권 출신으로 공천받았다. 한나라당의 운동권 출신 386세대는 정태근(성북갑·36) 전 연대총학생회장, 오경훈(양천을·36) 전 서울대총학생회장, 고진화(영등포갑·37) 전 성균관대총학생회장 등이 출전권을 따냈다.

30~40대의 새 얼굴 중에는 경제와 법조, 언론계 등 전문분야 출신으로 참신성과 전문성을 겸비했다는 평을 받는 인물도 있다. 민주당의 김성호(강서을·37) 전 한계레신문 기자, 이승엽(동작갑·39) 삼환컨설팅 대표, 배선영(서초갑·39) 전 재경부 비서관, 노관규(강동갑·42) 전 수원지검 검사 등이다. 한나라당에서는 원희룡(양천갑·36) 변호사, 김왕석(동작을·47) 중앙대 교수, 오세훈(강남을·39) 변호사 등이 전문가 신진세대로 꼽힌다.


득표력에 회의적시각 만만찮아

젊은 신인의 득표력은 어느 정도로 기대할 수 있을까. 1990년대 들어 치러진 14, 15대 총선의 추이를 놓고 본다면 매우 고무적이다. 15대 총선에서 지역구 당선자 253명 중 초선은 113명으로 44.6%에 달했다.

전국구를 포함한 전체 당선자 299명 중 초선은 145명(48.4%)이었다. 앞서 14대 총선에서는 지역구 초선 비율이 33.7%(237명 중 80명), 전체의석 중 초선비율은 39.1%(299명 중 117명)이었다. 14대에 비해 15대 총선의 초선 비율이 훨씬 높아진 것이다. 이같은 추세가 16대에도 이어진다면 ‘젊은 피 돌풍’에 대한 기대는 현실화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운동권 출신 386세대의 대거 당선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문부호를 다는 시각도 적지않다. 이같은 시각은 정치판에서 재야세력이 쇠퇴하고, 그 자리를 시민단체가 대체하고 있다는데 근거를 두고 있다. 1988년 13대 총선부터 시작된 재야의 정치권 진입이 14, 15대를 거치면서 마무리 단계에 들어감에 따라 운동권 출신이 상대적으로 평가절하됐다는 것.

여기다 16대 총선을 노리는 운동권 출신이 희망 지역구를 이리저리 바꾸고, 상호견제하는 행태를 보여온 것도 감점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총학생회장 등 운동권 경력이 정치권 진입을 위한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는 비판도 무시할 수 없다.

비록 공천탈락의 울분속에서 내뱉은 말이긴 하지만 민주당 김상현 의원의 18일 발언을 귓가로 흘릴 수 만은 없다. 김 의원의 이야기. “당내 386세대에 대해 우려가 많다. 아주 정치를 잘못 배우고 있다. 소위 가신의 똘마니 역할을 하며, 서로 줄대고 자기들끼리 모략을 하고 있다.”

운동권 386 세대 후보의 정치적 역할에 대해 회의하는 견해도 있다. 경희대 임성호 교수(정치학)는 “이번 공천과정을 볼 때 386세대도 당분간은 정당 보스에 충성을 바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향식, 밀실공천의 수혜자인 이들이 제 목소리를 내기에는 태생적 한계를 가진다는 분석이다.

물론 임 교수는 운동권 386세대의 전진배치가 개혁적 차원에서 신선한 충격을 준다는 점은 배제하지 않았다. 임 교수는 나아가 운동권 출신의 총선 경쟁력에 대해서도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여론조사와 실제 투표가 일치할 지 의문이라는 것.

물갈이에 대한 국민의 일반적인 바람과 구체적인 인물에 대한 평가는 별개라는 이야기다. 그는 386 후보의 경쟁력이 전혀 검증되지 않은 상태라며 “각당이 여론조사 결과와 이들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균형잡힌 감각 길러야

국회의원은 스페셜리스트(specialist)보다는 제너럴리스트(generalist)가 돼야 한다는 견지에서 운동권 386세대 후보에게 노력을 당부하는 이들도 있다. 신선함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각계를 두루 살피는 성숙되고 균형잡힌 감각이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이 점은 다원적인 유권자층을 대상으로 골고루 호소력을 갖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라는 것.

4·13 총선전에 나설 ‘젊은 피’는 여야 3당의 공천후보 뿐 아니라 무소속 후보도 적지 않을 전망이다. 정치 지망생 자체가 상대적으로 젊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16대 총선에서 과연 젊은 정치신인이 돌풍을 일으킬 수 있을지 점치기는 아직 이르다. 하지만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물갈이 욕구와 신인의 후보공천 획득률로 볼 때 적어도 어느 정도나마 ‘젊은 바람’은 불 것으로 기대된다.

배연해·주간한국부 기자


배연해·주간한국부 seapowe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