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보안시장 ‘춘추전국시대’

옛날에는 훔쳐갈 물건도 없고 이웃끼리 모두 알고 지냈기 때문에 담도 없었고 문도 열어놓고 살았다. 그러나 재산이 늘어나고 도둑과 강도가 빈발하자 담을 쌓고 자물쇠를 잠그기 시작했다. 특히 대도시에서는 담을 높이고 밤범창을 설치했으나 날로 고도화하는 범죄수법을 따라가지 못했다. 이때부터 범죄를 미리 예방하고 지속적으로 감시하는 방범 서비스가 등장했다.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방범 전문용역업체다.

사이버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인터넷이 당초 군사 및 학술적 목적으로 몇몇 사람만이 사용하던 시절에는 문을 열어놓고 살아도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인터넷이 상업적 목적으로 급속히 확산되면서 재산가치가 크게 높아지자 바이러스와 해킹 등의 피해가 나타나고 사이버 방범의 중요성도 높아지기 시작했다.


국내컴퓨터보안시장 2000억원대도 팽창

‘주위에 울타리 하나만 달랑 세워놓고 도둑이 들었는지조차 모른채 살고 있는 격’이라는 전문가들의 말처럼 컴퓨터 보안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우리나라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CIH 바이러스를 시작으로 컴퓨터 바이러스가 확산되고 해킹사건이 잇따르자 컴퓨터 보안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된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국내 컴퓨터 보안시장 규모도 지난해 400억원 안팎에서 올해에는 1,500억~2,000억원으로 5배 가까이 팽창할 것으로 업계에서는 전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인터넷의 확산속도에 비해 형편없는 보안실태 등을 감안할 때 컴퓨터 보안시장 규모는 앞으로도 매년 100%이상 성장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이에 따라 컴퓨터 보안시장도 각광받는 벤처 분야로 떠올라 소규모 창업뿐만 아니라 대기업까지 속속 발을 들여놓아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컴퓨터 보안은 외부인의 접근을 막는 ‘방화벽’(firewall)과 침입방지 시스템, 전자상거래용 인증 및 암호화 시스템, 바이러스 백신 등 3가지로 나뉘어진다. 국내업체들은 그동안 분야별로 제품개발·판매에 주력해왔지만 지난해부터 보안 컨설팅과 모니터링 등 본격적인 종합 정보보안 서비스로 확대하고 있다.

이른바 사이버상에도 ‘에스원’을 본뜬 업체들이 속속 등장하게 된 것이다. 지난해 안철수 컴퓨터바이러스 연구소가 데이콤 인터내셔널, 팬타 시큐리티와 손잡고 만든 (주)코코넛이나 사이버텍 홀딩스와 에스원 등이 합작한 (주)이글루 시큐리티 등이 대표적이다. (주)코코넛이나 (주)이글루 시큐리티 등은 네트워크 분석과 보안 컨설팅, 주기적인 모니터링 및 예방·치료방법(솔루션)제공 등이 주상품이다.

삼성SDS, LG-EDS시스템, 쌍용정보통신, 포스데이타 등도 중소 보안업체와 제휴하거나 인수합병을 통해 시장진입을 준비중이고 몇몇 외국업체도 선진기술을 무기로 국내업체와 합작으로 시장참여를 계획하고 있다. 또 직원 25명중 20명이 한국과학기술원(KAIST) 출신으로 구성된 인젠도 유망주로 꼽히고 있다.


시장선점 놓고 치열한 각축전

컴퓨터 보안분야의 선두주자인 시큐어 소프트내의 해커스랩이 독립, 해킹예방과 사이버탐정 서비스를 동시에 제공하는 종합 보안서비스를 기치로 3월부터 본격적인 상용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어서 컴퓨터 보안시장의 선점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주)해커스랩의 영업개념은 방범 용역회사를 사이버상에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다. 우선 기업이나 공공기관 등 고객의 네트워크를 점검해 취약점을 보수하고 곳곳에 해커감지 시스템을 설치한다. 해커가 침입하면 자동으로 관제센터의 알람이 울려 방범요원이 출동한다. 물론 직접 출동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 라인으로 들어가 해커를 퇴치하고 즉각 역추적 작업을 시작하는 형태다.

컴퓨터 바이러스 해독이나 해커방지를 위해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인력확보다. 업체마다 유명한 전직 해커들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것도 이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해커는 대략 1,000~2,000명으로 추정되지만 최고급 수준은 20명 안팎이고 이들이 대부분 얼굴을 드러내지 않아 인력확보부터 쉽지 않은 실정이다.

(주)해커스랩을 설립한 이정남(45)사장은 1994년 경찰청 해커수사대 창립요원으로 사이버범죄 수사반장을 역임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이사장은 한국과학기술원 해커1세대 동아리인 ‘유니콘’출신으로 1998년 네트웍 침입탐지 시스템인 ‘네오와처’를 개발한 경력이 있는 김창범(33)씨를 연구소장으로 영입하고 해커계에서는 ‘loveyou’라는 아이디로 유명한 김용준(25)씨와 해커게임 ‘명예의 전당’에 오른 김대경(31)씨 등 경찰관 시절 알고 지내던 젊은 해커들을 ‘해커특공대’로 탈바꿈시켰다.

(주)해커스랩은 해커들이 추적을 피하기 위해 여러 곳을 경유하는 점에 착안, 해커의 움직임을 사전에 포착하는 첨단 관제시스템을 개발중이며 조만간 미국내 최대 정보보안업체인 ISS의 제품도입을 추진중인 것으로 알려져 경쟁업체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주)이글루 시큐리티도 오랫동안 네트워크 분야에서 종사해온 전문가들을 팀장으로 영입해 2월말부터 본격적인 상용 서비스를 시작하며 (주)코코넛은 안철수 컴퓨터바이러스 연구소와 팬타 시큐리티의 인력들을 중심으로 준비작업을 마치고 2월1일부터 호스팅 서비스를 개시하는 등 선발업체간 경쟁은 치열하게 달아오르고 있다.

(주)코코넛 유현경 대리는 “정보보안 수요가 갑자기 커지면서 업체들이 충분한 준비없이 시장에 뛰어드는 등 문제점은 많지만 이를 계기로 이 분야의 시장규모는 확대될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송용회·주간한국부 기자


송용회·주간한국부 songy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