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짧은 벤처의 역사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우리 나라에 ‘벤처 신화’의 꿈을 심은 대표적 기업을 꼽으라면 열명중 대여섯은 반도체 장비를 생산하는 미래산업을 든다. 그리고 정문술 사장을 ‘벤처 성공 시대’를 연 최고의 벤처 스타로 추천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벤처 산업의 대부, 작은 거인, 거꾸로 경영, 2전3기의 오뚝이 인생, 기술사 장님 등등. 주변에서 붙인 수식어도 많고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바람에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그지만 그를 보고 요즈음 흔히 말하는 ‘벤처’를 떠올리기는 힘든다.

나이가 이미 이순(耳順)을 넘긴 예순 둘의 ‘할아버지’고 미래산업도 인터넷 디지털 혁명과는 별로 관계가 없는, 반도체 조립에 필요한 장비를 생산하는 제작업체다. 지난해부터 불어닥친 벤처 열풍에 따라 주가가 가파르게 올랐거나 오르는 코스닥 상장업체도 아니다.

몇년 전에 상장되면서 증권가를 발칵 뒤집어 놓았으나 이제는 특별한 호재가 없이는 찾는 이가 별로 없어 ‘한물 간 기업’으로 취급받는 증권거래소 상장업체다. 정문술 사장도 벤처의 요람인 테헤란 밸리가 아닌 여의도 금융가인 굿모닝 타워빌딩에 있는 작은 사무실이나 충청남도 천안에 있는 오프라인(Off-line) 공장에서 주로 일을 본다. 직원 380명에 자본금 100억원 정도. 겉보기엔 ‘잘 나가는’ 중소기업을 이끄는 사장님(?)이라고 해야 맞다.


"기술력만 있으면 반드시 성공"

그러나 그는 일찍부터 어떤 젊은 벤처인보다 철저한 벤처 정신과 경영으로 무장된 진짜 벤처인이다. 미국과 일본의 첨단 기술이 반도체 조립 장비분야를 석권하고 있던 1980년대부터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반도체 장비의 국산화에 인생을 걸었으며 기술 개발의 실패로 한때 빈털털이가 되기도 했으나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오늘의 미래산업을 일궈냈다.

또 불가능에 도전하지 않는, 첨단 기술의 개발에 사운(社運)을 걸지 않는 기업은 ‘소리만 요란한 빈껍데기 벤처 기업’이라고 단호하게 쓴 소리도 마다하지 않는 그다.

“벤처라면 어떤 기술을 개발해 시장에서 돈을 벌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사업 시작부터 주식시장을 통해 얼마나 튀겨 먹을 것인가에만 골몰하고 있어요. 벤처란 믿고 맡긴 남의 돈을 갖고 하는 사업입니다. 문을 닫으면 옛날에는 자기 집을 날렸지만 이제는 선량한 투자자의 집이 날아갑니다. 벤처 기업인의 도덕성에 문제가 있다면 퇴출돼야 마땅합니다”

정문술 사장은 첫 만남에서부터 요즘의 벤처 열풍과 돈끌어 모으기에 급급한 일부 몰지각한 벤처인에게 날카로운 비수를 꼽았다. 날카롭고 강인한 첫 인상이 뜨거운 벤처 열정과 함께 가슴에 와 닿았다.

그러면서도 의문이 스쳤다. 17년전 공직에서 쫓겨나면서 받은 퇴직금을 ‘확실한 사업’이라는 말 한마디에 속아 고스란히 날려버리고 맨바닥에서 시작한 자신과는 너무나 다른 오늘날의 벤처 스타에 대한 질투는 아닐까.

“벤처는 말 그대로 모험을 거는 사업입니다. 치열한 도전정신 없이 재벌 2세처럼 쉽고 편안하게 사업을 시작하면 안되죠. 실패를 경험하고 그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잡초같은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절절히 아쉬움을 토로하는 그는 “아무리 실패하더라도 기술력만 갖고 있다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 기술신봉자다.


확률 10%에 도전한 '벤처마인드'

그의 이런 철학이 세계적인 반도체 장비메이커인 미국의 테라다인, 일본의 어드밴테스트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미래산업을 일궈냈다.

미래산업의 천안공장에 가면 아직도 한구석에는 개발에 실패한 장비들이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다. 그것은 깨어진 미래산업의 꿈이기도 하고 끝까지 도전할 미래의 목표이자 상징이기도 하다. 미래산업이 그동안 개발한 반도체 장비는 대략 30종류쯤 된다고 한다.

그중에서 20여종은 기계라고 부를 수조차 없는 것이다. 대여섯종은 그럭저럭 개발비 정도는 건졌다. 나머지 서너종, 다시 말해 미래산업의 주력 생산품인 테스트 핸들러와 SMD 마운터, 리드 프레임 매거진 등이 미래산업을 풍족하게 먹여살리고 있다. 그야말로 확률 10%에 도전한 전형적인 ‘벤처 마인드’다.

더욱 놀라운 것은 벤처 기업의 생명이랄 수 있는 R&D 비율이 IMF의 한파가 몰아친 1998년에는 무려 77%에 달했다는 사실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기술개발에 나서야한다는 정문술 사장의 지시에 따라 매출이 전년도(610억원)에 비해 크게 준 170억원대로 떨어졌으나 R&D 투자는 오히려 두배 가까이 늘었기 때문이다.

물론 투자만 많이 한다고 기술개발이 이뤄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기술개발의 벽에 부딪혀 정문술 사장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자 청계산을 오르기도 했다.

“몇년간의 시행착오 끝에 초보적인 반도체 장비인 ‘리드 프레임 매거진’을 만들어낸 여세를 몰아 첨단장비인 무인 웨이퍼 검사장비 개발에 뛰어들었어요. 1985년부터 4년간 무려 18억을 쏟아부었지만 처참한 실패로 끝났지요. ‘모든 것이 끝났구나’하고 수면제와 소주병을 들고 청계산으로 향했어요”


핸들러장비 국산화로 새로운 시작

웨이퍼란 반도체의 가장 기본이 되는 소자를 말한다. 이 웨이퍼의 불량 여부를 검사하는 것은 숙련된 노동자의 눈인데 이를 대신할 장비를 만든다는게 미래산업의 계획이었다. 무모한 도전이었으나 정문술 사장은 자신의 모든 것을 털어넣었다.

자금 부족, 기술력의 한계, 좌절하는 연구진 등 말할 수 없는 고통 끝에 어찌어찌해 기계는 만들어졌으나 웨이퍼 검사시간이 숙달된 기술자보다 4배나 더 걸렸다. 사람의 눈을 대신할 머신비전(Mashine vision)이 도저히 사람을 따라가지 못했던 것이다.

“청계산에서 수면제를 털어넣으려는 순간 오기가 생겼어요. 18억을 쏟아부은 기술이 어디 가겠느냐. 웨이퍼 검사장비보다 수준이 한 단계 낮은 제품이야 못만들어내랴. 그래서 다시 시작한게 반도체를 성능에 따라 분류하는 핸들러 장비의 국산화였어요”

핸들러의 개발인들 쉬울 리는 없었다. 소프트웨어나 컨트롤러같은 핵심기술은 둘째치고 기계구조를 파악할 수 있는 설계 도면조차 구할 수 없었다. 눈썰미가 좋은 한 직원이 S사에서 돌아가고 있는 일본제 핸들러를 보고 도면을 그렸다. 새로운 시작이었다. 세월은 이미 민주화 투쟁이 격렬했던 1980년대를 마감하려하고 있었다.


이진희 주간한국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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