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바둑계의 황태자 조훈현

2000 03/30(목) 00:08

반달곰과 제비. 제1회 잉창치배 결승은 중국의 최고수와 한국의 간판스타가 맞붙게 됐다. 과연 누가 이길 것인가. 누가 전 세계를 향해 포호할 것인가.

호사가들의 대세는 조훈현 쪽이었다. 일단 결승전까지 올라오는 과정에서 고행 한번 없이 시원무쌍하게 척척 올라왔다는 점이 강점이었다. 조훈현의 단칼에 잘려나간 거물이 고바야시, 린하이펑 등이니 조훈현의 기량과 자신감은 절정에 달해 있다는 평가가 자연스레 내려지고 있었다.

반면 네웨이핑은 어쩐지…. 8강에서 조치훈을 꺾은 건 인정할 수 있지만 마이클 레드먼드, 후지사와를 이긴 건 자랑거리가 아니라 운이라고 해야 했다. 그들은 또 정상급이라고 보기엔 뭔가 찜찜한 맴버들이었다.

항상 두껑을 열기 전에는 이런 상대비교에 의해 예상평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지금껏 각국의 고수들이 직접 샅바싸움을 해 본 적이 없던 터라 상대전적만으로는 유·불리를 나눌 수도 없었다.

그래도 조훈현 우세론은 사그러들지 않았다. 아무리 ‘바둑소국’의 1인자라고 해도 이미 100개에 달하는 타이틀을 거머쥔 철권이며 일본 유학시절 고바야시, 이시다, 다케미야 등 일본의 유명기사에게 전혀 꿀린 적이 없었던 기재가 아니었던가. 심지어 ‘살아있는 기성’ 우칭위엔마저 자신의 전성기 시절을 능가하는 감각에 감탄을 연발했고 ‘노호’ 후지사와는 최고의 기객이라며 조훈현을 친자식처럼 아꼈다고 하질 않던가.

바둑계의 예상은 이랬다. ‘조훈현은 바람을 가르는 스피드로 시종 잽을 던질 것이고 네웨이핑은 가드를 확실히 올릴 것이다. 네웨이핑은 거의 체력을 낭비하지 않도록 제자리를 느릿느릿 돌며 역습을 노릴 것이고 조훈현은 가드의 위아래를 가리지않고 스트레이트성 잽을 시종 퍼부어 댈 것이다’

네웨이핑이 무채색의 담백함을 능기로 삼는다면 조훈현은 화려무쌍한 유채색의 강렬함을 자랑으로 삼는다. 네웨이핑이 한대라도 덜 맞는 전법으로 장기전을 노리는 ‘방패’라면 조훈현은 한 대라도 더 때리려 달려드는 ‘창’이다.뚫느냐 막느냐. ‘매파’ 조훈현과 ‘비둘기파’ 네웨이핑의 싸움은 그야말로 난형난제라고 예상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기량보다는 그 날의 컨디션이나 대국 스타일 등이 승부를 결정짓는 요인이 될 것이다.

덤이 7집반이라는 건 상당한 변수가 된다. 백을 잡는 쪽은 과다한 덤을 의식해 슬슬 꽁무니를 빼다가 판정승하는 경우를 상정해볼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수비형의 대가인 네웨이핑이 백을 들고 끊임없이 기다린다고 해보자. 그런 상상은 조훈현에게 판세가 유리하다고만 할 수 없는 정황증거가 된다.

그렇다. 일류에겐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차이로 승부가 갈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말처럼 미세한 것이 아니라 천당과 지옥을 오갈 만큼 큰 영향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대국장소가 고층빌딩인지 고색창연한 사찰인지 등 자질구레한 것이 모여서 승인이 되고 패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신경전은 더욱 심할 수 밖에 없다.

제1회 잉창치배 결승은 그런 자질구레한 조건 하나 때문에 난관을 맞았다. 철저히 조훈현에게 불리한 조건이 불거져 나온 것이다. 바로 대국장소 문제였는데, 주최측인 ‘잉창치기금’에서는 결승전 5국까지를 모조리 중국에서 치르겠다고 통보해온 것이다.

무려 100만달러를 내걸고 세계바둑의 향연을 마련한 후원사의 요구를 웬만하면 들어주는 것이 예의다. 그래서 덤 7집반도 수용했고 한국대표가 조훈현, 조치훈 둘밖에 없어도 대승적인 차원에서 수용했다. 그러나 결승전을 모조리 중국에서 치르겠다고 요구한 건 상당히 무례한 짓이었다. <계속>


<뉴스와 화제>

· 이성재 조훈현 패왕전 1:1

조훈현 이성재간의 패왕전 도전기가 1:1을 기록하며 마지막 3국에서 우승자를 가리게 됐다. 2년 연속 조훈현에게 도전한 신예 이성재 5단은 3월17일 한국기원에서 벌어진 도전3번기 제2국에서 205수만에 흑불계승을 거두고 한판을 만회, 종합전적 1:1을 만들었다. 이로써 4월3일 벌어지는 제3국에서 패왕타이틀이 결판나게 되었다.

· 홍태선, 무관 한 풀려나

‘반상의 타이슨’ 홍태선 8단이 첫 타이틀 꿈에 부풀어 있다. 홍8단은 3월20일 벌어진 제1회 청풍배 시니어배 결승 3번기 제1국에서 그동안 21연패의 악몽을 깨고 서봉수 9단에게 118수만에 백불계승을 거두어 생애 첫 우승에 1승을 남겨두었다. 27일 벌어지는 제2, 3국에서 한판만 이기면 홍8단은 사상 첫 타이틀 홀더의 꿈을 이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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