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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탐구] 토종연구가 홍석화씨

홍석화(51)라는 사람을 알고 싶다면 함께 술을 마셔볼 것. 술보다 그의 얘기에 먼저 취하게 될 것이다. 심지어 얼마전 집이라고 빌려쓰던 경기 용인의 한 농가 거처까지 화재로 잃은 뒤 정말 ‘집도 절도 없어진’ 그를 인사동의 한 찻집에서 만났을 때도 그는 마시던 몇 잔의 전통차조차 술처럼 느끼게 하는 사람이었다. “내 얘기를 다 들으려면 사흘 밤낮은 술 마시면서 얘기해야 되우”

고분고분 공부만 했다면 그럭저럭 때깔나는 상류층의 한 사람으로 살았을지도 모를 서울대 치대 출신. 한때는 촉망받는 연극계의 재목으로 영화와 정치계의 한복판까지 들어갔다가 스스로 ‘진물 다 빠진 퇴기’라며 외곽으로 뛰쳐나와서는 전국의 이름없는 산이며 들을 헤집고 다니며 “된장은 우주, 똥은 하늘”이라 외치며 토종만 쫓아다니는 별종 홍석화. 그 길고 긴 이야기를 과연 사흘로 줄일수 있을까.


재래식변소찾아 전국방방곡곡 뒤져

홍석화는 토종연구가다. 그중에서도 ‘뒷간 전문가’다. 얼마전엔 국내 최초의 뒷간 사진전이란 것도 열었고, 때로는 소재가 워낙 ‘향기로운’탓에 몇몇 전시장에서 심심찮게 퇴짜도 맞아본, 특별한 전문가다. ‘한국의 토종 101가지’‘토종문화와 모듬살이’ 등 그간 펴낸 전문서도 여러권. 전통 된장과 옹기, 굴, 맷돌 등 이 땅의 숨은 토종의 족보를 정리한데 이어 최근엔 ‘청산에 살어리랏다’라는 생태소설을 내놓으며 토종분야에 든든한 깃대를 꽂았다.

토종연구 10여년. 뒷간쪽으로 관심을 좁히기 시작한 것은 3~4년전부터다. 원래는 이 시리즈의 후속으로 토종인물을 다뤄볼까 했지만 ‘인간만큼 쓰기 골치아픈게 없어’(이 대목에서 그는 나를 무척 안스러워했다) 굳이 섭외나 비위맞출 일 없는 ‘뒷간’으로 방향을 틀었다. 정말 열심히 뛰었다.

깊은 산골 이름없는 해우소의 사진 하나를 얻기위해 남들은 방안에 앉아 인터넷을 뒤질 때 그는 전깃불 하나에도 감읍하는 깡촌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땀내나는 자료들을 얻었다. 전국의 재래식 화장실이란 화장실은 거의 방문했다. 강원도 횡성의 한 농가에서 본, 특이한 3인용 뒷간, 바위틈에 걸쳐진 청량산 간이 뒷간, 오대산의 멋스런 너와 해우소, ‘측간 신위’까지 자리잡은 영은사 해우소, 공주에만 있는 국내 유일의 토굴형 뒷간 등. 그중에서도 절간 변소인 해우소는 사진을 보듯 훤하다. 그 냄새를 어떻게 견뎠겠냐고? 그래서 우린 우리의 토종 뒷간을 제대로 모른다는 얘기다. 말투조차 ‘재래식’인 그의 설명을 들어봐야 한다.

“진짜 재래식 뒷간엔 냄새가 전혀 없소. 제가 말하는 뒷간이란 ‘푸세식’이 아니라 더 이전의, 돌 덩어리만 두 개 달랑 놓고 재나 겨를 사용하는 뒷간을 말하는거요. 그 재나 왕겨 등이 발효작용을 하기 때문에 냄새라고 해봐야 그건 발효 냄새지 X냄새가 아니우. 사실 우리 선조들도 물로 씻어낼 줄 몰라서 수세식을 안한게 아니오. 단지 우리의 음양오행설을 보면 배설물인 토(土)와 물, 즉 수(水)가 서로 상극이라 피했던거지. 그리고 잿간 변소는 얼마나 멋진지 아우? 지붕도, 벽도 없어요. 그냥 사방이 탁 틔어있는, 말 그대로 열린 변소야. 볼 일을 보면서 별이 총총한 하늘도 보고, 이 얼마나 아름답수!”


전국에 정보망 쫙 깔린“나는 전국구”

그는 복장부터 야전용사다. 방한용으로 받쳐입은 운동복, 그 위에 생활한복을 멋지게 차려입은뒤 조끼도 하나 걸쳤다. 한번씩 그 조끼를 들썩거릴 때마다 튀어나오는 다양한 ‘비상장구’들. 청테이프로 테두리를 붙여놓은 낡은 노트 한권에 직접 만들었다는 불룩한 명함집, 필기도구가 10여자루, 반으로 접은 16절지도 한다발, 안경은 끈으로 매달아 목에 걸었고, 안경닦는 천까지 고루 구비했다.

