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캡티브

살인죄로 감옥에 갇혀 있는 음산한 분위기의 사내와 미모의 여의사의 사랑.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이야기이고, 제 정신 가진 사람이라면 시작도 못해볼 관계이지만 영화에서는 처지와 상황이 너무나 다른 남녀간에도 절실하고 진지한 사랑이 이루어진다.

‘영화니까 그렇지’하는 단정은 바로 이런 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이므로 너무나 현실성없어 보이는 남녀 사랑을 이야기하려는 영화는 그만큼 캐릭터 묘사와 상황 연출에 공을 들여야 한다.

안젤라 포프 감독의 1994년 작품인 영국 영화 <캡티브:Captives>(18세 이용가, 우일 출시)는 다음과 같은 전략을 취했다. 감옥과 그 주변만으로 한정된 단촐한 배경과 감옥이라는 배경에 필연적으로 따르기 마련인 범죄로 마약 거래에 따른 스릴과 액션을 취했다.

또한 연기력과 인지도 면에서 점수를 줄 수 있는 스타 캐스팅으로 팀 로스와 줄리아 오몬드를 배치했다. 팀 로스는 악역이나 어두운 분위기 연출에는 일가견이 있는 배우고, 줄리아 오몬드는 모델이나 귀족처럼 고급 의상을 우아하게 소화해내는 여배우다.

아름다운 치과 의사 레이첼 클리포드(줄리아 오몬드)는 남편의 외도로 인한 별거로 무척 힘들어 하고 있다. “사막에 홀로 버려진 것 같다”는 레이첼의 말에 친구는 “원하는 것을 모두 얻긴 힘들다”고 위로한다. 교도소의 정기 검진을 맡게된 레이첼은 필립 채니(팀 로스)란 죄수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우울한 분위기의 필립은 이를 심하게 갈아 수평이 되다시피 한 상태.

스트레스가 심한 사람이 이런 행태를 보이는데, 런던의 택시 기사들이 그렇다고 레이첼은 설명한다. 집 근처 수퍼에서 필립을 만나게 된 레이첼. 통신 대학을 다녀 일주일에 한번 외출할 수 있다는 필립은 5년동안 면회온 사람이 없다며 레이첼에게 은근히 호소한다. 면회는 솔직한 대화와 키스로 이어지고 화장실에서의 격렬한 성관계로 발전한다.

그러나 외로움에 지친 두 사람의 불안하고 은밀하고 절실한 만남을 지켜보는 날카로운 눈길이 있었으니, 감옥을 쉽게 드나드는 레이첼을 이용하여 마약 운반을 하려는 죄수들의 음모가 그것이다. 환한 대낮에 떳떳이 만날 수 없는 남녀 관계. 직장과 형량을 건 무모한 도박에다 목숨까지 위태로워질 지경이다. 그럼에도 두 사람의 절박한 만남을 만류하고 싶지가 않다.

두 사람 다 너무나 믿고 사랑했던 배우자의 외도 현장을 목격한 끔찍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자는 정신없이 현장을 빠져 나왔고, 남자는 미소로 위장한 아내를 용서할 수 없어 살인을 했다는 차이가 있을 뿐.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과거를 공유한 두 사람이 이제 서로를 목숨 걸고 구하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섬으로 이송되는 남자를 따라가겠다는 여자의 마지막 말을 들으며 감옥 밖에서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는 영화 관객은 현재 나의 사랑이 너무나 초라하고 절실하지 않다는 깨달음을 얻게될지도 모르겠다. 호주 출신 여성 감독 줄리안 암스트롱도 죄수와 간수 부인의 사랑과 탈출을 그린 <소펠 부인>을 발표한 바 있다. <소펠 부인>의 주인공은 멜 깁슨과 다이안 키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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