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규·이웅렬 회장, 투자신탁운용회사 공동설립

2000 03/22(수) 22:46

친구 사이의 우정이 아주 두터울 때 ‘관포지교(管鮑之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관포지교’는 중국 제(齊)나라때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의 우정에서 나온 말인데 역사서에는 관중과 포숙아의 우정을 보여주는 많은 글이 있다.

어느 해 관중과 포숙아는 함께 전장에 나섰는데 관중은 공격할 때는 맨 뒤에서고 후퇴할 때는 맨 앞에 섰다. 모든 사람이 “관중은 겁쟁이”라고 욕했지만 포숙아는 “관중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노모를 봉양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옹호했다. 관중과 포숙아는 또 함께 돈을 모아 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분을 적게 출자한 관중이 이익금은 언제나 더 많이 가져갔다. 당연히 포숙아의 하인이 “관중은 욕심이 많다”고 분노를 터뜨렸다. 그러자 포숙아는 “관중의 집이 가난해서 그렇다”며 오히려 하인을 나무랐다.

관중과 포숙아의 동업관계에서 알 수 있듯이 예나 지금이나 친구간의 동업은 수많은 갈등의 소지를 내포하고 있다. 관중에 대한 포숙아의 믿음이 조금이라도 두텁지 못했다면 두 사람은 대판 싸우고 우정에도 금이 갔을 것이다. 실제로 ‘친구끼리 돈거래를 하면 결국 돈도 잃고 우정도 잃는다’는 말은 이미 경험으로 확인된 법칙이다.


본인가 받는 7월부터 영업

그런데 역시 재벌그룹의 오너들은 보통사람과는 확실히 생각이 다른 모양이다. 재계에서 이미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소문난 현대산업개발 정몽규 회장과 이웅렬 코오롱그룹 회장이 각각 100억과 20억원의 사재를 출자해 투자신탁운용회사를 공동으로 설립키로 한 것이다.

금융감독위원회에 따르면 정회장과 이회장은 지난 3월13일 ‘I투자신탁 운용주식회사’(가칭) 설립 인가신청을 냈다.

자본금 163억원인 I투신운용은 정회장이 지분의 61.35%인 100억원을, 이회장이 12.27%인 20억원를 출자하며 나머지 지분은 외환은행, 굿모닝증권, 동원증권, 한빛증권, 삼성투신증권, 현대해상화재보험 등이 각각 3.07%(5억원)씩 참여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이미 대표이사로 구자삼 전 대우증권 이사가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위는 인가신청서를 심사, 청문절차를 거쳐 문제가 없으면 5월께 예비인가를 내줄 예정이다. I투신운용의 설립신청을 심사중인 금융감독원 증권감독국 관계자는 “I투신운용은 본인가를 받으면 7월께부터 영업에 들어갈 것으로 보이는데 이미 기존 업체에서 30여명의 펀드매니저를 영입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고려대 선후배 사이인 두 재벌 오너들은 왜 동업을 결심했을까. 단순히 우정때문일까. 아니면 투신운용회사를 통해 서로가 꿈꾸는 또다른 사업적 구상이 있는 것일까.


우정 반, 사업 반

결론부터 말하면 이들 두 사람이 동업에 이르게 된 것은 ‘우정 50%, 사업 50%’인 것으로 보인다. 우선 ‘50%의 우정’부분. 금감원 관계자에 따르면 원래 정회장은 자신이 투자신탁 운용회사의 최소 설립자본금인 100억원을 전액 투자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1인 회사’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해 평소 친분관계가 있는 코오롱 이회장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며 1조원이 넘은 신세기통신 지분매각으로 유동성이 풍부해진 이회장이 흔쾌히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한편 정회장은 I투신운용을 통해 평소 많은 관심을 가져온 금융분야로의 진출을 모색할 수 있게 됐다. 마찬가지로 코오롱 이회장은 신설되는 투신운용회사를 통해 자신이 “코오롱 그룹의 운명이 걸려 있다”고 밝힌 벤처업종에 대한 본격적 투자를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코오롱 그룹의 한 관계자는 “이회장은 지난 2월28일 그룹 사장단회의에서 ‘코오롱의 운명은 벤처투자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 각사 사장들은 수시로 벤처사업가들과 교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밝히고 있다.


대학 선후배로 돈독한 관계

한편 정회장과 이회장의 친분은 어느 정도일까. 또 정회장과 이회장의 끈끈한 우정의 출발점인 고려대 출신 최고경영자들은 누구일까. 올해로 각각 38세와 44세인 정회장과 이회장은 모두 이미 밝힌대로 고려대 출신으로, 정회장은 대학졸업후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수학했으며 이회장은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MBA학위를 받았다.

이들은 각각 선대로부터 경영권을 위양받은 2세 경영자라는 공통점 때문인지 평소에도 사적인 모임을 자주 갖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정회장이 현대자동차 경영을 맡고 있을 때는 현대자동차 신차출시장에 항상 이회장이 참석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사실 재계에서는 정회장과 이회장 이외에도 고려대 출신 재벌총수들의 끈끈한 유대관계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48세인 장진호 진로그룹 회장(경영학과)은 이웅렬 회장과 친분이 깊으며, 40세인 제일제당 이재현 부회장(법대)도 동문 재벌총수들과 자주 어울리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동문간의 유대감이 끈끈하기로 소문난 고려대 출신의 대표적 최고경영자인 정회장과 이회장의 동업이 관중과 포숙아의 동업이 될 것인지, 아니면 보통사람의 동업관계로 그칠 것인지 주목된다.

조철환·주간한국부 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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