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래지어가 본격적인 언더웨어로 등장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다. 전쟁을 계기로 여성의 몸을 옥죄던 코르셋으로부터 브래지어가 따로 떨어져 나왔다.

브래지어를 탄생시킨 주역은 미국 뉴욕 사교계에 갓 데뷔한 어느 젊은 부인. 꼭죄는 코르셋에 반감을 갖고 있던 그녀는 두 장의 손수건과 리본으로 가슴을 가리고 파티에 나갔다. 모두들 놀라 눈이 휘둥그레 졌으나 선견지명이 있는 사업가들은 이를 재빨리 상품화하기 시작했다.

스폰지컵이 든 브래지어를 처음 개발한 업체는 1916년 영국의 제이거사. 당초에는 ‘부래시어’란 이름을 붙였으나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브래지어’로,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우리가 익숙한 ‘브라자’라는 이름을 얻었다.

브래지어는 1960~1970년대 퇴출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여성운동과 저항문화의 영향으로 브래지어 착용을 거부하는 ‘노브라’풍조로 한때 브래지어를 공개 화형시키는 행사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여성 특유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는 새로운 페미니즘과 맞물려 복권됐다.

가슴을 동여매는 한복을 입고 살아온 우리나라 여성에게 브래지어가 대중화한 것은 1950년대. 신영의 비너스가 탄생했고 7년뒤에 남영의 비비안이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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