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전·현직 대통령에 대한 역사학자와 유권자들의 평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선거혁명’,‘사회혁명’을 내세우며 4·13 총선을 지켜보는 총선연대, 그리고 신문·방송 등 미디어와 우리의 유권자 사이에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을까.

그 해답을 미국의 정치 전문 케이블 방송인 C-Span이 조사한 역대 대통령에 대한 역사학자와 시청자의 평가에서 찾아본다. 지난 2월21일 발표된 이 조사에는 58명의 역사학자, 1,145명의 시청자가 참가했다. 국민 설득력, 위기관리능력, 국제, 경제, 의회와 관계 및 행정력, 도덕성, 비젼, 인종차별, 재임기간의 실적 등 10개 항목에 걸쳐 조사했다. 항목마다 100점을 주고 순위를 매겼다.

그 결과 남북전쟁을 치른 에이브러험 링컨이 역사학자, 시청자 평가에서 함께 각각 900점과 856점으로 1위를 차지했다. 놀라운 것은 현역인 클린턴의 자리매김이다. 역사학자들은 그에게 539점을 주어 21위에 매김했다. 그는 도덕성에서 역대 41명 중 41위(역사가 19.5점, 시청자 21.8점)이었다. 그러나 유권자인 시청자는 그에게 455점을 주어 36위에 랭크했다. 21위와 36위로 15단계의 차이가 나는, 이상한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올해 89세이며 치매 상태에서 부인만을 알아보는 로널드 레이건은 클린턴의 급전직하(急轉直下)를 반증시켜주고 있다. 역사학자의 레이건 평가는 634점으로 11위다. 그러나 영화배우였던 그를 시청자들은 771점을 주어 6위에 랭크했다. 그 자리는 역사학자이 1차대전을 마무리지은 우드로 윌슨에서 준 순위였다.

레이건은 클린턴보다 국민으로부터 무척 사랑을 받고 있음이 항목별 조사에서도 드러난다. 레이건은 국민설득면에서 역대 41명중 1위(91.3점)다. 2위는 프랭클린 루즈벨트, 3위는 시어도어 루즈벨트였다. 클린턴은 15위(65.7점)다. 역사학자들이 클린턴에게 좋은 점수를 준 경제문제, 인종차별(각 5위)에 대해 시청자는 19위, 26위에 자리매김해 그를 깍아내렸다.

레이건은 경제문제에서 시청자에게서는 7위(역사학자 21위), 인종차별 12위(역사학자 25위)의 후한 점수를 얻어냈다. 국제관계에서도 시청자들은 레이건이 고르바초프와 모스크바의 붉은광장을 거닐며 한 말, “이제 냉전은 정말로 지나갔다”는 것을 기억해서인지 82점을 주어 4위에 올렸다. 그러나 클린턴은 보스니아 개입, 중동분쟁 개입 등에도 불구하고 43.5점으로 39위를 얻었을 뿐이다.

미국의 대통령이나 ‘떠오르는 정치인’은 대개 정치무대에 등장하는 것을 전후해 자서전을 쓴다. 역사가와 유권자에게 평가의 자료를 던지는 것이다. 또한 많은 기자들은 이를 추적하며 이들의 평전을 쓴다.

기자들의 책은 역사가의 시각일수도 있고 유권자의 관점에서 쓰기도 한다. 그래선지 레이건과 클린턴을 보는 자서전 집필작가의 시각은 다르다. 시카고 트리뷴의 기자였던 로저 시몬은 1996년 대선때 백악관 출입작가며 기자였다. 시몬은 1998년에 나온 ‘쇼우타임-미국 정치서커스와 백악관으로의 경주’에서 클린턴을 살피고 있다.

시몬에 의하면 클린턴은 청중가운데 어느 누구도 친구로 만들 수 있는 친화력을 가졌다는 것. 그는 “연설을 좋아하고, 토론을 좋아하고 그보다 경호선을 뚫고 유권자와 직접 손잡기를 더 좋아한다”고 썼다. 그러나 클린턴이 이처럼 유권자에게 다가가는 것이 진실을 말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쇼를 할 시간이다”라고 생각하는, 그런 대통령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의 레이건 시절 백악관 출입기자인 루 캐넌은 주지사 시절부터 30여년 넘게 레이건을 취재했다. 레이건이 백악관을 떠난 후인 1991년에 그의 레이건에 관한 세번째 책인 ‘로널드 레이건-그의 일생의 역(役)’이란 평전을 냈다. 캐넌은 적어도 40~50차례 레이건과 인터뷰하고 그를 추적취재했지만 내면을 알 수 없었으며 “대통령이라는 영화 시나리오의 배역을 잘 치뤄낸 ‘위대한 대통령’의 반열에 오를 전직 연기자”라고 결론짓고 있다.

레이건은 스스로 미국의 대통령직에 대해서 밝혔다. “나는 배우노릇을 하지 않은 다른 어떤 사람이 대통령 노릇을 잘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쓰고 출연한 각본은 “믿는 바를 행하고 내가 믿는 것은 진실이다. 미국인은 진실을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쇼꾼’이 아닌 ‘배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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