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개편론] 정치프로들, 다시 손 잡나

2000 03/22(수) 21:26

한나라당 홍사덕 선대위원장은 3월9일 정계개편설을 증폭시키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자민련 김종필 명예총재가 총선후 내각제 개헌을 매개로 민주당과 자민련, 민국당을 합치는 3당 통합을 또한번 기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신당의 김용환 의원이 주장하는 ‘JP-DJ 위장이혼론’과 궤를 같이 하는 이 말은 이른바 ‘정계 대개편론’에 그 맥이 닿아 있다. 어쨌든 이 주장은 알쏭달쏭한 JP의 행로에 다시 이목을 집중시켰다.

JP는 정말 DJ와 갈라섰을까. 아니면 재결합을 약속하고 선거전략상 일시적 별거에 들어간데 불과할까. 정말 갈라섰다면 재결합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자민련측의 말을 빌면 DJP는 확실히 갈라선 듯 보인다. 최근 정창록 자민련 부대변인의 말. “민주당이 JP를 제거하고 DJP 공조의 기본약속이요, 대국민 선거공약인 내각제를 폐기하고자 하는 음모가 이미 지난해 4월부터 진행되고 있었다. 온국민이 경제 살리기에 혼신을 다하던 그때 권력의 뒷편에서는 은혜를 악으로 갚는 철저한 배신의 음모를 획책하고 있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자민련은 ‘버림받기 전에 스스로 차고 나온 것’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DJP 파경이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가 있다. 박태준 자민련 의원이 자민련 당적을 유지한 채 DJ 정권 아래서 총리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자민련 출신이 총리를 맡는 것은 DJP 공동정권의 기본골격 중 하나. 이런 점에서 ‘박태준 총리’라는 명함은 DJP 파경이 갈 데까지 간 것은 아니라는 인상을 준다. 물론 JP와 TJ가 뜻을 달리 하고, TJ가 한시적 총리에 만족하고 있을 수도 있지만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봐야 한다.


JP 아리송한 언행·행적

JP의 분명치 못한 행적도 의문을 자아내게 한다. 자민련은 내각제와 보수노선에서 정체성을 구하고 있다. 내각제가 버릴 수 없는 사안이라면 지난해 내각제 연기론이 나왔을 때 JP는 무엇때문에 당내 반대를 아랑곳않고 침묵을 지켰을까. 그러다가 총선정국이 시작된 3월1일 갑자기 내각제를 빌미로 민주당과 결별을 선언한 것은 왜일까.

지역에 따라 민주당에 대한 공세수위를 조절하고 있는 JP의 언행도 아리송하다. JP는 3월 들어 충청과 대구·경북지역을 찾아 “자민련은 내각제 약속을 파기한 거짓말장이들과는 선거가 끝난 다음에도 공조하지 않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전북지역을 찾았을 때는 말이 달라졌다. “민주당에 내각제에 대한 열의가 생기면 내각제 구현을 위해 협력하겠다.” 청주에서도 “내각제에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와도 제휴할 것”이라고 말했다. 온탕과 냉탕을 넘나드는 이들 발언을 전술적 측면보다는 전략적 측면에서 받아들이는 사람이 적지 않다.

JP가 총선후 정계개편과 내각제 논의 등 정치적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 정치게임을 하고 있다는 것. 역설적으로 민주당이 내각제를 수용할 경우 공조관계를 복원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DJ에게 보냈다는 이야기다.


재결합여지 남아 있어

이러한 정황은 DJP 공조가 일시적으로 깨졌다 하더라도 얼마든지 재결합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JP가 내심 공조를 원하지만 총선을 위해 어쩔수 없이 결별선언을 했다는 시각이 많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DJP 공조체제하에서는 자민련이 충청권 텃밭과 보수세력을 아우를 수 있는 선명성을 확보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DJP 공조체제 속에서 자민련은 자신의 덩치를 훨씬 능가하는 정치적 공간을 향유했다. 15대 국회에서 전체의석의 6분의1 지분으로 3분의 1에 달하는 영향력을 행사한 셈이다. 15대 총선후에도 자민련이 야당(한나라당)과의 공조보다는 여당과의 공조에 매력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분명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16대 국회에서 DJP 공조가 복원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가지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우선 자민련이 적당한 덩치를 유지해야 한다. 자민련이 캐스팅 보트가 가능한 최소한의 의석을 획득하지 못할 경우 JP는 DJ에 의해 용도폐기될 가능성이 있다. 또하나는 민주당이 안정의석을 얻지 못해야 한다는 것.

비록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민주당이 압승한다면 JP의 가치가 평가절하되기 때문이다. 결국 4·13총선 후 민주당과 자민련이 15대 국회와 비슷한 세력을 얻는다면 양자간 재결합 가능성은 매우 높아진다고 볼 수 있다.


자민련이 정계개편의 핵

민주당이 현수준을 유지하는 상황에서 자민련이 참패하면 어떻게 될까. 자민련 혼자서는 ‘거래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우선 민국당이 힘을 합쳐 덩치를 불린 뒤 민주당과 공조를 모색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점에서 자민련을 축으로 하는 정계개편은 ‘소개편’에서 ‘대개편’으로 연속 진행될 공산도 없지 않다.

배연해·주간한국부 기자 seapower@hk.co.kr


(C) COPYRIGHT 1999 THE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