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어디로 가나] 정치실험에 든 '변혁이 땅'

2000 03/29(수) 21:47

개혁·민주화 선택, 50년만의 정권교체

대만은 지금 ‘새로운 2000년’을 맞고 있다. 국민당이 1949년 타이완 섬으로 쫓겨온 이후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여야 정권교체가 사상 처음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3월18일 저녁 7시30분께 타이베이시의 최고 번화가인 소고 백화점 앞은 민진당 천수이볜(陳水扁) 후보의 당선이 확정되자 시민들이 엄지 손가락을 세우며 지르는 환호성으로 가득찾다. 대만인이 선거 혁명을 선택하는 순간이었다. 귀에 리시버를 꽂은 채 라디오의 선거 개표방송에 정신을 쏟고 있던 이들에게 “왜 천 후보를 지지했느냐”고 묻자 한결같은 “가이거(改革)”와 “민주(民主)”였다.


사회·경제 불안 빠른 속도로 해소

선거가 끝난지 1주일이 지나면서 대만에서는 변화의 흐름이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대만과 전세계 매스컴의 초점은 저무는 리덩후이(李登輝) 총통에서 천 당선자로 맞추어졌다. 완패를 당한 국민당 중앙당사 앞은 연일 항의 시위대와 이들의 당사 진입을 저지하기 위해 쏘아대는 경찰의 물대포가 맞부딪히고 있다.

국민당에서 탈당,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불과 2.5% 차이로 낙선한 쑹추위(宋楚瑜) 전 대만성장은 신당 창당을 선언했다. 대만 독립을 주장해왔던 민진당에서는 당 강령에서 ‘독립 규정’을 삭제하자는 논의가 이루어지는 등 온건 바람이 불고 있다.

천 후보가 당선되면서 일어났던 사회·경제적 불안도 상당히 가라앉은 느낌이다. 금방이라도 불붙을 것 같던 양안관계는 예상을 비켜나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고, 이로 인해 선거 직전 폭락했던 증시도 상승 장세로 바뀌었다.

물론 이를 바탕으로 대만의 변화를 예단하기는 시기상조다. 5월20일 취임할 천 당선자가 아직 정권인수에도 착수하지도 않았고 포괄적인 통치방안을 밝히지도 않은 상황이다. 단지 그와 측근들 주변의 발언을 통해 대체적인 윤곽을 그려보고 추측해볼 뿐이다. 하지만 대만의 모습이 지금까지와는 상당히 달라지리라는 예상은 누구에게나 분명해 보인다.

현지 분석가들도 “새 총통은 국민당의 장기집권과 부정부패에 염증을 느낀 국민이 민주화와 개혁을 위해 선택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면서 “따라서 그가 취임한 뒤 대만에는 상당한 변화가 올 것은 명약관화하다”는 일치된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한발 물러선 중국·천 당선자

선거를 불과 사흘 앞둔 3월14일 주룽지(朱鎔基) 중국 총리는 이례적으로 직접 나서 천 후보가 당선될 경우 “무력을 불사하겠다”는 강력한 경고를 보냈다. 대만 독립을 선거 공약으로 내세워온 천 후보의 당선을 대만판 ‘북풍’으로 막아보려는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다.

선거 결과는 1996년에 이어 이번에도 중국의 바램과는 반대였다. 따라서 결과가 발표된 18일부터 대만과 각국 언론은 중국의 반응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대만인은 리 총통이 당선된 당시 발생했던 중국의 미사일 발사연습이 재연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비등했다. 하지만 이는 기우였다. 중국은 “새 총통의 행동과 발언을 지켜보겠다”고 한발 물러났다

천 당선자도 23일 LA타임스와의 회견에서 “독립 대신 양안간 평화를 최우선 정책과제로 삼겠다”면서 ‘주권과 독립’을 강조해온 종전 입장과는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야당시절 ‘대만 독립’‘자주외교’를 외쳐온 민진당도 중앙집행위에서 독립을 명시한 당 강령을 수정하자는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중국과 천 당선자의 이같은 입장 변화는 국제적 여론과 이해관계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중국은 당장 국제무역기구(WTO) 가입을 눈 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국제 사회에 비난받을 소지를 남길 이유가 없는데다 군사력에서 만만치 않은 대만을 공격하다 화를 당하는 무리수를 둘 필요가 없다.

천 당선자 입장에서도 양안관계를 긴장시켜봐야 득될게 없다. 오히려 정국 문제 등 산적한 국내문제를 해결하는게 급선무다. 39%에 그치는 지지도와 전체 224개 의석중 71석에 불과한 의회 장악력 등 약체 정부로서의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대만 정치대 조셉 우(吳釗燮) 교수는 “천 당선자가 임기 초반에 중국과 심각한 갈등을 빚어 불안을 조성하기 보다는 국민의 지지 근거인 개혁을 달성하기 위해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런 관점에서 단기적으로 양안관계의 악화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선거 직후 실시된 연합보(聯合報)의 여론조사 결과, 대만인중 70% 이상이 독립보다는 현 상황의 유지 또는 양안 관계 개선을 희망하고 있었다.

