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의사들은 이빨 뽑기를 권했다

2000 03/30(목) 00:38

■ 역사보다 재미있는 것은 없다/신서원 펴냄/정기문 지음

루이 14세는 자신의 생니를 몽땅 뽑아버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것이 사실일까. 역사 전문서들을 확인해본 결과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왜 멀쩡한 생니를 몽땅 뽑아버리는 비상식적인 일이 발생했을까.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의학사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윌리엄 헌터(1718~1783) 라는 영국인 의사가 있었다. 그는 해부학 전문가로서 의학사에 큰 기여를 한 사람인데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는 병에 걸렸을 때는 부패한 환부를 치료하기보다 입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 이 뿌리를 제거하는 것이 낫다고 주장했다.

이후 서양 의사들은 치아를 모든 병의 원인으로 생각했고 환자에게 이빨을 모조리 뽑아버리라고 권했다. 이렇게 잘못된 의학지식이 공인되어 있었기 때문에 루이 14세의 어의도 루이 14세의 생이빨을 모두 뽑아버리도록 했던 것이다.

루이 14세의 사례처럼 이 책은 시중에 회자되고 있는 에피소드나 역사적 상식이 정말로 사실이었는지, 만약 사실이었다면 그것은 어떤 맥락에서 이뤄졌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해부된 상식을 당대의 사회생활이나 역사발전과 연계시켜 설명하고 있다.

가령 루이 14세는 역사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 그가 중앙집권국가를 이루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서술함으로써 서양사 전체의 흐름 속에서 루이 14세가 차지하는 위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있다. 그리고 당대인의 의식구조, 일상생활, 사회구조를 밝히기 위해서 노력하였다.

사도 바울은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말을 남겼다. 이 말은 노동의 가치를 중요시한 것으로 근대 서양사회의 형성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고 이후 서구 자본가들의 ‘자유주의’사상을 발전시키는 데도 큰 지침이 되었다.

그러나 서구인의 노동에 대한 태도가 처음부터 긍정적이었을까. 12세기까지만 해도 서구인은 ‘노동은 부정적인 것이고 자신의 죄에 대한 참회의 수단’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는 아담을 쫓아내면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창세기의 일화와 기독교의 세계관을 담고 있던 중세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그림, 플라톤의 사회유기체론에서 쉽게 알 수 있다.

서양인의 노동에 대한 태도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13세기부터다. 이때부터 교회는 노동을 ‘참회의 수단이 아니라 구원의 지름길’이라고 여겼다. 교회의 태도변화는 종교지도자 뿐 아니라 여러 사상가에게도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고전 자유주의의 창시자 아담 스미스가 ‘노동가치설’을 주장한 것도 이런 맥락 속에서 가능했다.

서양인의 노동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는 근대 세계에서 동양과 서양의 사회질서와 가치관 확립에 큰 영향을 끼쳤다. 서양인은 육체노동에 대한 존중을 빨리 익혔고 실용적인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이에 반해 동양인은 여전히 정신문화, 추상적인 것에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이런 관념상의 차이가 동양과 서양이 격차에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역사는 인간에 대한 총체적인 학문이고, 인간을 이해하고 삶을 유익하게 하기 위한 제일관문이다. 역사는 많은 간접경험을 주고, 상상을 자극하며, 오해와 편견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또 역사는 영웅과 위인을 만나게 해주고, 악인과 졸부들을 만나게 해준다. 따라서 역사는 마음껏 다른 인간들의 세계로 여행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 여행을 통해서 여러 상황에서 인간들이 어떻게 행동했는가를 배운다. 역사연구에는 ‘실증’, ‘일관성’, ‘타당성’등도 중요하지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역사에서 흥미를 느끼고 교훈을 얻는 것이다. 이 책에는 각 시대의 특성을 보여주는, 따라서 흥미롭고 교훈적인 역사와 관련된 89가지의 에피소드가 재미있게 수록되어 있다.

조철환·주간한국부 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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