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수지 비상] 제조업, 남의 배 불리는 장사

2000 03/22(수) 22:37

매월말, 특히 연말이 되면 무역 주무부처인 산업자원부는 심한 몸살을 앓는다. 무역수지가 흑자면 다행이지만 적자가 나면 이유야 어떻든 ‘죄인’취급을 받기 일쑤. 대책을 잘못 세웠다느니, 안이하게 대처했다느니 하는 질타가 쏟아진다. 수출에 국운(國運)을 걸어야 하는 자원빈국의 현실 탓에 싫든 좋든 무역수지가 초미의 관심사고 보면 산자부의 고충은 어쩌면 당연하다.

최근 수개월은 특히 심했다. 그도 그럴 것이 IMF체제 이후 잘 나가던 무역흑자 기조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흔들리더니 올 1월 마침내 적자를 기록한 것. 2월에 다행히 흑자로 돌아섰지만 유가와 환율 등 최근의 무역환경을 보면 여전히 불안감을 떨칠 수 없는 상황이다.

무역수지란 한마디로 국가의 산업경쟁력이다. 이는 결국 잘 팔리고 많이 남길 수 있는 제품, 즉 경쟁력있는 제품을 얼마나 저렴한 비용으로 생산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 산업구조와 경쟁력은 어떤가.

무역협회가 최근 발표한 ‘99년 제조업부문 업종별 소득유발효과’<표 1>를 보면 비교적 간단하게 확인할 수있다. 우선 반도체와 TFT-LCD 컴퓨터 등 국내의 스타 수출품목이 밀집해 있는 전기·전자업종을 보자. 지난해 수출액은 496억달러 규모에 달했지만 실제로 벌어들인 소득유발액은 235억달러. 100원어치를 팔아 51원의 소득을 올린 셈이다.

반면에 식료품과 요업 자동차 조선 등 수송기계의 외화 가득률은 무려 70%가 넘는다. 사양산업으로 일컬어지는 섬유 직물 의류도 65~77%에 이르고 있다. 이는 국내산업의 부가가치 생산성으로 설명될 수있다. 흙을 구워 커피잔을 만들어 수출하거나 자동차처럼 국내에서 생산한 철강제품으로 완제품을 생산, 수출할 경우 부가가치 과실은 오롯이 국내 산업의 몫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제품의 수출시장은 이미 포화상태이고 값싼 노동력을 무기로 한 동남아 등 후발국가에 이미 밀리는 실정인 데다 고부가가치 창출에도 한계가 있다. 다시 말해 많이 파는 제품에서 쥐꼬리만큼 남기고 적게 팔리는 제품에서 오히려 많이 남기고 있는 것이 국내 산업구조의 현주소다.


원자재 수입비주을 낮춰라

그렇다면 전기·전자제품의 경쟁력이 없다는 말인가. 그렇지는 않다. 예를 들어 휴대폰 등 통신기기의 제품경쟁력은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세계 1위 수준이다. 그 이유는 제품 생산에 필요한 핵심부품과 시설재의 수입 의존도가 높다는데서 찾을 수 있다. 산자부 윤상직 수출과장은 “수출을 많이 하면 할수록 수입도 이에 비례해 늘어나는 동반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외줄타기식 숫자놀음에 매달릴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주요 제품의 수입의존도를 나타낼 때 자주 언급되는 지표로 ‘부품 국산화율’이 있다. 전자부품연구원(KETI)이 최근 발표한 ‘정보통신제품 10대 부품 국산화율’(1998년기준)을 보자. 최근 각광받는 디지털 TV의 부품 국산화율은 부품수 대비 40%, 가격대비 30% 수준. 제품 생산에 100원어치의 부품이 필요하다면 이 가운데 70원 어치는 수입품이라는 의미이다.

디지털휴대폰은 어떤가. 부품원가의 절반에 가까운 비용이 미 퀄컴사의 CDMA칩(MSM-3000) 수입료와 로열티 등으로 지불된다. 인터넷 접속장치는 부품 국산화율이 10%선이고 GMPCS단말기나 IMT-2000단말기 WLL단말기 등은 사실상 부품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삼성전자 등 국내 5대 전자업계가 밝힌 올해 부품조달 계획에서도 컴퓨터와 휴대폰, CD-롬 드라이브, LCD 등 수출 주력제품의 외제 조달금액 비율은 50%를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부품단계에서 고부가가치 품목을 수입해 얼마간의 조립기술로 제품을 만들어 수출해봐야 남는 것이 얼마 안된다는 설명이다. 산자부 무역투자심의관실은 지난해 말 ‘우리나라 수입의 현주소’라는 자료를 통해 “주요 부품 및 소재를 외국에 의존하는 저부가가치 생산구조에 외형위주 성장으로 원자재 수입비중이 높다”고 지적했다.


부품 국산화율 제고 급선무

더욱 심각한 것은 정보통신기기 등 전기·전자제품의 수출 규모가 늘어나면서 이 업종의 외화가득률은 회복되지 않거나 오히려 낮아지고 있다는 점. 무역협회 자료에 따르면 전기·전자업종의 외화가득률은 1996년의 69.02%에서 1997년 6.50%, 1998년 50.95%로 내리막길을 걷다가 지난해 들어서야 브레이크를 거는데 성공했다.

물론 부품 국산화율이 기술경쟁력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컴퓨터의 핵심부품인 플로피디스크드라이브(FDD)를 예로 보자. FDD 생산기술은 국내기업의 기술력도 세계적 수준이지만 동남아나 중국에 진출한 일본제품과의 가격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해외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다. 좁은 국토와 부족한 산업인프라의 한계상 모든 부품을 국내에서 생산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국내 전기·전자업종의 부품 국산화율은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에 비해 여전히 절대적인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산자부 김호원 생활전자산업과장은 “대략 부품 국산화율이 60~70%선이면 적정한 수준”이라며 “문제는 미 퀄컴사의 CDMA칩이나 MS사의 인텔칩과 같은 독점적이고 전략적인 핵심부품 개발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도 최고의 부품을 개발해 이들 업체들과 전략적인 제휴를 맺을 수 있는 기술대국 진입이 시급하다는 것.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산업별 제조업 수입유발계수’, 즉 1단위 생산이 유발하는 수입계수는 0.304(1995년 기준)로 일본(1993년 기준·0.134)의 2배 이상이었고 특히 전기·전자업종은 우리의 경우 0.349에 달하는 반면 일본은 20% 수준인 0.077에 그쳤다는 점도 이와 무관치 않다. 고질적인 대일무역 역조의 배경이기도 하다.

이밖에 열악한 산업디자인 수준이나 첨단분야 산업인프라 등 풀어야 할 숙제는 산적해 있다. 이때문에 월별 무역통계에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당장에는 적자를 내더라도 장기적인 흑자기반을 다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부는 최근 주력제품의 핵심부품·소재 70여개를 선정, 국내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윤필 경제부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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