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우리 97년 대통령 선거 모습 그대로 잖아”. 대만 총통 선거를 취재하면서 한국 기자들이 공통적으로 내뱉은 한마디였다. 대만 총통선거는 선거운동 방법에서 부터 유권자들의 모습, 선거 결과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대선과 너무나 흡사해 마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린 듯 했다.

먼저 후보자들의 구성부터 그렇다. 선거 초반부터 집권당인 국민당 롄잔(連戰), 민진당 천수이볜(陳水扁), 무소속 쑹추위(宋楚瑜) 후보의 ‘빅3’가 박빙의 승부를 펼쳤는데 이는 한나라당 이회창, 국민회의 김대중, 국민당의 이인제 후보가 각축전을 벌였던 것과 비슷했다.

쑹후보가 여당 출신이면서도 당내 공천을 받지 못하자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것은 이인제 후보가 한나라당을 탈당한 사유와 똑 같다. 결국 여권의 분열로 인한 외성인(중국 본토) 출신 등 여권 지지자들의 표갈림 현상으로 천후보가 불과 2.5% 포인트 차이로 승리하게 됐으며, 한국에서도 당시 이인제 후보가 영남권 유권자를 잠식, 김 후보가 간발의 차이로 대권을 점령하는데 일조했다.


이방인에게도 낯설지않은 유세장

선거 유세장 모습도 차이가 없었다. 타이베이와 카오슝 등 대도시에서 수십만 군중을 동원한 대규모 유세는 시간과 장소만 달랐을 뿐이다. 대만에서는 더운 날씨와 퇴근 시간을 고려, 평일날 대규모 장외 유세는 주로 저녁에 열린다.

그러나 유세장 옆 도로변에 길게 주차한 군중 동원 버스 행렬, 손에 깃발을 든 채 발디딜 틈이 없이 유세장을 빼곡히 매운 지지자들의 터져 나갈듯한 환호성, 원색적으로 타 후보를 비난하는 연사들의 연설 내용…. 이방인인데도 어느 하나 낯설어 보이는 것이 없었다.

연일 언론을 장식하는 금권선거 시비 또한 한국과 같은 선거 단골 메뉴. 세계 정당중 가장 부유하다는 국민당은 노골적으로 헤이진(黑金·검은돈) 선거를 자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택시 기사들은 “자동차에 후보 깃발을 달고 다닐 경우 1,000 대만달러(40,000원 가량)를 받았으며, 선거일이 가까와질 수록 액수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현지 신문에서는 연일 금품을 돌리다 붙잡힌 지방 이장 등 관련 소식이 주요기사로 보도됐다.

양국의 유사성 때문인지 대만인들은 한국 정치상황을 너무 소상히 알고 있었다. 천후보를 지지한다는 한 택시기사는 한국 취재 기자라고 밝히자 한국의 전직 대통령들을 일일이 평가한뒤 “진다이중(金大中) 넘버원, 천수이볜 넘버원”이라며 “대만에서도 정권교체가 일어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물론 대만과 한국의 선거문화가 유사한 것은 사실이지만, 선거운동의 세련도나 유권자들의 태도 등은 한국이 좀 앞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이미 권위주의 체제에서 벗어난뒤 세번의 대통령 선거를 치렀지만, 대만은 이번이 사실상 첫 자유선거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만도 4년 뒤에는 지금보다 훨씬 선거 문화가 나아질 거라고 정치 분석가들은 전망했다. 아시아의 ‘4용’으로 경제발전에서 서로 경쟁하던 양국이 이젠 선거문화를 놓고 선의의 경쟁을 펼칠 날이 다가오고 있다.

권혁범 국제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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