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스타열전④] 전하진 한글과 컴퓨터 사장(上)

2000 03/29(수) 23:58

전하진(42) 한글과 컴퓨터(한컴) 사장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1980년대 말 세계 자동차업계에서 신화적 존재였던 리 아이아코카 크라이슬러 회장이 생각난다.

한때 GM, 포드와 함께 ‘빅 3’의 하나로 세계 시장을 누비다 경영부실로 주저앉은 크라이슬러를 다시 일으켜 세운 전문 경영인 아이아코카. “어떻게 아이아코카와…”라며 손을 내젓는 전사장이지만 한컴의 재기 스토리만 놓고 보면 아이아코카를 떠올리는 것도 무리는 아닌 듯하다. 귀공자풍의 얼굴에 넘치는 패기와 듣기 좋은 달변, 숱한 아이디어는 그를 벤처분야 최고의 전문경영인 자리에 올려놓는데 모자람이 없다.

전사장이 부도위기에 몰린 한컴에게 ‘구원투수 아이아코카’로 나타난 것은 1998년 7월. 긴 설명이 필요없는 ‘아래아 한글’을 창안한 뒤 승승장구, 한국의 빌 게이츠로 불리던 이찬진 사장이 경쟁상대였던 다국적기업 마이크로소프트(MS)사에게 한글 프로그램을 팔아넘기려고 한지 한달여만이었다.


불혹의 나이에 택한 새로운 도전

“한글지키기 운동본부의 전문경영인 모집 공고를 보고 도전해볼 만한 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한컴과 같은 독보적인 브랜드에 300만명의 사용자가 있는데 뭘 못하겠느냐는 판단이었지요. 사업 10년에 멋진 반전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데 한컴같은 복덩이가 굴러온 겁니다.”

그때 그의 나이 불혹(不惑·사십). 남들은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현재의 자리를 굳히려고 마음먹을 즈음에 전하진 사장은 새로운 도전을 택했다. 이찬진 사장과 공동대표로 한컴에 입성했지만 냉소적인 기존 조직과 한글지키기운동본부의 요구, MS사의 대대적인 공세, 국민의 높은 기대 등으로 적잖은 고충을 겪어야 했다.

그로부터 1년6개월. 그는 적자투성이의 기업을 한국을 대표하는 인터넷 종합서비스 업체로 탈바꿈시키는데 성공했다. 당시 자본금 42억원, 시장가치 40억원이던 한컴은 지난해 말 현재 자본금 200억원, 시장가치 2조원을 넘보는 우량기업으로 성장했다.

1999년 매출액 341억원에 당기순이익 100억원. 250억원에 이르던 부채도 깨끗이 갚았다. 부채비율은 13%. 기존의 한글 소프트웨어인 한소프트네트를 비롯해 인터넷 포탈사이트 네티앙, 채팅 사이트 하늘사랑 등 가족사와 7개 협력회사를 거느린 한컴의 식구는 250여명에 불과하지만 사이버 공간으로 연결된 600만명의 고객으로 거대한 ‘사이버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다. 회사 곳곳에 붙어있는 ‘한글에서 인터넷까지’라는 구호가 실감날 정도다.

‘아래아 한글’이 MS사로 넘어갈 경우 한글 프로그램의 승계를 선언했던 나모인터렉티브의 한 관계자는 “한컴은 운이 좋았어요. 한글을 사랑하는 전국민의 헌신적인 지원과 정부의 불법복제 금지조치가 없었다면 결과는 달라졌겠죠. 물론 우호적인 주변 환경을 잘 이용한 전사장의 능력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라고 한컴의 어제와 오늘을 냉정하게 평가했다.


뛰어난 마케팅 수완, 재기 발판 마련

그러나 전하진 사장은 그때나 지금이나 자신만만하다. 그리고 성공한 사람이 대개 그렇듯 모든 일에 낙관적이다. “맡은 일은 즐기는 타입”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그에게 “배부른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고 쏘아부쳤더니 다소 의외의 답변이 튀어나왔다. “금성사 컴퓨터 사업부에 근무하다 1988년 개인 사업을 시작한 뒤 10여년동안 매일 벼랑 앞에 선 기분으로 살아왔어요. 일을 즐기지 않으면 이렇게 살 필요가 없어요. 언제부턴가 그런 마음이 들더라구요.”

전사장의 능력은 뛰어난 마케팅 수완에 있다. 1만원짜리 한글 8.15판 발매와 지구촌 한민족 한글쓰기 운동 전개, 한소프트네트의 회원제 운영, 은행·영화관·이동통신업체와의 공동 마케팅 등 다양한 마케팅 전략은 한컴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컴퓨터 소프트웨어 개발에 주력하던 그가 마케팅의 필요성을 절감한 것은 1993년께. 당시 한창 유행하던 통신용 비디오텍스라는 단말기를 개발, 보급했는데 시판 6개월만에 신기술이 등장하고 운영방법이 바뀌면서 모든 것을 한꺼번에 날려버리면서부터다.

“정보화 시대의 기술 수준은 도저히 앞날을 예측할 수 없어요. 아무리 새 기술이라고 해도 얼마 못 가요. 곧 더 나온 기술이 나오죠. 세계가 마치 한 지붕 아래에 있는 것처럼 맞물려 돌아가는데 마케팅으로 시장을 선점하지 못하면 하루 아침에 고물로 취급됩니다.” 그는 뒤늦게(1994년) 대학원에서 마케팅 수업을 받으면서 전세계 소프트웨어 시장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소프트웨어 종합유통회사의 탈바꿈

그의 마케팅 수완은 기상천외한 것도 많다. 국내의 대형 은행에 홈뱅킹 프로그램을 구축해줄 때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조그만 회사가 은행에서 일감을 따내기가 쉽지 않았다. 보유한 기술력보다는 회사 자체를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사장은 머리를 짜냈다. “담당자가 제일 먼저 보는 신문을 알아내 그 신문 1면에 통 5단 광고를 냈어요. ‘신문 1면에 광고하는 기업이라면 괜찮겠지’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였어요.” 아이디어는 적중했고 그의 회사는 은행의 일감을 따냈다. 벌써 6-7년전의 이야기다.

“국내의 좁은 시장에서 기술개발 만으로는 성공하기 어렵다”고 확신하는 전사장은 한컴을 1년여만에 기술개발 회사가 아닌 소프트웨어 종합유통회사로 탈바꿈시켰다. 한컴으로 옮겨오기 전 경영했던 ‘조이월드’와 같은 비즈니스 회사를 겨냥하고 있다. 조이월드는 어린이 장난감 네고를 교육용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바꾼 조이블럭을 개발, 20개 나라에 200만달러어치를 판 새로운 개념의 사업체다.

그러나 기술로 출발한 한컴을 마케팅 전문회사로 바꾸려하자 내부에서부터 불만이 터져나왔다. <계속>

[약력]

전하진(田夏鎭)

1984년 인하대학교 산업공학과 졸업

96년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88년 픽셀시스템 창업

94년 (주)레가시 설립

96년 캐나다의 ZOI corp. 설립

97년 (주)ZOI World 설립/대표이사

1998. 7월 한글과컴퓨터 대표이사

이진희·주간한국부 차장 jin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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