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현의 길따라 멋따라] 지리산 꽃바다길

2000 03/23(목) 00:25

올봄은 유난히 꽃이 늦다. 섬진강변에 3월 중순이면 만개하는 매화는 이제야 꽃망울이 열렸다. 11, 12일 전남 광양시 매화마을에서 열렸던 매화 축제는 주인공이 없는 잔치가 됐고 18, 19일 구례군 상위마을에서 있었던 산수유 축제에서도 산수유꽃이 겨우 얼굴만 내밀었다. 서둘러 꽃나들이를 떠났던 사람들은 허탕을 쳤고 여유를 보였던 사람이 이제부터 만개한 꽃구경을 하게 됐다.

‘지리산은 꽃산.’ 어울리지 않은 것 같지만 사실이다. 험한 지세로 유명한 지리산이지만 봄만큼은 새색시같다. 눈이 녹을 무렵부터 녹음이 짙어질 때까지 거푸 옷을 입었다 벗는다. 산수유 매화 벚꽃 개나리 진달래 철쭉…. 절정은 매화와 벚꽃이 아우성하는 이달말부터 다음달 중순까지다.

매화는 강북에서는 구례군 송정리가, 강남에서는 광양시 다압면 매화마을이 유명하다. 두 곳의 매화는 모습이 사뭇 다르다. 송정리의 매화는 가파른 골짜기에 심어져 있다. 바깥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19번 국도변에서 토지 초등학교 송정분교를 끼고 아스팔트 포장길을 한참 올라간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매화의 향기가 짙어진다. 약 1㎞. 길이 끝나고 마을이 펼쳐질 즈음 매화나무는 군락을 이룬다. 드문드문 산수유의 노란빛이 간을 맞춘다. 아침나절 지리산의 골을 타고 내려오는 안개까지 가세하면 연분홍 매화군락은 꽃의 미학을 뛰어넘어 신비함마저 느끼게 한다.

광양의 매화마을은 겉에서도 보인다. 유명한 홍쌍리씨의 청매실농장이 이곳에 있다. 논밭이 적어 가난했던 이곳 주민은 먹고 살기 위해 유실수인 매화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70년전의 일이다. 이제는 흩날리는 꽃발에 눈이 부실 지경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사진작가와 화가, 문인들이 화려한 영감을 얻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청매실농원은 잘 다듬어진 공원이다. 방문객이 질서만 지켜준다면 꽃길을 걸으며 행복한 하루를 보낼 수 있다.

벚꽃의 진수는 하동의 화개마을과 쌍계사를 잇는 1023번 지방도로에서 맛볼 수 있다. ‘10리 벚꽃길’이라 불린다. 벚나무의 수령은 평균 50년으로 긴 가지가 2차선 도로에 아치를 세운 듯 드리워져 있다. 꽃이 피면 꽃터널이고 꽃이 져 바닥에 앉으면 꽃길이다. 그 황홀한 모습은 ‘혼례길’이라는 이름을 낳았다.

구례와 하동 사이에 놓인 19번 국도의 가로수도 모두 벚나무이다. 혼례길만큼 아름드리는 아니지만 벚나무의 정취를 느끼는데는 손색이 없다. 지리산 남녘에서 만날 수 있는 또 하나의 기쁨은 섬진강이다. 아직 오염의 아수라에서 벗어나 있는 섬진강은 맑은 물빛만큼 풍부한 서정을 자아낸다. 이따금 지나는 조각배, 펼쳐진 백사장, 강 옆에 도열한 지리산과 백운산의 연봉은 새삼스럽게 ‘자연의 조화’를 실감케 한다.


섬진강의 맛 '재첩'

민물조개인 재첩을 끓인 재첩국은 해장용으로 으뜸. 섬진강의 재첩은 회로도 먹는다. 아직 오염되지 않은 섬진강의 건강함을 말해준다.

재첩국은 간단해 보이지만 만들기가 까다롭다. 물에 5~6시간 담가두어 해감시키고 처음에는 조개만 넣어 섭씨 20도 정도로 덥혀 입이 벌어지게 한 다음 손톱만한 껍질과 살을 분리한다.

그리고 물을 부어 다시 끓이며 간을 맞춘다. 파나 부추가 파랗게 뜬 재첩국은 보기에도 먹음직스럽다. 섬진강변에 국과 회를 함께 파는 집이 즐비하다.

권오현 생활과학부차장 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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