“객지에서 먹고 자는거? 그냥 형편대로 하는거요. 찾아간 집에서 얻어잘 형편이 안 되면 여관잠도 자고, 때로는 아는 사람 차 얻어타고 옆자리에 묻어가면서 그 틈에 꼬부려 자기도 하고. 처음 4~5년간은 정말 고생스러웠지요. 그렇게 얻은 인맥이 이젠 이렇게 쌓였어. 내 수첩 한번 봐요. 나 전국구요. 전국 곳곳에 정보망이 좍 깔렸지, 이젠”

유난히 토종에 집착해온 이 지천명의 남자는 그러나 완벽한 서울내기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른 후반까지도 거의 서울밖을 벗어나 본 일이 없는 도회지 출신이다. 그러면서도 끈질긴 토종타령에다 객지생활을 자청하고 나선 건 한편으로 아버지의 영향일지 모른다. 홍씨의 아버지는 탄광의 덕대, 말하자면 탄광 하청업을 하는 광산쟁이였다.

탄광이 지방에 있는 탓에 거의 집에 있는 일이 없었고, 잦은 출장 사이로 어쩌다 마주치는 모습도 늘 등산복 차림. 늘 흙 냄새를 풍기던 선친이었다. 경제적으로도 극과 극을 다 겪어보았다. TV도 흔치 않던 시절 한번 노다지가 터지면 값비싼 지프까지 굴리던 준재벌이 됐지만, 한번 일이 꼬이기라도 하면 세끼 밥도 못먹고 보리로 연명할만큼 비참한 적도 있다. 그때 그가 깨달은 것이 있다. 세상엔 돈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사실이었다. 바로 사람간의 화목이란 것이었다.


공부는 뒷전, 화려한 경력 쌓은 대학생활10년

중·고교생 시절엔 큰 소란 한 번 일으킨 적 없는 그지만,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그 ‘무사고’의 전력은 깨어지기 시작했다. 서울대 치의예과 68학번. 학번은 있지만 졸업장은 없다. 낙제와 구제를 수없이 거듭하다 결국 도중하차했기 때문이다.

공부는 처음부터 관심밖이었다. 애초부터 치과의사엔 뜻이 없었고 다만 철학도가 되고 싶었던 그를 당시 그의 집안에서 한창 잘 나가던 큰누나가 미국 유학중 부랴부랴 20장에 달하는 장문의 편지까지 보내며 가로막고 나서는 바람에 일이 그리 된 것 뿐이다.

가족들의 반대사유는 간단했다. “철학과를 졸업해봐야 춥고 배고프니 의대나 치대를 가라”는 것. 누나 자신도 이제는 “내 실수였다”며 홍씨에게 미안해하는, 30여년전의 일이다.

휴학과 복학을 수시로 반복하며 10년동안 대학을 다녔다. 전공은 팽개치고 10군데가 넘는 동아리 활동에다 대학신문 기자노릇만으로도 늘 시간이 모자랐다. 서울대 야구반 선수로도 꽤 실력이 있던 그는 마운드만 아니라 시위현장에서도 예의 투구 실력을 발휘하다 경찰로부터 거물로 지목돼 잡혀가는, 웃지못할 일도 있다. 그의 저학년때의 기억이다.

그리고 빠져든 것이 연극. 대학 연극계에선 그를 모르면 간첩이라고 할 만큼 학생 사이에 유명했다. 배우로 시작해 연출, 조명, 음향, 분장, 무대장치 등 안해본 일이 없고 특히 어느 대학이든 예외없이 외부 전문가에게 의뢰하는 분장일까지 직접 방송국이나 기존 가설극장 등을 찾아다니며 배워온 뒤 스스로 맡을만큼 근성이 있었다.

판을 벌이는 데도 명수였다. 그때까지 단과대별로 흩어져있던 연극반을 대학 총연극회 단위로 통합하는가 하면 독창적인 기획, 연출력으로 무대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그중 생각나는 한 작품. 어느 해 이화여대 총연극회의 연출을 맡았을 때 체육관 전체를 공연장으로 꾸민 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젯상이 보이도록 만들었다. 말하자면 ‘총칼의 시대’에 대한 그의 독특한 추도식이었다.

그리고 공연중에도 느닷없이 지푸라기로 만든 시체들이 천장에서 관객 머리위로 떨어지도록 설정, 남다른 평가를 받았다. 그러한 연극반 활동시절, 당시 함께 활동했던 서울대 문리대 연극반원중 유일하게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가 현재 연극배우겸 탤런트인 심양홍씨. 그외에도 서울대 교수 이애주, 연출가 김민기, 국악작곡가 김영동씨도 당시 민속극 탈춤반에서 선후배로 얽혔던 인연들이다.


