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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 믿을만 한가] 여론조사기관 실사 현장

신뢰도는 면접원 자질에 달려

3월9일 오후 5시 경기 안양시 동안구 범계동에 있는 한 여론조사기관의 실사 사무실. 200평 남짓한 공간에 100여석의 전화 부스와 컴퓨터, 설문지, 모니터링 장치들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문에 들어서는 순간, 마치 여학교 휴게실에 온 듯 높은 톤의 여자 목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여론 조사 기관인데요.” “김여사님은 투표하실 생각이세요?”“바쁘신데 죄송합니다.” “장시간 시간내주셔서 고맙습니다.” 20대~40대에 이르는 여성 30여명이 전화통을 들고 누군가와 밀고당기는 씨름을 하고 있었다. 남자라고는 20대 한 명이 전부. 면접원과 본사 직원을 포함한 40여명이 모두 여성이었다.


면접원들 ‘전화와의 싸움’

이날 실사 도중 본부석에서 설문을 모니터링하던 주부 모니터 신경자(36)씨가 갑자기 헤드폰을 빼고 26번 부스의 면접원에게 달려갔다. “○○씨, 있는 그대로 읽으라는데 왜 작의적으로 설문지에 없는 내용을 물어보는 거예요. 대충대충하지 마세요. 앞으로 한번 더 그러면 퇴장시키겠어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면접원은 머리를 한번 긁으며 “조심할께요”하고 답했다.

그런지 채 5분이 안돼 에디팅(Editing·설문지 검증)을 하던 요원이 30대의 한 주부 면접원을 방송으로 호출했다. “○○씨, 24세 여성이 대학 강사라고 되어 있는데 다시 한번 확인하세요. 다섯번째 면접지에 성별은 남자로 돼 있는데 직업이 주부라니 말이 돼요? 그리고 참고로 웹디자이너는 직업 분류에서 전문직이 아니고 사무직이에요. 전문직은 교수 의사 변호사같이 사회적 지위가 있는 직종만 해당돼요. 명심하세요.” 상당히 긴장된 분위기가 흘렀다.

이런 전화와의 싸움이 시작된 지 6시간이 지난 오후 9시 무렵. 다른 면접원은 모두 빠져나간 썰렁한 사무실에 면접원 두 명이 연신 전화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전화받으신 선생님 연세가 혹시 20대 아니세요?” “밤늦게 죄송한데 5분만 설문에 응해주시면 안될까요?” 이 두 사람은 이날 처음 나온 초보. 조사대상자중 아직 20대 남자 한 명을 채우지 못해 애를 먹고 있었다.

올 1월부터 이 일을 시작했다는 주부 면접원 홍모(43)씨. “전화 여론조사는 각 단계별로 검증을 거치게 돼 있어 외부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휠씬 까다롭게 진행된다”며 “특히 초보자의 경우 특정 연령층의 단 한두명을 조사하지 못해 2~3시간을 끄는 경우가 많다. 가장 찾기 힘든 연령층은 20대 젊은이다. 이들은 조사가 이뤄지는 낮시간에 거의 집에 없어 연결이 안된다”고 말했다.

우리가 흔히 전화 여론조사 요청을 받으면 별 생각없이 마지못해 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실제 각 여론조사 기관을 통해 발표되는 조사는 나름대로 여러 단계의 검증 과정을 통해 추출된 결과물이다.


질문지 작성이 조사 성패 좌우

한 클라이언트(의뢰인)로부터 조사 의뢰가 들어오면 해당 분야의 연구원과 의뢰인이 함께 조사 성격과 내용, 지역, 조사대상 등의 개괄적인 내용 외에 모집단 추출방식, 표본수 설정 등을 협의한다.

이에 대한 협의가 이뤄지면 연구원 책임하에 면접 질문지 작성에 들어간다. 질문지 작성은 조사의 성패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과정이다. 의뢰인이 개입하면 여론 조사를 개인적으로 이용할 여지가 있어 철저히 배제한다. 그래서 선거나 마케팅 조사의 경우에는 정해진 포맷에 새로 추가된 내용을 넣는 식으로 작성된다. 질문지가 만들어지면 의뢰자의 의견을 참고하는 절차를 거쳐 최종 확정된다.

