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마찬가지로 정치에도 벤처가 필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재벌식의 정치로 온갖 정치적 자원을 독점해온 ‘3김 정치’의 구도를 깨기 위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대학을 졸업하는 젊은이들이 대기업에의 취업보다는 벤처 기업쪽을 선호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점을 볼 때 이미 세상은 크게 변하고 있다. 오직 변화를 외면하고 있는 정치에서도 벤처가 탄생해야 정치개혁과 정치발전이 가능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나라는 정치에 관한 한 ‘벤처의 설립’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헌법에 정치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지만 현실에 있어서는 공염불에 지나지않는다. 마치 기업의 설립과 활동에 관해 무지막지한 인허가 과정을 만들어 사실상 경제활동의 자유를 제약하고 있는 것과 같은 형국이다.

재벌과 같은 존재가 돼버린 기존 정당, 그리고 재벌총수와 같은 당의 실력자에게 머리를 조아리지않고는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정치에 입문하기 어렵게 만들어놓았다.

무엇보다 정치인에게 가장 필요한 정치자금에 관해 현행법은 엄청난 규제를 하고 있다. 정치자금을 모금할 수 있는 후원회를 구성할 수 있는 사람을 현역 국회의원 또는 정당의 지구당위원장으로 못박아놓았다.

즉 기왕에 지역구 국회의원을 하고 있거나 전국구 국회의원을 하는 등 기득권을 가진 사람, 아니면 당의 ‘낙점’을 받아 지구당위원장에 ‘임명’된 사람에게만 정치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놓은 것이다. 두 가지 경우를 거치지않고 정치를 하려면 결국 자기 호주머니를 털어야 한다는 말이다.

가히 선거의 천국이라고 할 미국의 경우를 잠시 살펴보자. 연방 하원의원을 뽑는 선거가 2년마다 치러지는데 이때 연방 상원의원외에도 주 단위에서 상·하의원, 지사, 검찰총장, 판사, 보안관, 교육위원 등 헤아릴 수 없는 공직선거가 함께 이루어진다.

이같은 공직선거에 출마할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선관위에 ‘탐색위원회’(Exploratory Committee)를 만들어 신고한다. 정식으로 ‘선거운동본부’(Campaign Committee)를 만들기 전에라도 자신이 출마할 경우 당선가능성이 있는지의 여부를 알아보기 위한 활동을 하는 단계다. 여론조사를 하거나 지역구민을 만나는 등의 활동이 허용되는데 이에 필요한 경비도 모금을 통해 조달할 수 있다.

그러다가 정 자신이 없으면 그 단계에서 그만 두는 것이고 괜찮다 싶으면 선거운동본부를 차려놓고 정식으로 모금활동을 하면서 선거운동에 들어간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어찌된 일인지 한편에서는 공명선거의 중요성을 외치면서 막상 후원회를 만들어 떳떳하게 정치자금을 모금하는 길을 봉쇄해놓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누구에게나 허용할 경우 정치의 과열, 혼란 또는 정치활동을 빙자한 사기 등 부작용을 염려한 탓일까?

하지만 이는 앞뒤가 뒤바뀐, 말도 안되는 논리다. 정치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원칙이고 그로부터 수반될 가능성이 있는 부작용은 다른 방식을 통해 막아야 한다. 후원회를 통해 모금한 돈의 사용처를 100% 공개토록 한다든지, 비록 자신의 돈을 썼다하더라도 역시 그 내역을 투명하게 하는 쪽으로 하면 될 것이다.

처음부터 잘 될 수는 없겠으나 국세청에서 탈세하는 기업을 찾아내는 정도의 실력이라면 시행하지 못할 바도 없다. 또 정치활동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어느 정도의 부작용을 감수하는 것이 지금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지금보다 정치가 나빠진들 얼마나 더 나빠지겠는가’라고 한다면 지나치게 냉소적인 말일까?

누구나가 바라는 정치개혁과 정치발전을 위해서는 하루빨리 ‘규제 완화’, 아니 ‘규제 철폐’가 이루어져야 한다. 정치권에도 경쟁의 논리가 도입되지 않는 한 지금의 ‘3김 정치’는 절대 끝나지 않는다. 아무리 새로운 사람이 정치권에 유입돼도 결국 ‘3김 정치’의 구조 속으로 편입되기에 ‘패거리 정치’는 계속된다. 비록 10%도 안되는 성공 가능성일지라도 정치를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도전해볼 수 있는 ‘정치 벤처의 시대’가 절실하다.

신재민 주간한국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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