독창적 무대 꾸민 문화패 1세대

“우리가 소위 문화패 1세대였어요. 그후 1985년쯤엔가 후배들이 전체 계보 정리작업을 한적이 있는데, 우리를 가리켜 ‘구닥다리 1세대, 낭만적 민족주의자!’라고 붙였어요. 나중에 그걸 보면서 얼마나 술이 땡기든지 우리끼리 농담삼아 ‘어이, 낭만! 술 먹자’ 서로 그렇게 자조하며 웃기도 했지요”

1980년대엔 영화와 정치판에도 있었다. 영화의 경우 후배 장선우씨와 함께 이장호감독 아래 조감독으로 약 3년간 작업을 했다. 그러나 아무래도 적성에 맞지 않아 그것으로 끝. 노태우대통령이 취임한 이듬해에 치러진 제13대 총선에서는 한겨레민주당 고 제정구의원의 홍보선전 총책으로 뛰었다.

여당에선 칼라판 현수막을 내걸 때 고작 16절지 갱지에 붓으로 구호를 적어 종로바닥에 뿌려야 할만큼 가난한 살림이었지만 나름대로 히트작도 많았고 일 자체로만 보면 성취감도 적지 않았다. 밤 11시쯤 돼서야 ‘간첩 접선하듯’ 삼삼오오 한 여관방에 모여 비밀회의를 하는 등 사뭇 치열한 시간이었지만 정치판 역시 그가 있을 자리는 아니라는 결론을 얻었다.

“영화판이랑 정치판이랑 똑같아요. 판이 사람을 망가뜨린다는거. 상납고리에다 남녀관계, 뭐 이런거. 또 돈에 놀아난다는 거. 요즘은 또 어떨지 모르겠지만, 영화감독? 하, 무슨 얼어죽을 감독! 제작자 한마디면 다 끝나는데. 정치판도 그래. 그 근사했던 386세대도 몇년만 그 판에서 굴러먹으면 사람 자체가 변하잖수. 또 그렇게 변하지 않고선 그 판에선 견디질 못하는게 거기구. ‘야, 이러다간 내가 나를 버리겠다’ 싶어 그 선거만으로 끝냈지.”

그외에도 ‘부시시 선생’‘괴상한 선생’으로 불리며 달동네 아이들과 뒹굴던 삼양동 새뜻공부방 시절. 자칫하면 자신의 미래도 어찌되었을지 몰랐을 남민전 홍세화씨와 얽힌 몇가지 사건. 한 아파트 지하실에 계란판으로 방음시설을 만들어 공연장을 꾸몄던 애오개 소극장. 뜻을 같이하던 문화패들과 만든 민예총시절 등 아직도 그 우울한 시대의 잔상을 가슴 가득 간직하고 있는 홍씨.


“이젠 쉬면서 내 삶 돌아보고 싶다”

“하지만 결국 나도 지친거요. 민예총을 끝으로 완전히 진이 빠진거지. 그만하면 내 청춘의 몫을 할 만큼 다 했다 싶기도 하고 이젠 더 보여줄 것도 없는 ‘퇴기(退妓)’가 됐다고 느낀거야. 그래서 이젠 좀 쉬면서 나도 내 삶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정리해보자고 그 생활을 청산한거지요.”

그리곤 서울밖으로, ‘굴레’밖으로 달아났다. 진작부터 관심이 있던 마을굿을 찾아 전국을 돌며 그에 대한 글을 써주는 일로 밥벌이를 했다.

그러나 동시다발적으로 열리는 마을굿은 좀처럼 취재가 쉽지 않았고 대신 터덜터덜 돌부리를 차며 돌아오는 길에 온갖 이름없는 꽃과 풀, 토종의 우리 문화를 보았다. 홍씨의 토종기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 이후 백령도에선 한때 거동수상자로 간첩신고를 당하기도 하고 뒷간탐구에 나선 최근만 해도 ‘미친 놈’ 소리까지 들었던 그지만, 그 쯤이야.

“이제 내 인생의 노선은 우리 전통을 찾는 것이고, 그중에서도 나는 ‘정통과’가 아니라 ‘재창조과’요. 요즘 피자세대나 노랑머리들은 우리와 또 다를거라고 하지만 그것도 20~30년 뒤에 한번 보자 이거요. 난 그들의 DNA를 믿고, 누구든 나이들면 된장을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우리의 피를 믿고, 토종의 미래를 믿는다 이거지.”

끝으로, 홍석화와의 술자리를 위한 또하나의 메모. 그는 5~6년전 특히 소문난 ‘주사파’였다. 물론 술 주(酒)자다. 그가 가장 못 견뎌하는 것은 어디가나 한둘쯤은 꼭 나타나는 술판의 ‘꼴뚜기’.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면 꼭 개인적으로 복받친 얘기 등을 꺼내 판을 흐리는 ‘놈’을 가장 미워한다. 당신에게 꼴뚜기 습성이 있다면, 고친 뒤에 만나볼 것. 조명도 화려한 탄탄대로는 놔두고 굳이 거칠디 거친 비포장길을 따라온 이 토종 사나이의 성깔을 얕봐선 안된다. 크게 다친다.

정영주·자유기고가 김명원·사진부 기자 march10@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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