양안간 경제교류는 그 어느 때보다 장미빛이다. 천 당선자는 공약으로 양안간 투자금액 제한(건당 500만달러) 등 빗장을 풀겠다고 강조해왔고, 중국과 통신 교통 통상을 할 수 없게 한 이른바 ‘3불(不) 정책’을 폐기 또는 수정하겠다고 공언해왔다. 21일에는 입법원이 50년만에 처음으로 진먼(金門) 마쭈(馬祖) 펑후(彭湖) 등 3개 섬의 중국 직항을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소용돌이 치는 정치권, 대 변혁 예고

정치권은 대변혁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각 당은 승패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천 당선자는 민진당 상무위원 사퇴를 통해 여소야대의 현실을 연정과 거국내각으로 극복하겠다는 정국운영 방안을 밝혔다. 국민당은 패배의 책임 공방으로 내홍에 휩싸여 있다. 쑹 전대만성장은 신당인 ‘신 대만국민당(NTPP)’을 창당하겠다고 밝혔다. 정치 분석가들은 “국민당이 내분을 수습하지 못할 경우 현재의 양당 중심에서 3~4개의 정당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민진당은 연정의 파트너로 국민당내의 리 총통계를 눈 여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천 당선자가 평소 리 총통의 노선을 지지한다고 공언해왔으며 선거기간동안에는 ‘리의 천 지원설’까지 확산되는 등 양자는 온건한 관계를 유지해 왔었다. 천 당선자도 미 시사주간지 타임과의 회견에서 “대만의 민주주의와 진보에 커다란 기여를 한 리 총통에게 많은 국내외 문제에 대해 충고를 구하겠다”고 밝혀 이를 뒷받침했다.

돌풍의 핵은 바로 쑹 전 대만성장의 신당. 국민당내 유력 주자였으나 리 총통의 견제로 탈당한 쑹은 선거가 끝나자 곧바로 신당 창당을 선언했으며 국민당 일각의 재입당 권유를 냉정히 거절했다. 그는 대신 자신의 본가인 국민당의 분열을 촉진, 그 바탕 위에서 재기를 노리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22일 창당 의사를 밝히면서 “다른 정당원을 받아들이는 포용력 있고 온건한 정당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속에는 국민당의 내분 속에서 튕겨나오는 의원을 합류시켜 신당을 제1 야당으로 만들고, 국민당 지지파들을 결집하면 4년뒤 대선에서 설욕이 가능하다는 속내가 담겨 있다. 그래서 당명도‘신 대만 국민당’이라 지은 것 같다.

국민당은 선거 패배의 후유증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쉽지 않은 모습이다. 국민당은 선거 책임을 모두 리 총통에게 지웠고, 결국 그는 22일 당 주석직에서 사퇴했다. 그렇다고 위기가 해결됐다기 보다는 이는 빗발치는 당원과 지지자의 항의를 일시 누그러뜨리는 미봉책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여당의 프리미엄에도 불구하고 23% 지지율로 3위에 머문 롄잔(連戰) 후보는 당 주석직 대행에 올라 주석 직선제 등 개혁을 통한 당의 수습을 강조하고 있으나 당의 개혁을 이끌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이다.

따라서 3개월내에 시행될 당대회에서 롄 대행 중심의 기득권 세력과 마잉주(馬英九) 타이베이 시장으로 대표되는 개혁세력 사이의 일전이 불가피하며 결과에 따라서 한쪽의 탈당으로 군소정당으로 전락할 공산도 있다. 특히 개혁파가 승리할 경우 대대적인 물갈이가 예상돼 원로들의 신당행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 200억 달러로 추산되는 당 재산의 분배를 둘러싼 리 총통계와 다른 계파간의 암투도 치열할 것으로 예상돼 국민당의 내분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선거의 패배가 국민당에 쇄신과 당 붕괴를 막기위해 단합할 수 있는 전화위복의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하는 경우도 있었다.


개혁의 칼 어디까지

국민당 장기집권과 부정부패에 대한 대만인의 개혁 요구는 새 정부가 추진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다. 천 당선자는 선거 유세에서 “공무원의 지위는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고 공약했다.

하지만 반세기동안 국민당 정부가 저질러 온 ‘헤이진(黑金·검은 돈) 정치’를 청산하자는 요구가 워낙 강해 새 정부가 화합을 명분으로 그냥 넘어가기는 어려울 것이라는게 정치 분석가들의 지적이다. 대만대 린추이(林子儀) 교수는 “천 당선자는 집권초에 개혁할 곳을 손대야만 성과를 거둘 수 있다”며 ‘속전속결식 개혁’을 주문했다.

사정(司正)이 시작되면 국민당과 그 수족 역할을 해온 공무원 군 법조계 등이 우선 대상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공무원 15만5,000여명중 40%가 공개 경쟁을 통하기보다는 부친의 후광이나 집안의 연고로 발을 들여 놓았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천 당선자도 1998년 반체제 잡지 제작에 참여한 혐의로 옥고를 치러 검찰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타협과 협상의 문화가 보편적인 중국의 전통을 들어 개혁이 한국에서처럼 정치보복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천 당선자가 선거가 끝난 뒤 “안정”을 누차 강조해왔고, 민진당 내에서도 강경파들이 탈당하고 온건세력이 당을 주도해 왔다는 근거에서다.


외교관계, 큰 변화 없을 것

미국 등 우방과의 외교 노선은 국민당의 기존 노선과 크게 벗어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천 당선자는 중국의 위협을 견제할 수 있는 미국의 협조를 위해 개혁 이미지를 내세워 미국과 더욱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

대만 정치대 우위샨(吳玉山) 교수는 “미국은 천 당선자가 양안관계에서 중국을 자극하지 않는 합리적인 파트너라는 느낌을 줄 수 있어야 한다”며 대미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현상유지를 원하는 클린턴 미 행정부는 23일 리 해밀턴 전 상원의원을 특사로 보내 천 당선자와 양안문제를 논의케하는 등 ‘중국과 대만 달래기’에 힘썼다. 일본에 대해서도 미국과 마찬가지 입장일 것으로 예상된다.

대만의 새 정부는 한국과의 관계 개선에도 보다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천 당선자는 경남대 등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정도로 한국에 우호적인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선된 뒤 경남대 관계자 10명을 자신의 취임식에 초청, 화제가 되기도 했다.


권혁범·국제부기자 hb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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