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의 김소영 교수. 그를 처음 만난 것은 5년전이다. 한국일보에 영화평을 쓸 사람을 찾고 있을 때 누군가가 그의 이름을 말해주었다. 그때 한국일보가 생각한 필자의 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먼저 널리 알려진 평론가가 아닐 것. 이유는 이름이 조금이라도 팔린 평론가에게서 느끼는 또다른 상업성과 영화사와의 유착냄새가 싫어서였다. 두번째는 너무 이론적이지도, 그렇다고 너무 인상비평식의 글을 쓰지 않는 사람. 신문의 영화평은 마니아나 영화전문가나 학자를 위한 것만이 아니다. 일반 관객이 보고 느낀 것을 명징하게 집어주고 또 그들이 보지 못한 것을 쉽게 이해시키는 논리와 글이 필요하다. 세번째는 치밀하고 성실하게 영화를 보고, 남들이 발견하지 못한 것을 이야기하고, 때론 독특한 시선으로 영화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글을 쓸 수 있는 사람.

이런 조건을 놓고 그를 고정 평자로 선정한 것은, 당시 김소영 교수는 미국서 공부하고 돌아온지 얼마되지 않았고 영화평은 시사주간지에 이따금 쓰는 정도였다는 점, 그 글이 여느 영화과 교수나 평론가와는 다른 정직하고 날카롭다는 점, 그리고 다수란 이름으로 무시하는 소수의 것을 존중하고 평가하는 점 등이 보였기 때문이다.

사람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그는 독단적이기에는 너무나 이론과 관찰이 철저하고 평범하기에는 영화를 선택하고 보는 방식과 영화에 대한 관심이 색다르다. 그는 사학자이자 문화학자인 김열규씨의 딸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지금 그는 세가지 일을 하고 있다. 교수로서 그는 영상원과 서강대 언론대학원에서 강의를 한다. 그의 강의는 때론 너무나 어렵고, 혼돈스럽고, 깊다. 그는 현대영화이론을 꿰뚫고 있으며 그것을 설명하기 보다는, 그것을 바탕으로 현재의 영화세계를 분석한다. 그래서 그의 강의는 심리학 사회학 언어학 철학에 관한 방대한 독서와 이해를 요구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기만의 독특한 이해와 분석을 가지게 만든다.

그의 학문적 접근방식은 ‘트랜스’란 영상문화저널의 편집장이란 직책을 맡게 했다. 올해초 창간호를 낸 ‘트랜스’는 ‘영화 잡지는 많아도 영화를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전문지는 없는 현실’을 반영한다. 국가와 민족을 가로지르는 영상연구, 인접문화와의 결합 등을 통해 영상에 대한 진지하고 새로운 접근을 시도한다. 우리의 영화연구가 지나치게 안이하고 천박한 상업주의에 물든 것은 아닌가. 우리의 영상문화나 소비방식이 너무 다수 지배적이고 헤게모니에 얽매이지는 않았는가.

이같은 의문과 그것을 풀어가는 해답으로 그는 4월에 열릴 대안영화제 성격의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가 됐고 최근 ‘근대성의 유령들’(씨앗을 뿌리는 사람들 刊)을 펴냈다. 몇년 전부터 그는 만나면 “요즘 한국의 귀신, 괴물영화(그는 이를 환상영화라고 불렀다)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 관심을 글로 발표했다. ‘근대성의 유령들’은 그것을 하나로 정리한 책이다. 영화평론가인 정성일씨는 이 책을 놓고 “한국영화의 지난 30년 여백을 뒤져가는 것이다. 우리들의 이미지에 관한 이보다 더 신중하고 아름다운 글쓰기를 알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김소영 교수는 한국영화에서 1967년의‘대괴수 용가리’‘우주괴인 왕마귀’와 김기영 감독의 영화가 ‘현실/환영’이라는 존재론적 짝짓기를 뒤집는 유령의 공간에 거주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곳으로 그는 여행을 했고 여행을 하면서 ‘낡은 적들’(사유의 영구집권을 노리는 한국영화를 둘러 싼 몇 개의 담론)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에게 판타지 영화란 그 낡은 담론을 부수고 한국영화에 상상적 도발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그에 의해 한국의 판타지영화는 주류를 전복하는 힘을 가졌고, 근대와 전근대가 섞이는 ‘근대성의 비동시성’을 보여주며 이것이야말로 ‘공포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근대성의 유령들’을 읽으면 그의 뛰어난 분석력과 박식한 이론, 별난 관심과 비주류에 대한 애정을 듬뿍 느낄 수 있다. 그는 한국 영화사가 무시하고 빠뜨리고 외면한 것을 하나하나 주워담고 있다. 불혹의 나이에 그는 자신의 진정한 욕망의 소재 혹은 그 방향을 알아챈 모양이다.

이대현 문화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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