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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 고어·부시 맞대결로 좁혀져

미국 대선이 당초의 예상대로 민주당의 앨 고어 부통령과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텍사스주지사의 싸움으로 사실상 귀결됐다. 미 언론과 정치분석가들은 올 11월에 치러질 본선의 승부가 어떻게 판가름날지 분석하기에 분주하다.

언론은 올 대선이 전직 상원의원의 아들인 현직 부통령과 전직 대통령 아들인 현직 주지사의 맞대결, 사립 명문인 하버드대(고어)과 예일대(부시)의 자존심싸움이라며 흥미를 부채질하고 있다.

본선 대결을 점치기 위해 1차적으로 참고할 자료는 그간 실시돼온 각종 여론조사 결과. 여론조사 기법이 발달한 미국의 경우 선거관련 여론조사는 정확하기로 유명하다. 실제로 1월부터 시행된 예비선거와 코커스의 여론조사는 단한번도 예외없이 승자를 맞히는 정확성을 과시해 신뢰성을 입증했다.

이 여론조사에 따르면 일단 부시가 고어에 줄곧 5-10% 포인트 차로 우세를 지속해와 부시가 유리한 고지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부터 거의 매주간 여론조사를 해오고 있는 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부시는 지난해 뿐만 아니라 올 들어서도 단한번 고어에 뒤진 적없이 일방적 리드를 지켜오고 있다. 2월27일 실시된 조사에서도 부시는 52%의 지지를 얻어 43%를 얻은 고어에 앞서 있다.

그러나 양당의 대선주자가 사실상 확정된 ‘슈퍼 화요일’(3월7일) 이후에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는 고어의 지지율이 급상승, 부시와 엎치락뒤치락하는 백중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부시 진영이 긴장하고 있다. CNN과 타임이 슈퍼 화요일 다음날인 8일부터 이틀동안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고어는 48%를 얻어 46%를 획득한 부시를 앞질렀다. 본선 가상대결 여론조사에서 고어가 부시보다 우세를 보인 것은 처음이다.


고어 상승세에 탄력, 부시 고전 예상

CNN은 “고어의 잠재력이 드디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며 “존 맥케인 상원의원과 상호비방을 불사하는 이전투구를 벌이는 과정에서 부시의 이미지가 크게 손상된 때문인 것같다”고 분석했다.

CNN은 특히 “NBC와 월스트리트저널이 3월2일부터 5일까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고어가 부시에 처음으로 46%대46%의 동율을 기록한 이래 전세가 역전된 점을 눈여겨 봐야한다”며 “이는 고어의 상승세가 탄력을 받기 시작한 것을 의미하므로 앞으로 부시의 고전이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이같은 상승세를 차지하더라도 예비선거를 통해 드러난 객관적 전력을 종합분석해보면 고어가 부시보다 유리하다는게 대체적인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예리한 정치분석기사로 성가가 높은 뉴욕타임즈(NYT)는 슈퍼 화요일 다음날 ‘강해져가는 고어, 약해져가는 부시’라고 두 후보를 비교했다.

NYT는 “예비선거를 치르면서 고어는 빌 브래들리라는 만만한 적수를 만나 별다른 출혈없이 적당한 워밍업을 하면서 강해졌다”고 분석했다. 이에 비해 부시는 맥케인이라는 강적을 만나 자금도 바닥나고 체면도 손상이 가는 등 ‘상처뿐인 면류관’을 썼다고 평했다.

공화당 조직이 크게 분열된 점과 무소속 및 온건중도파에게 밉보인 점도 부시에게는 약점이 된다. 무소속에 인기가 높은 맥케인을 뛰어넘기 위해 부시는 보수성향을 더욱 내세울 수밖에 없었는데 정작 본선에서 이들의 지지가 없이는 승리가 난망하다.

후보를 사퇴한 브래들리 전상원의원이 깨끗이 패배를 승복하며 고어 지지를 선언한 데 비해 ‘고집불통’ 맥케인은 부시를 지지한다고 언급하지 않아 부시 진영을 애타게 한 점도 변수다. 예비선거 과정에서 부시에게 당한 인신공격의 앙금탓인지 맥케인은 자신을 지지했던 유권자에게 아무런 언질도 하지 않았다.


