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검다는 이유만으로....

네명의 백인 경찰관들이 아프리카계 흑인 아마도 디알로를 향해 41발을 발사해 이중 19발을 명중시켰다. 검찰은 경찰관들에게 살인 등 6개 혐의를 적용했으나 법원은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법정에서 ‘무죄’가 선고되자 디알로의 어머니는 낙담한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며 걸어나갔고 피고인들과 가족들은 기쁨에 들떠 서로 껴안았다.

이슬람교 신자인 디알로의 어머니는 타임과 인터뷰에서 “어느 누구도 그렇게 죽을 수는 없다. 내 아들은 집에 들어 가려 했을 뿐이다. 그것이 범죄냐”고 되물었다.

디알로 사건 판결을 계기로 미국은 또다시 경찰의 가혹행위와 인종차별을 둘러싼 논란으로 들끓고 있다. 미연방수사국(FBI)은 최근 로스앤젤레스 강력반 경찰들이 아무런 이유없이 사람들을 위협하고 돈을 훔치고 총을 쏘았다는 주장에 대해 광범위한 조사에 들어갔다.

숨진 디알로의 아버지는 서부 아프리카에서 행상을 하며 자랐으며 쿠데타와 정치적 격변을 피해 기아나, 토고, 라이베리아, 태국, 베트남, 싱가포르 등에서 사업을 했다. 디알로는 그러나 미국에서 살기를 원해 정치적 난민신청을 했으며 길거리에서 양말과 장갑 등을 팔기도 했다.


거리범죄소탕반 집중사격받고 즉사

지난해 2월4일 자정께 디알로는 브롱크스 사운드뷰지역에 있는 집을 향하고 있었다. 이 시간이면 통상 뉴욕경찰청의 거리범죄소탕반이 빈민지역 순찰을 시작한다.

‘우리는 밤을 지배한다’는 모토를 갖고 150명의 요원들로 출범한 거리소탕반은 현재 400명으로 급격히 확대됐고 신규요원들도 3일간의 집중훈련만 마치면 바로 현장에 투입된다. 이들은 관할 구역없이 시 전역에서 범인추적과 체포, 용의자 검문 등을 맡는다.

지금까지 소탕반의 실적은 눈부시다. 전체 경찰인원의 2%밖에 되지 않지만 총기 관련 용의자의 20%를 체포했고 그 결과 살인사건 발생율도 급격히 떨어졌다. 그러나 문제도 적지 않다. 1997년과 1998년 소탕반은 9,000명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4만5,000명을 검문했으며 검문을 받은 사람들 대부분은 아프리카나 남미출신 이민자들이었다.

1999년 2월4일 디알로도 그 대상이 됐다. 소탕반의 숀 캐롤과 케네스 보스, 리처드 머피, 에드워드 맥맬론 등 4명은 강간범을 찾고 있던 중 아파트 문앞에선 디알로를 발견했다.

당시 목격자들은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고 가장 가까이서 현장을 증언할 수 있는 사람은 경찰관 캐롤뿐이었다. 캐롤은 법정증언대에 나와 “그의 행동은 이상했다. 우리가 다가가자 복도로 몸을 숨기려 했고 나는 총기범죄를 다뤄온 경험상 극도로 긴장했다. 디알로는 문잡이를 잡은 채 몸을 돌려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오른쪽에서 권총처럼 보이는 검은 물체를 뽑았다. 우리는 그가 총을 꺼낸 것으로 확신했다”고 말했다.

캐롤 등 경찰관들이 집중총격을 가한 뒤 디알로를 살펴본 결과 그가 오른손으로 잡은 물체는 지갑이었음을 알게 됐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디알로의 몸은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인종차별 항의시위 확산

각종 시위와 소동이 일상화한 뉴욕이지만 이 사건에 대한 항의시위는 점점 거세졌다. 미식축구스타 심슨의 애인 피살사건인 소위 ‘심슨사건’을 맡은 변호인단이 가담했고 영화배우 수잔 사란돈과 데이비스 딘킨스 전시장 등도 경찰청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거리범죄소탕반은 해체돼 요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이 사건은 또 각 당의 예비선거 이슈로도 등장했다. 앨 고어부통령과 빌 브래들리 상원의원은 공히 인종차별철폐에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뉴욕주 상원의원 후보인 줄리아니 뉴욕시장과 힐러리여사도 논쟁에 참여했지만 입장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힐러리는 당초 디알로에 대한 총격은 명백한 살인사건이라고 주장했다가 나중에 취소했고 판결뒤에는 신중한 입장으로 돌아섰다.

힐러리는 시민에게 경찰의 직무상 위험을 이해해야 하며 경찰과 시민이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반면 줄리아니 시장은 경찰을 옹호했다가 지지도가 급격히 떨어졌지만 여전히 적극적으로 논쟁에 임하고 있다. 줄리아니 시장은 법원의 판결이 나온뒤 디알로의 가족을 만났으나 시민에게 인종적 편견과 경찰에 대한 불신을 버리라고 촉구했다.

이번 사건의 가장 큰 피해자는 아마 브롱크스지역 검사인 로버트 존슨일 것이다. 아프리카계인 존슨은 이 사건 담당팀에 흑인을 배제하는 바람에 사건에 임하는 자세를 의심받기도 했으며 피고인들을 적절히 추궁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반면 변호인단의 활약은 눈부셨다. 조셉 테레시 판사는 백인남자 7명, 흑인 여성 4명, 백인여성 1명으로 구성된 배심원들에게 경찰관이 비록 실수는 했지만 합리적으로 위협을 판단해 대응했다는 확신이 들면 무죄평결을 내려야 한다고 지침을 내렸는데 경찰관 캐롤의 진술은 이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배심원들은 21시간동안 고심한 끝에 피고인 경찰관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재판을 면밀히 지켜봐온 법무부는 경찰관들의 행동이 시민권을 침해했는지 여부를 조사하겠다고 밝혔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1심판결을 뒤집지는 못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경찰이 진실 말하면 용서하겠다”

판결이후 디알로 가족은 다음 대응책에 고심하고 있다. 숨진 디알로는 이민국 관리에게 자신은 서부 아프리카의 인종청소를 피해온 난민이라고 주장하면서 군인들이 삼촌을 고문했고 아버지를 살해했다고 거짓말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죽었다’는 아버지가 ‘죽은’ 아들을 위해 미국에 온 것이다. 디알로 가족은 거리범죄소탕반에 대한 관리책임을 물어 뉴욕경찰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다.

한 TV논평가가 말했듯이 경찰청은 ‘기소되지 않은 공범자’라는 것이다. 한 경찰관은 “법정에 서야할 것은 경찰청이다. 경찰관들은 실적을 채우러 나갔을 뿐 누구를 죽이러 간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경찰청은 실적을 원했다”고 말했다.

디알로의 어머니는 아직까지 경찰관들과 화해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판결이 내려진 직후 변호사가 “기자들이 경찰관 캐롤과 화해하겠냐고 물을 것”이라며 어머니의 반응을 떠봤다. 그러자 그녀는 “그들이 진실을 말한다면 그때 용서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리 송용회 주간한국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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