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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 믿을만 한가] "여론조사… 여론조작 아냐?"

총선 앞둔 정치권, '얼치기 조사' 판친다

“여론조사 믿지 마세요”

정치권이 사실상 4·13 총선정국에 들어가면서 정치권 주변은 물론 여론조사 업계에서도 나날이 늘어나는‘얼치기 여론조사’에 대해 손사래를 치고 있다.

이번 총선은 역대 어느 선거보다 각 당의 경쟁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고 또 유권자의 ‘물갈이 기대’가 높아지면서 가장 손쉬운 과학적인 판세분석 잣대인 여론조사가 각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것도 정치권의 손만 거치면 변질되어온 전례에 여론조사도 예외는 아니다.

선거일을 한달 정도 앞두고 ‘선거특수’를 노린 엉터리 여론조사기관이나 기획사 등 이른바 ‘선거 떳다방’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여론조사를 왜곡시키는데 앞장서고 있다.

서울에서 여당 공천을 받아 출마한 한 40대 후보자의 선거운동 관계자는 “이름도 알 수 없는 기관 이름을 대면서 싼 값에 선거구 여론조사를 해주겠다는 제의가 여러차례 있었다”면서 “일부 후보들은 기획사 등을 내세워 자기에게 유리한 여론조사를 실시해 선거운동도 하고 결과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엉터리 여론조사 난무, 편법에 악용

정치권에서는 여론조사가 이미 고전적인 편법 선거운동방법으로 굳어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각 당이 공천심사에서 자체 여론조사의 비중을 크게 높이면서 여론조사의 신뢰성을 더욱 떨어뜨리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지적이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현역의원 등을 공천에서 탈락시키면서 당에서 실시한 전화 여론조사 결과를 유력한 근거로 내세웠지만 당사자들은 물론 아무도 당이 실시한 여론조사의 객관성을 믿지 않았다. 시민단체도 여론조사가 당의 보스들이 당을 장악하려는 의도에 악용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민주당과 한나라당에 전화여론조사 설문내용과 표본추출방법 등에 대한 자료공개를 요청했지만 각 당은 이를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

공천 신청자들도 나름대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제출하는 등 ‘여론조사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실제로 서울 중랑을과 마포을, 인천 계양·강화을에서는 일부 입후보 예정자들이 자신을 음해하는 전화여론조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선관위에 고발했고 민주당 순천지역에 공천신청을 낸 한 인사는 “내 지지도가 현역의원의 4.5배”라는 여론조사 자료를 당내에 뿌려 해당 의원이 여론조사기관에 격렬히 항의하는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2월13일부터 후보자나 정당명의로 선거관련 여론조사가 전면 금지되면서 유명 여론조사 기관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사이비 여론조사 기관이나 후보자들이 여론조사를 벌이면서 유명기관의 이름을 도용하기 때문이다.

한국 리서치의 한 관계자는 “‘어느 어느 지역인데 여론조사를 한 적이 있느냐’는 확인요구가 적지 않다”며 “그러나 전화여론조사는 조사기관을 추적하기가 불가능하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신뢰성·전문성 없는 사이비 많아

특히 올해 들어서는 신뢰성이 의심스러운 인터넷 여론조사가 신종 수법으로 등장했다. 지난해 12월1일 개설된 모 인터넷 사이트는 전국의 모든 지역구별 출마예상자에 대해 모의투표를 실시해 1주일 단위로 결과를 공표했다가 사법당국에 선거법 위반혐의로 입건됐다.

경찰조사 결과 이 사이트는 지역구당 투표수가 평균 10표도 되지 않는데도 단순히 후보자별 득표비율만 공개한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로 서울의 한 지역구의 경우 현역 국회의원과 원외 지구당위원장의 득표율이 각각 20%, 60%로 공개되자 원외 지구당위원장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대대적으로 홍보하기도 했다.

이밖에 다른 5개 사이트도 정당별 지지도 등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면서 관련자료를 전혀 밝히지 않고 지지자수와 비율 등만 공개했다가 선거법위반 혐의로 입건됐다.

선거관련 인터넷 여론조사가 사법당국에 입건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선거 전문가들은 인터넷 여론조사의 경우 조사에 참여한 사람의 정확한 인적 사항을 파악할 수 없어 몇몇 사람이 결과를 좌지우지할 여지가 있어 신뢰도가 상당히 떨어지지만 간편성과 폭발적인 전파효과 등 때문에 앞으로 확산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고 있다.

전통적인 여론조사 결과도 일반인이 신뢰성을 판단하기는 힘들다는 지적은 마찬가지다. 국내 여론조사 회사는 수백개에 이르지만 이중 그나마 업계에서 인정을 받는 곳은 5~10개 정도다. 일부 여론조사 회사들은 덤핑으로 수주를 받아 주부사원에게 최소한의 교육도 없이 면접에 바로 투입하거나 설문조사 내용도 의뢰인에게 유리하게 작성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코리아리서치 센터 김정애 차장은 “선거여론조사가 다른 조사보다 까다로운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유권자들은 정치혐오증이 심한데다 선거 때마다 여론조사 기관을 빙자해 걸려오는 마구잡이식 전화에 대한 짜증, 입후보자에 대한 불충분한 지식 등 때문에 정확한 여론조사를 하는데 상당한 노하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표본의 수나 표본오차 등도 중요하지만 설문 항목이 어느 정도 엄격하게 작성됐는지, 면접 요원이 얼마나 훈련을 받았는지, 결과 분석이 얼마나 객관적으로 이뤄졌는지 등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선거에 악용하는 후보들도 문제

후보자가 지역구 여론조사를 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대략 500만~1,000만원 이다. 전체 선거비용 중 차지하는 비중은 그다지 크지 않지만 객관적인 검증기관이 없다는 점도 후보자들이‘무늬뿐인 여론조사’에 기대는 요인이 되고 있다.

15대 총선에서 야당의원의 선거참모로 일했던 한 인사는 “여론조사의 신뢰성이 의심스럽더라도 누구도 시비를 걸지 않고 여론조사가 주는 과학적인 이미지때문에 홍보만 잘하면 들어간 비용에 비해 적지 않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여론조사가 여론조작으로 왜곡되는 사례를 막기 위해 학계에서도 나름대로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해 정치·사회·신문방송학 등 관련 학자들이 만든 조사연구학회 산하 조사윤리위원회(위원장 김영석 연세대 신방과교수)는 이달내로 여론조사의 수칙과 윤리강령, 언론이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할 때 고려해야 할 사항 등을 종합해 발표할 계획이다. 또 선거후에는 관련 여론조사의 허실에 대한 분석작업도 하겠다는 방침이다.

짜맞추기식 여론조사는 여론조사 결과의 공표가 금지되는 오는 28일까지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여론조사업계에서는 이때부터는 후보자들이 선거판세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한 진정한 의미의 여론조사가 이뤄지겠지만 그 이전까지는 사이비 여론조사가 판칠 것이 분명하다고 전망하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조사기관이 권위있는 곳인지, 의뢰인을 밝혔는지 여부를 살펴보는 것이 여론조사의 신뢰성을 판단하는 가장 간편한 방법이라고 제시했다.

송용회·주간한국부 기자 songy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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