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극장주들이 싫어하는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스크린 쿼터(한국 영화 의무상영일수). 또하나는 문예진흥기금. 나머지 하나는 입장권 전산망.

모두 돈과 관련된 것이다. 극장들은 말로는 ‘스크린 쿼터’는 “우리도 필요하다”고 하지만 아직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속이고, 줄이려 한다.

문예진흥기금은 정부가 문화 진흥과 지원을 위해 공연장 입장료에서 일정 비율을 가져가는 준조세 성격의 기금. 정부는 이를 페지할 예정이었으나 적립 목표액인 4,500억원이 달성되는 2004년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이 기금의 최대 어장은 극장. 1년에 200억원 이상이 이곳에서 모아진다. 더구나 기금 모금은 극장측이 자발적으로 대행해 주고있다. 만약 극장이 모금대행 약정을 지키지 않을 경우 입장권 판매창구에서 문예진흥원 직원이 일일히 관객에게 받아야 한다.

극장측이 이 기금에 거부감을 보이는 이유는 방공광고에서 거두는 방송발전 자금의 경우와 비슷하다. 돈은 영화쪽에서 받고는 엉뚱한데 쓴다는 것이 다. 왜 우리 돈으로 남 좋은일 시키냐고.

영화계의 숙원인 입장권 판매 전산망 실시도 벌써 몇 년전부터 ‘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었던 숙원사업. 흥행, 관객 동원에 대한 정확한 통계 하나 제대로 낼 수 없는 것이 우리나라 영화계였다. 심지어 2년전 검찰이 탈세혐의로 S극장 K사장을 구속했을 때도 “입장권 판매 전산화를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집행유예로 풀어주었다는 얘기가 있다.

이미 서울의 많은 극장이 입장권 전산발매를 하고 있지만 지방은 여전히 옛날처럼 표를 찍어 팔고 있다. 역시 돈때문이다. 흥행수익 분배를 속이고 탈세를 위해 과거 입장객 표를 받아 다시 파는 수법이 지금이라고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극장들은 이 세가지만은 어떤 핑계를 대든 늦추거나 거부하려 든다.

지난해에는 한국 영화가 사상 유례없는 흥행을 기록해 굳이 스크린 쿼터가 아니라도 한국 영화를 걸 수 있었는데도 허위 공연일수가 평균 7일 가까이 됐다. 물론 1998년보다는 3.85일 감소한 것이지만 여전히 외화를 상영하고는 한국 영화를 상영했다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스크린 쿼터 감시단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 영화 상영일수는 115.11일로 1997년(97.55일)보다 평균 17.56일 늘어났지만 미달 극장이 전국(310개) 30%인 103곳이나 됐다. 그중 10일 이하는 59개 극장이며, 20일 이하가 28개 극장이나 된다. 극장들은 문화관광부 장관이 통상 20일을 경감해 줘 126일이던 스크린 쿼터를 지난해에는 한국 영화시장이 커졌다고 10일만 줄여주었기 때문이라고 반발한다.

반발은 입장권 판매 전산망에서도 나왔다. 기존 시설을 무시하고 정부가 시스템의 우월성을 내세우며 특정업체를 지정해 일방적으로 통합전산망 작업을 강행하려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가장 반발하고 있는 서울극장은 이미 다른 업체(저스트 커뮤니케이션)의 프로그램을 활용해 왔고, 이 극장을 모델로 다른 배급라인의 극장들도 같은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는데 새로운 시스템 구축에 따른 비용과 수수료까지 내라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이야기다. 3,000만원이면 될 것을 6억원이상 더 내야 한다는 것이다. 저스트 커뮤니케이션은 국세청을 상대로 고시무효소송까지 제기했다.

이 두 가지 불만이 문예진흥기금 모금 약정 체결의 거부로 이어졌다. 그래서 올해 극장에서 문예진흥기금이 아직 한푼도 걷히지 않고 있다. 겉으로는 스크린 쿼터 경감일수에 대한 불만을, 속내는 입장권 표준전산망사업 강제시행에 대한 불만이라고 문예진흥원장은 문화관광부 장관 앞으로 보낸 보고서에서 분석하고 있다.

기회만 있으면 속이고 숨기고 약삭 빠르게 태도를 바꾸는 극장들. 그들이 무서워하는 것은 밀어부치기가 아니다. 합리적인 대응이고 그것을 지지하는 여론이다. 실무진조차 실현 가능성을 의심하는 표준전산망, 느닺없는 스크린 쿼터 경감일수 축소가 어설퍼 오히려 그들의 목소리만 키워주는 꼴이 됐다. 사자가 사냥할 때 힘과 빨리 달리기로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이대현 문화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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