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질로 승부하는 젊은 기업

한국 사람들이 ‘암웨이(Amway)’라는 이름을 들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암웨이측 희망대로 “연간 매출액이 50억달러(6조원)에 달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직접판매회사”라고 대답을 할까.

물론 정답은 ‘아니오’다. 1996년부터 1997년까지 주방용 세제를 둘러싸고 소비자 단체와 극도의 마찰을 빚었던 때문인지 2000년 3월 현재 암웨이는 평범한 한국인에게 ‘피라미드 판매의 원조’, ‘사기·변칙 판매’라는 부정적 이미지로 다가선다. 암웨이의 국내 법인인 한국암웨이는 “진출 초기인 1997년 일부에서 물의를 빚은 것은 사실이지만 암웨이가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실제로 암웨이는 어떤 회사일까. 일반인이 인식하듯 ‘부도덕한 회사’일까, 아니면 그와는 반대로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사업기회를 제시하는 회사일까.


연간 매출액 50억달러 넘는 개인기업

암웨이는 일반인의 생각보다 훨씬 젊은 기업이다. 암웨이는 1959년 미국 미시간주 에이다(Ada)에서 29세의 젊은이였던 제이 밴 앤델(Jay Van Andel)과 리치 디보스(Rich DeVos)에 의해 설립됐다.

흔히 암웨이는 다단계 판매방식을 최초로 만든 회사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암웨이를 설립하기전 앤델과 디보스는 ‘뉴트리라이트’라는 건강보조회사의 촉망받는 다단계 판매사원이었다. 이들은 뛰어난 영업실적을 통해 벌어들인 수입을 밑천으로 암웨이를 출범시켰는데 나중에는 자신을 키운 뉴트리라이트까지 인수하는 수완을 발휘했다.

2000년 3월 현재 암웨이는 세계 53개국에 현지법인을 두고 있으며 80여개 국가에서 영업을 하고 있는데 본사와 현지법인을 합쳐 1만4,000여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암웨이 본사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암웨이 코포레이션과 암웨이 재팬, 암웨이 아시아·태평양 주식회사가 소위 ‘빅 3’회사다. 암웨이의 취급 물품은 450여종으로 생활용품, 건강보조식품, 가정용품 및 주택용품 등이 주종이다.

또 전세계적으로 300만명 이상의 판매원(암웨이는 ‘디스트리뷰터’라고 부른다)을 확보하고 있는데 이들은 독립적 사업주며 암웨이 직원은 아니다.

흥미로운 것은 연간 매출액이 50억달러가 넘는 대기업인 암웨이가 개인기업이라는 점이다. 암웨이는 창립자 가문인 앤델 가문과 디보스 가문의 개인 회사이며 단순한 유통업체가 아니라 제조와 유통을 함께 하는 회사다.

우선 본사인 암웨이 코포레이션은 디보스와 앤델 가문의 소유다. 창업주인 리치 디보스와 제이 밴 앤델 외에 양쪽 집안의 2세대 이사 8명으로 구성된 암웨이 정책위원회(Amway Policy Board)에서 모든 것이 결정된다. 현재 암웨이의 경영은 두 창립자의 아들인 스티브 밴 앤델(Steve Van Andel)과 딕 디보스(Dick DeVos) 회장이 지휘하고 있다. 다만 일본 현지법인인 암웨이 재팬과 암웨이 아시아·태평양 주식회사는 각각 AJL과 APP라는 이름으로 뉴욕증시에 상장되어 있다.


매출규모 세계 3위의 한국시장

또 암웨이는 ‘암웨이의 번성은 판매력이 아니라 제품력 때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세제와 건강보조식품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고 있다. 특히 에이다 공장은 총면적 28만㎡, 총길이 2㎞에 달하는 대형 공장이다.

한국암웨이 박찬호 차장은 “암웨이는 본사에 430명, 뉴트리라이트에 145명 등 총 575명의 전문 연구진 및 지원인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380개 이상의 특허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요컨대 암웨이는 ‘다단계 판매회사’라는 우리의 피상적 지식과는 거리가 먼 회사다.

암웨이가 한국 시장에 진출한 것은 1991년이다. 217억원의 자본금을 들여 충북 음성에 세제공장과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한국암웨이 사무소를 설립했다. 한창때인 1997년에는 연간 매출액이 3,400억원에 달했으나 이후 ‘세제파동’과 IMF위기를 겪으면서 매출액이 격감, 1999년에는 1,760억원으로 크게 줄었다.

하지만 암웨이는 “한국 시장은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이라는 입장이다. 한국시장은 세계에서 일본, 미국 다음으로 매출규모가 큰 시장이기 때문이다. 그때문인지 1998년 이후 한국암웨이의 전략은 철저한 현지화다.

1998년 ‘세제파동’의 책임을 물어 한국법인 사장을 전격적으로 교체했으며 외국에서는 많아야 10여개 업체와 제휴해 실시하는 ‘원포원(One-for-One)’ 프로젝트를 대규모로 벌이고 있다. 원포원 프로젝트란 유통망이 취약한 국내 중소기업 제품을 암웨이 네트워크로 판매하는 방식인데 현재 70여개의 업체와 제휴를 맺은 상태다.

물론 아직도 암웨이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많다. 한국에서 실추된 이미지를 회복해야 하며 토종 다단계 판매업체의 거친 도전도 뿌리쳐야 한다. 특히 IMF체제이던 1998년에는 한때 업계 선두자리를 SMK에게 내놓을 정도로 한때 막강했던 암웨이의 시장 주도권이 약해진 상태다.

조철환·주간한국부 기자


조철환·주간한국부 ch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