㈜미디어리서치의 김지연 선임연구원은 “마케팅이나 선거 여론 조사의 경우 상당수 의뢰인이 자신에게 유리한 질문을 넣어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조사기관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런 사적인 요구는 단호히 배격해야 한다. 공정성과 객관성, 그것이 조사기관의 경쟁력이자 생존 방안이다”고 말했다.

이렇게 질문지가 만들어지면 조사 D데이에 면접원을 소집, 간단한 교육을 거친 뒤 실사에 들어간다. 조사 샘플은 최소 500개에서 2,000개 수준에서 결정된다. 일반적으로 1,000개의 샘플을 표본 조사할 경우 오차가 3.1%다.

샘플 조사비는 샘플 한개당 1만원 수준이다. 샘플 수가 2배로 늘어난다고 해서 표본 오차가 크게 줄지 않는 속성이 있어 비용과 신뢰도를 따져 대개 1,000 샘플이 가장 선호된다. 그럴 경우 조사비로 약 1,000만원이 소요된다.


조사 신뢰도, 면접원 자질에 달려

신뢰도 높은 결과를 추출해내기 위해선 면접원의 자질이 매우 중요하다. 면접원은 응답자들이 조금도 부담이나 의심을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해 100% 여성들로 구성된다.

또 지역감정이 뿌리 깊은 국내 정서 때문에 흔히 이 업계에서 말하는 ‘사투리 바이러스’로 인한 비표준 오차(표본수에 따라 정해진 오차 이외에 발생할 수 있는 오차)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표준말을 구사하는 사람을 쓴다.

김완규 실사팀장은 “조사의 신뢰도는 면접원의 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면접원은 가급적 여대생보다는 지속적으로 일을 할 수 있고 사회 경험도 있는 30대 중반의 주부를 가장 선호한다”고 말했다.

실사 과정에서도 여러 단계의 필터링을 거친다. 우선 면접원이 전화로 조사를 하면 이를 이어폰으로 들으면서 감시하는 모니터링 과정이 부가적으로 실시된다. 이렇게 해서 1차 조사 보고서가 작성되면 검증원이 다시 한번 응답자에게 전화를 해서 조사 내용이 사실인지를 확인하는 검증 작업을 벌인다.

이것이 확인되면 에디팅 단계에 들어간다. 에디팅은 전문가들이 조사 보고서를 서면으로 확인하는 절차다. 직업별 성별 연령별 코드가 제대로 분류됐는지, 조사 대상과 응답 내용이 올바르게 정리됐는지를 서면으로 대조한다.

에디팅 작업이 끝나면 조사된 숫자를 컴퓨터에 집계·입력하는 데이타 키 인(Data Key In)에 들어간다. 이렇게 일목 요연하게 조사 결과가 집계되면 본사 연구원이 데이타 분석 작업에 들어가고 여기에서 의뢰인에 대한 최종 보고서가 만들어지게 된다.


고학력·젊은층이 적극적으로 호응

최근 붐을 이루는 정치 여론조사의 경우 여론조사기관은 계약직 면접원에게 응답자 한명당 1,000원의 조사료를 지급한다.

질문수는 대략 10개 내외이나 질문 내용이 많거나 난해한 질문이 있을 경우엔 1,500원까지 주기도 한다. 야간대학을 다니며 만학의 꿈을 키우고 있다는 강모(28)씨는 “본래 면접원에겐 의뢰자가 누구인지 알려주지 않는게 원칙이나 가끔 질문을 하다보면 특정인이 여론 조사를 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을 알리려 하는 것인지 애매한 경우가 많이 있다. 이같이 편향적 질문을 할 때는 응답자로부터 심한 욕을 먹기도 한다.

이때가 가장 난처하다”고 털어놓았다. 7년째 면접원 일을 해온 베테랑 서모(38) 주부는 “응답 대상자는 전화번호부에서 선택하는데 노련한 면접원은 거주 지역이나 이름을 보면 대략 생활 수준이나 나이를 짐작한다”며 “고학력일수록 젊은 층일수록 면접에 적극적으로 응해준다”고 말했다.

이날 면접원들은 한결같이 ‘우리 국민의 인식이 자신의 신분이나 의견을 공개적으로 표출하는데 상당히 보수적’이라는데 공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들 면접원중 상당수가 이날 취재 인터뷰에 응하기를 꺼렸다. 신분 노출에 대한 거부감은 누구든 여전한 듯 했다.

송영웅·주간한국부 기자 hero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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