부시, 무소속표 확보 급선무

이때문인지 맥케인 지지자중 상당수가 고어 지지로 선회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뉴스위크가 3월10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맥케인 지지자들중 48%가 고어를 지지하겠다고 한 반면 부시를 지지하겠다고 밝힌 경우는 41%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에서 공화당이나 민주당 소속이 아닌 무소속으로 등록한 유권자는 30% 내외에 이른다. 역대선거 결과를 보면 무소속 유권자표를 누가 더 확보하느냐에 승부가 갈리곤 했었다. 맥케인 지지자중 상당수가 무소속 유권자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부시는 맥케인의 명시적 지지를 확보하는게 급선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예비선거 과정에서 가톨릭 신자들로부터 적대감을 불러일으킨 점도 부시가 극복해야할 과제. 동북부의 뉴잉글랜드 지역을 비롯 중부지역은 가톨릭교도가 20-30%에 이르고 있어 부시로서는 이들과 화해하지 못할 경우 낭패를 당할 것으로 보인다.

부시 진영의 자중지란으로 어부지리를 얻고 있는 고어에게 또다른 호재는 민주당 집권이래 기록적인 호황을 구가하고 있는 미국 경제. 분석가들은 미국 역사상 유례없는 경제번영을 이룩해낸 민주당 행정부의 능력을 고어가 제대로 홍보할 경우 부시 진영과 공화당은 큰 애를 먹을 것으로 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본격화할 두 후보간의 TV토론을 염두에 두면 현직 부통령으로서 7년여동안 갈고 닦은 행정경험과 박식함으로 무장한 고어의 우세가 당연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지 않아도 고어는 고교시절부터 ‘디베이터(토론가) 고어’로 불릴 정도로 1대1 토론에서는 발군의 실력을 지니고 있다.

그간 외국 수반의 이름도 제대로 대거나 적절한 표현, 단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등 실수를 연발하는 바람에 지적 수준까지 도마에 오르기도 한 부시로서는 TV토론의 고지를 무사히 넘는게 가장 큰 현안이라 할 수 있다.


변수 많지만 고어 우세 점쳐

여러모로 고어가 유리하다지만 부시 진영의 저력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은 아버지 조지 부시 전대통령을 비롯, 30여명의 현역 주지사와 과반수가 넘는 상원의원 등 거대한 현실 정치세력의 압도적 지원. 맥케인과의 혈전을 치르느라 8,000만달러에 이르는 선거자금이 거의 바닥났지만 이들이 팔을 걷어부치고 나설 경우 자금난도 쉽사리 해결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제2의 거대주인 텃밭 텍사스를 비롯, 동생 젭이 주지사로 있는 제4의 주 플로리다 등 남부지역에서 일방적 지지를 받고 있는 점도 강점이다. 게다가 인구가 제일 많은 캘리포니아주 인기투표에서 민주당표보다 공화당표가 앞선 점도 부시 진영을 고무시키기에 충분하다.

1992년 대선이래 캘리포니아주는 민주당 우세지역이었으나 이번 인기투표에서는 1위 고어와 4위 브래들리를 합한 민주당 전체지지율(42%)이 2위 부시와 3위 맥케인를 더한 공화당 전체지지율(51%)보다 낮았다.

이상의 여러가지 점을 감안할 때 전반적으로 고어가 부시에 비해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는게 미국 현지의 시각이다. 그러나 앞으로도 몇가지 변수는 남아 있다. 누구를 런닝메이트를 정하느냐는 것과 폭로전이 시작될 경우 누가 치명상을 입느냐의 여부 등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부시의 경우 젊은 시절의 마약복용, 병역특혜 의혹 등이 있고 고어에게는 1996년 대선 선거자금모금 의혹문제 등이 잠재적인 지뢰로 남아있다.

윤승용 워싱턴특파원 syy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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