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기업 순례] 코카콜라⑤

2000 03/29(수) 23:22

‘838억달러’

우리 돈으로 따지면 92조1,800억원이 넘는 액수다. 그런데 이처럼 막대한 돈이 단지 이름값에 불과하다면 믿을 수 있을까. 대부분은 “과연 그럴까”라고 의심하겠지만 코카콜라라면 불가능은 현실이 된다. 1998년 인터브랜드사가 주요 다국적 기업의 브랜드 가치를 평가한 결과 코카콜라는 브랜드 가치가 838억달러로, 세계에서 가장 이름값이 비싼 회사가 됐다.

코카콜라가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코카콜라는 세계 200개국에 1,200개 이상의 코카콜라 병입공장(보틀러)을 확보하고 있는데 전세계에서 하루에 소비되는 코카콜라는 약 10억잔에 달한다.

또 뉴욕증시에 상장된 주식의 시가총액도 2,101억3,000만달러(1998년 9월28일 현재·231조억원)에 달할 정도이다. 코카콜라는 또 코카콜라 이외에도 코카콜라 라이트, 환타, 스프라이트 등 세계 5대 브랜드중 4가지를 생산, 판매하고 있는 명실공히 세계 최대의 음료회사다.


전쟁특수, 2차대전이후 다국적기업으로

그렇다면 코카콜라는 언제, 어떻게 만들어진 회사길래 이처럼 막강해졌을까. 현재 세계를 주름잡는 대부분의 다국적 회사와 마찬가지로 코카콜라 역시 조그만 가내 수공업에서 시작됐다. 코카콜라는 1886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약국 주인이던 존 S. 팸버튼 박사가 5센트짜리 소다수를 만들어 팔면서 시작됐다. 팸버튼 박사가 만든 ‘맛있는 음료’에 ‘코카콜라’라는 절묘한 이름을 붙인 사람은 약국의 경리 사원이었던 프랭크 로빈슨이었다.

하지만 114년 전통의 코카콜라를 세계 최고의 음료로 만든 것은 창립자들이 아니었다. 코카콜라의 아버지인 팸버튼 박사는 빚에 쪼들려 1888년 아사 캔들러에게 회사를 매각했고 그로부터 11년후인 1899년에는 또다시 변호사인 벤자민 프랭클린 토마스와 죠셉 화이트헤드에게 경영권이 넘어갔고 다시 1919년에는 우드러프 가문이 코카콜라의 주인이 됐다.

코카콜라가 세계인의 음료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결정적 원인은 그들이 자랑하는 ‘특유의 톡쏘는 맛’보다는 전쟁과, 전쟁이라는 특수상황을 최대한 활용한 뛰어난 마케팅 때문이었다. 특히 2차 세계대전은 코카콜라가 다국적 기업으로 일어서게 된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했다.

당시 코카콜라의 로버트 우드러프 사장은 미군이 배치되는 모든 전장에 1병에 단돈 5센트의 가격으로 코카콜라를 공급, 전쟁기간 내내 약 50억병의 콜라가 제공되었다. 이를 위해 당시 유럽과 남태평양에는 64개의 코카콜라 공장이 건설되었는데 이들 공장은 전후 코카콜라가 해당 지역시장을 공략하는 전진기지가 되었다.


스포츠마케팅 이용한 최초의 기업

코카콜라는 또 그들 자신이 “우리는 결국 마케팅 회사(We are, after all, marketing company.)”라고 할 정도로 절묘한 마케팅과 유통전략으로 성공했다. 특히 콜라 원액 및 시럽을 생산, 판매하는 ‘코카콜라’와 원액을 납품받아 완제품을 생산, 유통, 판매하는 ‘코카콜라 보틀러’로 이원화한 유통 시스템은 다국적기업 성공의 직접적 관건인 현지시장 개척에 큰 힘을 발휘했다.

코카콜라는 또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에 코카콜라를 판매하기 시작하는 등 스포츠가 갖고 있는 마케팅 분야의 잠재력을 상업적으로 이용한 최초의 기업이기도 하다.

하지만 코카콜라가 항상 승승장구를 거듭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1999년 이후 코카콜라는 유럽에서 코카콜라가 회수조치 당하는 등 안팎으로 큰 시련을 겪고 있다.

그 결과 1999년의 경영성적은 더글라스 대프트 회장 조차도 “1999년의 경영은 실망스럽다”라고 밝힐 정도로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1999년 말 코카콜라의 주가는 1998년(67달러)에 비해 13%가 하락한 58.25달러에 머물렀으며 순이익 규모도 1998년에 비해 31%가 줄어든 24억3,100만달러에 그쳤다.


1950년대 미군에 의해 한국상륙

그렇다면 코카콜라가 한국에 상륙한 것은 언제일까. 또 한국시장에서 코카콜라의 위상은 어느 정도일까. 코카콜라가 한국인 앞에 등장한 것은 1950년대 미군에 의해서였다. 또 우리나라에서 코카콜라가 처음으로 현지 생산된 것은 1968년 한국지역의 첫 보틀러였던 한양식품이 코카콜라를 생산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현재 국내의 코카콜라 조직은 콜라 원액과 상표를 보호하는 한국코카콜라(Coca-Cola Korea Company)와 완제품을 생산, 유통하는 한국 코카콜라 보틀링(Coca-Cola Korea Bottling Company)이라는 2개 독립법인의 연합조직으로 구성되어 있다.

1997년 이전까지는 국내 코카콜라 보틀러도 우성식품(부산, 경남), 호남식품(호남, 광주), 범양식품(대구, 충남북), 두산음료(서울, 경기, 강원) 등 국내 업체들이 맡고 있었으나 한국 시장의 장재력을 인식한 코카콜라 본사가 6억달러를 들여 국내 보틀러의 지분을 인수했다. 1998년 범양식품이 ‘콜라독립 8.15’를 출시, 애국심 마케팅을 펼친 것도 코카콜라 본사와 국내 보틀링 업체의 갈등에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잠재력 무한한 한국시장

2000년 현재 한국시장에 코카콜라는 국내 탄산음료시장의 54%를 차지한 ‘리딩 컴퍼니(leading company)’다.

코카콜라는 한국코카콜라와 한국 코카콜라 보틀링을 합쳐 3,500여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으며 여주, 양산, 광주에 생산시설을 갖고 있다. 또 전세계 다른 지역에서와 마찬가지로 코카콜라 이외에도 코카콜라 라이트, 환타, 킨 사이다, 파워에이드, 네스카페, 닥터페퍼 등을 생산, 판매하고 있다.

한편 코카콜라사는 한국인의 연간 1인당 음용량이 62잔(1잔은 237㎖)에 불과하다는 것을 근거로 시장개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코카콜라 관계자는 “일본은 1인당 연간 음용량이 149잔, 미국은 395잔, 그리고 멕시코는 412잔에 이른다”며 “따라서 코카콜라에 있어서 한국 시장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시장”이라고 말했다.

조철환 주간한국부 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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