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12일 충북 보건당국은 발칵 뒤집혔다. 한 소아과 의원에서 DTaP(디프테리아 파상풍 백일해 등의 혼합백신)와 소아바미 백신을 접종한 생후 6개월난 여아가 백신을 맞은지 하룻만에 숨진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보고를 받은 보건당국은 사인 조사에 나섰지만 돌연사로 추정할 뿐 정확한 원인은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이 사건이 보도된 다음날 주부 유모(32·서울 서초구 방배동)씨는 생후 12개월된 아들의 DTaP 예방접종을 위해 집 근처 소아과를 두 군데나 찾았지만 접종을 하지 못했다. 보건당국이 충북에서의 사고 이후 문제의 DTaP에 대해 모두 봉함 및 봉인조치를 내려 접종이 불가능하다는게 의사들의 한결같은 설명.

그러나 유씨는 ‘양심있는 의사’를 만난 경우에 속한다. 백신사고 후 문제의 백신과 동일한 제조번호를 가진 사고 백신이 병·의원에서 버젓이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은 아는 주부들은 흔하지 않다.


사고원인 정확히 밝히지 못해

이처럼 예방백신을 대하는 부모들의 ‘불안’이 ‘공포’로 번지고 있다. 올 들어 보고된 백신접종 사고는 총 6건. 이중 3명의 영아는 사망했고 나머지 3명은 시각 및 청각을 잃는 등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사실 백신접종 사고가 일어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금년에 발생한 사고를 포함해 1995년이후 백신접종 후 중증 이상의 부작용을 일으킨 사례는 총 27건. 1995년 일본뇌염 BCG(결핵) B형간염 백신 등의 예방접종과 관련해 3명이 사망하고 8명이 질병이 생긴 것을 시발로 1996년 2건, 1998년 7건, 1999년 1건 등이다.

이로 비추어볼 때 올 들어 유독 백신접종 사고가 많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잇단 백신접종 사고의 원인이 백신접종에 의한 것인지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 분명치 않지만, 하나같이 접종 직후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부모들이 극도의 공포감을 느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예방접종 부작용은 일정 범위내에선 의학적으로도 ‘인정’된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소아마비 백신의 경우 300만분의1, MMR(홍역 볼거리 풍진)은 100만분의1, DTaP는 200만분의1 수준에서 접종 후 48시간 이내에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수치만을 따져볼 때 영·유아에게 연간 1,000만건 가량의 예방백신을 접종하는 우리나라는 연간 최고 150건의 중증 부작용이 발생할 확률이 있다는게 보건당국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같은 확률로 부모들을 설득시키기에는 부작용 사고가 너무 빈발하고있다.

보건당국과 의사들은 부작용이 발생할 당시 세상을 시끄럽게 한 백신사고도 원인 조사를 해보면 백신사고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것으로 판명되는 예가 흔하다고 주장하고있다. “조사결과가 그렇게 나왔는데 어쩌란 말이냐”는 항의성 부연설명도 곁들인다.

실제 보건당국은 올해 발생한 백신접종 사고의 대부분이 약품의 품질이나 접종과정과는 무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서울 N구 보건소에서 DTaP를 맞고 양쪽 눈과 청력을 상실한 생후 7개월된 김모군. 보건당국은 역학조사 결과 ‘흡인성 폐렴에 의한 저산소증과 산혈증으로 인한 뇌손상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김군의 아버지(35)는 이 결과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건강한 아기는 우유가 폐로 넘어가도 방어본능이 있어 토해낸다. 예방접종으로 뇌기능이 떨어져 토하지 못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조사해야 하는게 당연하지 않는냐”고 따졌다.


매년 180만~210만회 접종

예방접종 후 사고가 ①백신의 생산 및 유통과정에서 변질되는 등 어떠한 문제로 인한 것인지 ②백신접종으로 인정되는 부작용 범위내에서 일어난 것인지 ③백신과 전혀 무관한 것인지를 판정내리기는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이와 관련, 대체적으로 ①의 경우를 제외한 나머지 경우는 백신사고로 볼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국내에서 연간 출생하는 60만~70만명은 1년내에 DTaP 백신을 3회 접종해야 한다. 따라서 1세 이하 아기에게 매년 180만~210만회의 DTaP가 접종되며 그중에는 쇼크사 등으로 사망하는 사례가 나올 수 있다고 보건당국은 말한다.

특히 이 연령대의 아기들은 유아 돌연사가 흔해 백신접종 후의 사망을 전적으로 백신때문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인다. 국립보건원 이종구 방역과장은 “백신은 아무리 안전하다고 해도 이상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고 전제, “백신접종시에 아기에게 이상이 생길 경우 금방 조치를 받을 수 있도록 접종기관에 30분이상 머무는 것도 괜찮다”는 ‘해법’도 제시했다.

그렇지만 부모들의 ‘백신공포’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게 현실이다. 갈수록 백신의 안전성에 대한 신뢰성이 떨어지고 있고 당국의 원인 규명과 재발방지 대책이 내실을 기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백신 예방접종 심의위원회에서 백신관련 사고 조사를 맡고있는 서울 영동세브란스병원 손영모 교수의 말. “백신에 대한 불안감을 일시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무턱대고 안전하다고 할 것이 아니라 사고의 원인을 정확히 규명해 과학적인 근거로 국민을 안심시켜야 한다.

” 보건당국이 보다 투명하고 철저한 검증을 통해 백신 시판을 허가해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손교수는 “백신접종전 특이체질 여부를 전문의에게 진단받아야 하고 접종후에도 아이의 상태를 관찰해 기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 “약품엔 이상없다” 강조

정부도 백신공포의 확산을 의식한 듯 최근 백신접종 안전대책을 발표했다. 시·군·구 →시·도 →중앙으로 되어있는 부작용 발생 보고체계를 팩스나 전산망을 통해 한번에 보고토록 하고 백신 부작용 감시활동을 강화, 백신 유통과정중의 변질 여부를 판별할 수 있는 ‘백신 온도측정 라벨’부착 등이 그 골자다.

그러면서 정부는 거듭 강조했다. “백신 약품 자체의 안전에는 문제가 없는만큼 예방접종을 계속해주십시오.” 영·유아들 둔 부모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기만 하다.

김진각·사회부 기자


김진각·사회부 kimj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