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에 선 사람들] 나눔의 삶… 진정한 인간애

2000 03/29(수) 23:51

경기 분당에 있는 국군의무사령부 보건처 군의관인 염창환(32) 대위는 매주 목요일이면 퇴근을 서두른다. 황사 섞인 축축한 봄비가 내리던 3월 넷째주 목요일. 그날도 염대위는 어김없이 시계 바늘이 오후 5시를 가리키자 주사기와 약 등 간단한 진료 도구를 챙겨 부대를 빠져나왔다.


3시간 치료에 의사·환자 모두 녹초

한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곳은 일산의 한 아파트. 초인종을 누르자 60대의 할머니가 기다렸다는 듯 문밖까지 나와 반갑게 염대위를 맞았다. 이어 만삭의 임산부처럼 기형적으로 배가 나온 한 여인이 힘든 몸을 이끌며 천천히 나와 인사를 했다. 핼쓱한 얼굴에 소녀같이 가냘픈 팔뚝. 누가 봐도 병마에 지칠대로 지친 모습이었다. 뼈만 앙상한 두 다리는 부푼 배를 지탱하기도 힘겨워 보였다. 그래도 염대위를 보는 순간 그녀의 얼굴에는 미소가 피어올랐다.

8년째 호스피스 활동을 하고 있는 염대위가 이날 돌본 환자는 난소암 말기 환자인 이정미(36·가명)씨. 한때 정상적인 가정주부였던 이씨는 4년째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 중환자다. 그녀의 모습은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니었다. 158㎝,40㎏의 작은 체격. 애처롭게도 그녀의 배에는 복수가 가득 차 숨쉬기조차 힘들어 보였다. 벌써 며칠째 아무 것도 못먹고 호스피스 선생님들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서둘러 오느라 군복도 갈아입지 못한 염대위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간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은 뒤 능숙한 솜씨로 이씨의 복수 제거에 들어갔다. 산처럼 부푼 배에 마취를 한 뒤 대바늘을 꽂고 대형 주사기로 열심히 복수를 빼내기 시작했다. 대개 복수는 한번 관을 뚫어놓으면 자연적으로 외부로 흘러나오게 돼 있다.

그러나 이씨의 복수는 특이하게도 끈끈한 점액질로 되어 있어 배에 구멍을 내도 여간해서 흘러나오질 않았다. 그래서 의사가 일일이 주사기 피스톤을 넣었다뺐다 해야 간신히 나왔다.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일을 하던 염대위는 “잠시 허리 좀 펴겠다”며 의자에서 일어나 한차례 기지개를 편 뒤 물 한잔 마시고 다시 주사기를 잡았다.

그러기를 3시간, 엄청나게 불렀던 이씨의 배는 정상인은 아니지만 상당히 줄어들었다. 복수를 빼는 염대위도, 자신의 뱃속의 이물질을 빼낸 이씨도 모두 녹초가 되어 있었다.


병원서 외면, 호스피스에 의존

이씨가 호스피스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병원들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당한 배신감 때문이다. 4년전 이씨는 세브란스 병원에서 처음 말기암 진단을 받은 후 그곳 의사들로부터 “암이 다른 장기에 전이돼 3개월밖에 못사니 집으로 돌아가라”는 퇴원 통보를 받았다. “어떻게 해서든 살려만 달라”고 애원했지만 그들은 “이미 치료의 선을 넘어섰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하는 수 없어 여러 병원과 지방 요양원 등을 찾아다니며 항암 치료를 했지만 차도가 없었다. 상태는 점점 나빠져 2~3일만 되면 배에 복수가 차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병원 응급실에 찾아가 복수를 빼달라고 했지만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발을 빼기 일쑤였다. 기껏해야 배에 주사기를 꽂아놓은채 나오기를 기다리라는 식이었다. 이씨는 이런 형식적인 치료 때문에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등에 물집이 생길 정도로 누워 있었지만 제대로 복수를 빼지 못하고 눈물만 흘리고 돌아서야 했다.

“병원이 나를 피했던 것은 돈 때문이다. 보통 병원에서 복수를 뺄 경우 의료보험 수가는 1만3,000원 내외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 돈을 받겠다고 의사 한 명이 3시간 이상 나에게 매달린다는 것은 현재의 병원 체계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병원이 우리같은 말기 암환자를 기피하고 있다”고 이씨는 주장했다. 이씨는 “만약 염대위 같은 호스피스가 없었다면 하루하루를 고통과 싸우는 지옥같은 나날이었을 것이다.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호스피스는 마지막까지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해주는 유일한 제도다. 정부 차원에서의 지원이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렇게 언론의 인터뷰에 응하게 됐다”고 말했다.


호스피스가 생명연장의 수단

이씨도 성당 수녀님으로부터 처음 호스피스를 소개받았을 때는 매우 부정적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주변에서 호스피스 하면 마치 ‘죽음이 임박한 사람’처럼 인식되기 때문에 처음에는 망설였다. 물론 내 스스로가 종말이 다가왔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혼자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고통 앞에서 모든 것이 무의미했다. 허리가 녹아내리고 배가 찢어질 듯한 극한적인 고통 속에서 헤어나기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심정에서 호스피스에 모든 것을 맡겼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 나의 생명을 연장시켜주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매일 마약성 진통제인 몰핀을 30㎖씩 먹는다. 약은 염대위가 소속돼 있는 모현 호스피스에서 무료로 제공한다. 염대위는 일주일에 한번씩 이씨 집을 방문해 복수를 빼준다. 물론 무료다. 한번에 빼는 복수의 양은 대략 10ℓ. 이씨의 평소 몸무게의 4분의1 가량을 제거하는 셈이다. 하루하루 죽음과 싸우는 절박한 상황에 있는 이씨로서는 호스피스가 유일한 생명연장의 수단인 것이다.

1992년 의사고시를 마치고 2개월간 호스피스 자원봉사를 한 것이 계기가 돼 아예 호스피스로 나섰다는 염대위는 “고통으로 시달리는 말기암 환자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정부가 나서 전문 호스피스 병원을 신설하는 것”이라며 “영국 호주 등 선진 외국에서는 죽음을 앞둔 환자를 수용하는 전문 호스피스 병원을 세워 무료로 이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보살피고 있다”고 말했다.


말기환자들 위한 정부지원 절실

염대위는 “국내에서는 ‘마약법’이 엄하게 돼 있어 병원에서조차 일정량 이상을 투약하면 법적 제재를 가한다. 그런 상황에서 말기암 환자들이 마약성 진통제를 구입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힘든 실정”이라며 “더구나 호스피스에 대한 의료보험수가도 구체화돼 있지 않아 말기암 환자들은 참기 힘든 고통과 싸우다 처절하게 임종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염대위가 소속된 모현 호스피스에는 의사 4명과 수녀간호사 4명 등 총 8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곳에서 환자에 지원하는 약값과 운영비는 대부분 종교계의 후원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이마저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라 회원 대부분이 자원 봉사로 일하고 있다. 염대위도 삼성의료원 의사인 아내에게 경제력을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처음에는 ‘돈 안되는 일을 한다’고 부모님에게 걱정도 많이 들었다는 염대위는 “죽음을 눈 앞에 둔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은 그 어느 것보다 소중한 일이다. 바로 당신도 언젠가는 이런 죽음 앞에 놓여질 것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인간다운 죽음’, 그것은 인간다운 삶을 사는 것보다 훨씬 힘든 것이었다.

송영웅·주간한국부 기자 hero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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