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총선은 3김구도 쇠락의 분수령"

총선을 앞두고 여야 모두 공천파문에 정치권이 시끄럽다. 정치생명이 걸린 일이라 당사자들은 한치의 양보도 없이 아웅다웅하고 있지만 이를 지켜보는 국민은 착찹하기 이를데 없다.

1980년대 학생운동권의 대표적 인물로서 정치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유시민(41)씨와 최근 정치권의 움직임을 짚어보았다. 유씨는 한때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하기도 했으나 1998년 독일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이후 정치평론가로 변신, 현재 2개 일간지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쓰고 MBC 라디오 프로그램인 ‘MBC초대석 유시민입니다’(오전 11시10분~11시40분)를 매일 진행하고 있다.


-공천자 발표 이후 정치권이 이전투구의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국민이 바랐던 정치개혁은 물건너간 것 아닙니까.

“여야 중진들이 탈당해 신당을 만들거나 무소속 출마를 하는 등 움직임이 혼미스러운데 이는 ‘3김정치’가 쇠락해가기 전에 나타나는 마지막 열병이라고 생각됩니다. 3김의 통제력이 그만큼 약해졌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번 총선에서 이들중 일부가 당선하거나, 각 당에서 공천을 받은 중진중 몇명이라도 떨어진다면 3김의 영향력은 급격히 떨어질 겁니다. 제가 예측할 때 수도권에서는 여야 중진들중 상당수가 고배를 마실 겁니다. 이번 총선은 3김 구도가 약해지는 중대한 분수령이 될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야는 모두 공정한 공천작업을 공언했지만 결과는 석연치가 않습니다. 각당의 ‘오너’들이 시민단체의 낙천·낙선 대상자 명단을 자신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악용한 흔적이 역력합니다. 비주류나 잠재적 경쟁자를 솎아내는데 ‘물갈이론’을 역이용한 것이지요.

“그것이 정치의 생리입니다. 시민단체가 낙천·낙선대상자 명단을 발표했을 때 한나라당이 얼마나 심하게 반발했습니까. 수도권 등에서 압승이 분명한데 훼방을 놓고 있다는 생각을 한거죠.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이회창 총재는 공천을 둘러싸고 당내 반발이 거세지자 ‘물갈이가 역사적 대세’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시민단체의 요구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도 다목적 포석이었습니다. 여당에 불리하게 돌아가는 선거판도에 변화를 주고 또 일부 후보를 바꾸는 명분으로 활용하겠다는 생각이었죠. 정치인이란 원래 어떠한 외부변수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환시키는데 천부적인 재질이 있습니다. 이번에도 철저히 각당 오너들의 의도대로 진행됐습니다. 일부에서는 각 당이 공천근거로 제시하는 전화여론조사를 왜곡했다는 의혹도 있을 정도입니다.”


-결과적으로 시민단체가 이용당한 것은 아닐까요. 시민단체도 상당히 고민하는 것같던데 앞으로 시민단체가 어떤 방향을 잡느냐도 관심거리입니다.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이 정치권을 흔들어놓고 국민의 의식을 높이는데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다만 정치권에서 이를 역이용한데다 낙천·낙선대상자중 40여명이 공천을 받았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각 당의 공천을 받은 낙천·낙선 대상자중 수도권과 호남, 영남, 충청 등 각 당의 근거지에서 현지분위기가 안좋은 선거구 3, 4군데를 골라 집중적으로 낙선운동을 벌이는 것이 좋을 것같습니다.
수도권은 원래 표차가 많이 나지 않으니까 시민단체가 가담하면 당락을 결정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같고, 지방에서도 잘만 선정하면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이같은 전략이 성공하면 향후 정치권에 엄청난 영향을 줄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은 나름대로 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여야의 공천결과를 분석해볼까요. 도대체 일관적인 흐름이 없는 것같은데.

“민주당은 철저히 동교동계가 장악하고 비동교동계와 재야출신중 세력을 키울 가능성이 있는 인사는 거세됐습니다. 공천심사위원들이 김대중 대통령의 가신출신들로 채워졌을 때부터 예측가능한 결과였습니다. 김대통령이 퇴임후 영향력 유지를 위한 포석인 것으로 보이는데 결과는 두고 봐야할 것같습니다.
한나라당은 이회창 총재가 대권을 염두에 두고 자기의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의도였는데 너무 과격하게 처리하는 바람에 오히려 이번 총선에는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많은 것같습니다. 신당창당으로 PK와 TK의 분열양상이 나타나는 것도 특징입니다. 이인제씨가 충청권에서 얼마나 득표력을 보이느냐에 따라 향후 대권후보 판도에 영향을 미칠 겁니다. 노무현의원의 부산입성여부도 관심입니다.”


-시민단체의 압력으로 선거법이 개정됐지만 불합리한 조항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중앙선관위원장 조차 ‘문제가 있다’고 지적할 정도이니까요.

“선거법은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지 않고 철저히 국회의원의 기득권을 지키는 수단이 되고 있습니다. 현역의원은 의정보고회 등 갖가지 방법으로 사전선거운동이 가능하지만 무소속은 명함 하나만 잘못 내밀어도 처벌받게 돼 있습니다. 또 국민의 선거참여를 배제하고 있습니다. 누구를 지지한다는 말조차 하지 못하게 하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국민을 ‘졸’로 보는 것도 아니고.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도 마찬가지 입니다. 단체의 선거운동개입을 금지한 것은 관변단체 때문인데 이건 집권당이나 정부가 하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무엇보다 핵심적인 문제는 선거구획정에서 도농간 인구격차인데요, 지금은 도시의 전문직 종사자는 3, 4명이 모여야 국회의원 1명을 배출할 수 있는데 농촌의 할아버지 할머니는 1명이 국회의원 1명을 배출하는 꼴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농업인구의 비율이나 농업이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됩니까. 아마 10%도 안될거예요. 그런데도 선거구가 잘못 획정됐기 때문에 국회의원이 정보화정책이나 교육정책 등 중요한 사안에는 신경쓰지 않고 추곡수매가 책정에 매달리게 만드는 겁니다. 농촌의 대표성도 중요하지만 문제는 정도가 너무 심하다는 겁니다.”


-선거가 40여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번에는 국민이 정말 냉정하게 판단해야 할텐데 최근 분위기는 오히려 지역감정이 더욱 극심해지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지역감정을 조장하는게 가장 싸게 먹히는 선거전략이니까 이번에도 쉽게 없어지지는 않을겁니다. 일단 공천부터 선거운동까지 절차만 공정하고 투명하면 선거결과는 국민의 선택입니다. 정치는 그나라 국민의 수준을 벗어날 수 없으니까요.
우리나라 정치의 지역구도는 중앙집권적 권력구조가 바뀌지 않는한 없어지지 않을겁니다. 지금처럼 대통령이 엄청난 권한을 갖고 있으면 정권을 잡기위해서는 지역의 힘을 바탕으로 중앙으로 진출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통령은 국방 외교 교육 등만 책임지고 나머지는 지자체에 대폭 위임해야 정치적으로 지역감정이 악용되는 일이 사라질 겁니다.”


송용회·주간한국부 기자 김명원·사진부 기자


송용회·주간한국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