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상의 뿌리를 찾아] 창원 구씨편(昌原具氏編) ②

2000 03/23(목) 00:27

그래서 시종을 시켜 그를 불러오라 일러 연유를 물었다. 인자한 임금의 용안에는 노여움이 없었다.

“저는 영남 창원 사람으로 과거 보러 한양에 왔다가 우연히 여기에 들렀소.” 구종길은 상대가 임금인 줄도 모르고 서슴없이 답변했다. 임금은 또 물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들어왔느냐.”

“저는 일찌기 아버지를 잃고 홀로 계신 어머니를 모시며 공자의 도를 닦아 평소 과거를 해 이름을 드높일 뜻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자 5, 6명이 잇따라 과거하려 서울에 왔으나 과거가 내년 봄으로 연기돼 내일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참입니다.

마침 병조정랑이 내 문인으로 구경을 하게 됐고 그가 순시를 하러 나가 홀로 있자니 쓸쓸해서 바람을 쏘이려 나왔습니다”라며 털어놨다.

임금은 그가 공자학을 배웠다니 얼마나 아는가 시험을 해보기로 했다.“주역을 아는가”라고 물으니 “주역을 연구해 본문을 삼고 조금도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라며 구종길은 자신만만해 했다. 이때부터 임금과 시골 선비의 주역 강론이 시작됐다. 임금이 “월색(月色)은 촛불같이 밝으니 그 역리를 논해보라”고 일렀다.

이에 구종길은 지지 않고 “강론은 어렵지 않으나 존장은 어떤 직품을 갖고 있는 분이요”라고 따졌다. 임금이 “나는 이 땅을 지키는 사람”이라 답하자 그는 “문무(文武)중 어떤 것을 좋아하는냐”고 물었고 이어 “존장께서 주역을 알아 뭐에다 쓰겠느냐”고 질책했다. 끝내 임금은 자신의 지위를 명확히 밝히지 않고 향기나는 술 한병과 주역을 가져오라 일러 밤이 깊도록 음양의 이치를 논했다. 임금의 질문에 그는 막힘이 없이 척척 해석했다. 한참을 논하다 임금이 이렇게 일렀다.“나는 왕을 시종하는 사람인데 어제 전교를 들은바 있으니 며칠 더 머물렀다가 응시하는게 어떻겠오”라며 주역 한 권을 주었다.

이때 예조에서 갑자기 정시를 본다는 말이 나붙었다. 구종길은 정시에 응시했다. 이날 나온 출제는 전일 세종대왕과 강론했던 주역의 일부. 열심히 붓을 휘두르고 있는데 곤용포를 바람결에 휘날리며 임금의 거둥이 눈길을 끌었다.

‘어디서 많이 보았는데. 옳지, 바로 엊그제 달밤에 보았던 그 분이 성상이란 말이냐’고 구종길은 마음속으로 황공하기 이를데 없었다. 구종길이 장원으로 뽑힌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어찌보면 그를 위해 이번 과거가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로부터 임금의 구종길에 대한 총애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어필로 내린 첫 직책은 홍문관 정자. 그리고 태학 종묘의 예악 삼헌율과 대전언문 반절문장찬집등을 쓰게 하여 도무지 휴가를 주지 않았다. 벼슬길에 오른지 1년, 고향에 두고 늙은 어머니가 보고파 신경쓰던 나머지 그는 병이 나기까지 했다. 드디어 어명으로 내려진 휴가 20일. 임금이 애용하는 구슬 한 개를 믿음의 표적으로 하사하는 동시에 벼슬도 직제학으로 승진시켜 줬다.

“늙으신 어머님이 얼마나 기뻐 하실까.” 그가 마냥 뱃사공을 독촉하고 있을 때 “잠깐만 배를 멈추시오”라며 뒤따라온 승전관이 배에 오른다. 승정관이 “우리들이 비록 임금을 가까이 모시고 있으나 주상(임금)의 목에 걸고 있는 명주(明珠:빛나는 구슬)를 보지는 못했으니 잠시 보여줄 수 없겠오”라고 청했다. 구종길은 처음에는 거절하다가 부탁이 간곡해 품속에 깊숙히 간직했던 구슬을 꺼내 승전관에게 건네줬다.

그런데 승전관의 눈에서 번득 빛이 나더니 그는 구슬을 깊숙한 강물속으로 던져버리고 백사장으로 뛰어내려 달아나는게 아닌가. 구종길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래서 강가에 엎드려 임금에게 대죄(待罪)하기 사흘, 식음을 전폐하고 하늘을 우러려 통곡했다.

이 딱한 사정을 보다못한 주막집 주인이 다가와 사정을 했다. “나으리, 식음을 전폐한지 여러날이 됐으니 오늘 낚은 고기 한마리를 회로 하여 잡수시요.” 잉어를 보니 한 자가 넘는다. 못이기는 체 넘겨나 보고 있노라니 잉어 뱃속에서 둥근 물체가 떨어졌다.

분명 임금이 내린 구슬. 구종길은 하늘을 향하여 사례하고 구슬을 귀중히 간직한뒤 귀향길을 서둘렸다. 그는 어머니를 뵙고 기한안에 한양으로 돌아와 어전에 나아가 임금에게 인사를 드렸다. 세종대왕의 용안은 자못 엄숙했다. “짐이 그대가 갈때 신표로 준 구슬은 그대로 갖고 왔느냐.” 그는 다시 머리를 조아려 절하면서 구슬을 바쳤다.

창원구씨 대종회 회장 구상진(변호사) 서울 특별시 가락구 봉천6동 169-159 (02)878-2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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