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허준 신드롬', 사극 사상 최고 시청률 기록

3월14일 밤 10시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은 하루 전과 마찬가지 풍경이었다. 마치 <허준>을 상영하는 극장 내부 같았다. 가게마다 TV 채널을 <허준>에 고정해 대사가 크게 울려퍼졌기 때문이다. 그날은 다들 장사가 신통치 않았다. 손님들도 <허준>을 보기 위해 일찍 귀가했기 때문이다. 남아있는 손님도 소주잔을 기울이는 것도 잊은 채 조용히 브라운관에 눈길을 주고 있었다.

서점가에도 허준 바람이 불고 있다. 허준의 저서 <동의보감>과 이은성씨의 <소설 동의보감>이 옛 명성을 회복하며 베스트 셀러 대열에 합류했다. 신재용씨의 <동의보감 11병 100답>, <음식 동의보감> 등 의학 분야 서적은 물론 황인환씨의 <만화 허준과 동의보감> 같은 아동 도서도 날개 돋힌 듯 팔린다.

MBC TV 창사 특별기획 드라마 <허준>이 인기를 더해가고 있다. 지난달 시청률 50%를 넘으며 불러모은 화제의 열기가 채 식기도 전인 14일 60.9%의 시청률을 기록해 사극 사상 초유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고정관념 깬 빠른 진행

월·화요일 밤 10시를 ‘허준 타임’으로 만든 드라마의 인기 비결은 과연 뭘까. 한마디로 <허준>의 인기는 내용·형식에서 사극의 고정 관념을 깼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 이유를 먼저 스피디한 장면 전개에서 찾을 수 있다.

종래 사극은 장면이 늘어지면서 지루한 느낌을 줬지만 <허준>은 이러한 문제를 빠른 호흡의 장면 전개로 극복했다. 장면 바뀜에 익숙한 요즈음 시청자의 취향에 한발 다가선 셈이다. 극중 인물의 대사를 내뱉는 속도 또한 현대극과 유사하다. 이로 인해 사극이 주는 시간적 거리감을 극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배경 음악도 독특하다. ‘사극의 배경 음악은 고전적이어야 한다’는 고정 관념도 과감히 벗어났다. <허준>에서는 가야금 뜯는 소리를 듣기 어렵다. 오히려 뉴에이지 풍의 현대적 감각이 듬뿍 담긴 음악이 깔린다.

여기에 더해진 화사하면서도 조화를 이룬 색채감이 깔끔한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전통의 색채감을 빨강 파랑 등의 원색에서 화사한 파스텔톤으로 과감하게 변화시켰다는 점도 시청자의 눈길을 잡은 비결로 들 수 있다. 의상의 색을 담당하는 코디네이터까지 두고 2개월에 걸쳐 의상을 전면 교체했다.

내용 또한 현재 한국 상황과 적절하게 맞아떨어졌다. IMF이후 실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성공담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허준이 신분의 한계라는 커다란 어려움을 끊임없는 노력으로 극복하고 정상에 오르는 과정을 그려 시청자로 하여금 극중 인물과 동일시하고 싶어하는 욕구를 불러 일으킨 것으로 분석된다.


'회기심 유발' '장삿속' 지적

그러나 승승장구하고 있는 <허준>에도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비평가들은 “시청률이 꼭 작품성을 보장하는 건 아니다”며 딴죽을 걸고 있다. 일리있는 말이다. 영화에서 흥행이 작품성과 비례하지 않는 것처럼.

물론 <허준>은 재미있고 흥미진진하지만 성공의 비결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면 ‘호기심 구도를 잘 이용했다’고 할 수 있다. 시청자에게 ‘허준이 과거를 보러갈 수 있을까’, ‘허준이 내의원에 들어갈까’, ‘도지가 예진을 만날 수 있을까’라는 식으로 호기심을 유발하면서 손에 땀을 쥐게 한다. 그리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다음회를 기약하며 끝을 낸다. 시청자들은 애가 탄다.

또한 완성도 높은 대본을 너무 늘여 ‘장삿속’을 드러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허준>의 인기가 치솟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린 순간 MBC는 6월말까지 66회 분량으로 늘렸다. 애초엔 40회 분량이었다.

월화 드라마가 이렇게 연장 방영된 것은 드문 일이다. 그러니 과거를 못보러 가게 되는 에피소드 하나만을 2회나 방영하게 된다. 시청자들은 ‘중독증’때문에 보기 보다는 여전히 재미있어서 보길 바랄 것이다.

비록 드라마가 허구라고는 하지만 사극(史劇)이다. 사극은 역사적 사실을 고증하는데 성의를 보여야 한다. 의술을 전수하는 허준의 스승 유의태는 허준 보다 100년후에 태어난 인물이라는 건 이미 밝혀진 사실이며 예진이 드라마의 흥미를 위해 만들어진 가공의 인물이라는 점도 알려졌다.

결국 유의태나 예진은 역사적 인물과는 거리가 먼 허구적 설정이기 때문에 실제 인물인 허준의 역사성 그대로를 인정받을 수 없게 된다. 수용자, 특히 청소년에겐 허구가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지지 않게 역사를 바로 알리는 태도가 중요하다. 그만큼 방송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또하나 지적할 것은 허준을 둘러싼 여인들의 삶이다. 허준의 성공과 여인들의 희생을 대비시켜 흥미를 배가시키고는 있으나 과장된 이야기 전개로 드라마의 설득력을 잃어버릴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앞으로 전개될 내용은 물론이고 ‘과연 허준의 시청률이 얼마나 더 오를 수 있을까’를 궁금해 한다.


예진과의 사랑이 재미 더해

40회로 원작인 <소설 동의보감>에서 뽑아낼 수 있는 부분은 바닥나게 된다. 그 다음부터는 완전한 창작이다.

그 다음회부터 <허준>은 소설에 없는 임진왜란 당시 그의 활약상을 담을 예정이다. 제작진이 참고할 수 있는 부분은 <조선왕조실록>뿐. 여기에 작가 최완규와 이병훈 PD가 숨겨진 허준의 일생에 숨결을 불어넣게 된다. 또한 허준이 바라본 조선의 정치사도 그려낼 예정이다.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예진(황수정)과 허준(전광렬)의 애타는 사랑. 허준에겐 이미 아내가 있기 때문에 드라마에 흠이 갈지도 모르는 ‘불륜’은 없겠지만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애타는 사랑은 충분이 상상할 수 있다. 여기에 또 시청자들은 손에 땀을 쥘 것이다.

오태수 일간스포츠 연예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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