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구청, 미군과 전면전

2000 04/05(수) 15:09

‘불법건물 철거하라.’‘불법주차 과태료 왜 안내나.’‘아리랑택시 부지 반환하라.’

서울 용산구가 주한 미군을 상대로 적극적인 주권행사를 선언하고 나서 안팎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주한 미군의 갖은 불법행위에도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던 저자세의 관료들만 보며 속앓이를 하던 국민은 민선 구청장의 당당한 행동에 박수와 격려를 아끼지 않고 있다. 용산구가 최근 주한 미군 및 미 군속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쟁점 세가지의 실상과 속내를 알아본다.


미군기지내 건축물 불법증개축

용산구와 주한 미군의 갈등을 촉발한 사건은 미군이 지난해 용산구와 한마디 상의도 없이 강행한 용산기지내 호텔의 증·개축 공사. 미군측은 현재 지상 7층 규모의 ‘드래곤 힐 랏지(Dragon Hill Lodge) 호텔’ 건물 옆에 지하 1층 지상 6층 규모의 별관 건물과 지하 1층 지상 1층 규모의 주차장 건물을 증개축하고 있다.

용산구는 이와 관련, ‘공공건축물 신·증축시 해당 지자체장과 협의를 거쳐야 한다’고 규정한 건축법 제25조를 들어 주한 미군이 관할 지자체인 용산구와 한마디 상의도 하지 않고 공사를 강행한 것은 명백한 불법행위라는 입장이다. 용산구는 이에 따라 이 건물을 불법 건축물로 규정하고 지난 2월8일 자진 시정토록 통보한데 이어 3월8일에는 재차 시정 조치토록 미군측에 촉구했다.

이에 대해 미군은 ‘주한 미군 지위에 관한 한미 행정협정’(SOFA) 규정을 들어 불법이 아님을 항변하고 있다. SOFA 제3조는 ‘미합중국에 공여된 시설과 구역 내에서는 미합중국이 시설과 구역의 설정, 운영, 경호 및 관리에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권한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용산구는 미군의 주장은 억지라고 반박하고 있다. “SOFA 제3조의 어디에도 구조물의 축조에 대한 명시적 규정은 없다”는 것이다.

특히 SOFA 제3조는 ‘시설과 구역의 설정, 운영, 경호 및 관리 등에 필요한 모든 조치’라고 포괄적으로 규정한 것이 아니라 ‘시설과 관리의 설정, 운영, 경호 및 관리에 필요한 모든 조치’라고 하고 있어 제한적 성격의 조항이란 입장이다. 용산구는 나아가 ‘미합중국 군대의 구성원, 군속은 대한민국의 법령을 존중해야 한다’고 규정한 SOFA 제7조를 들어 미군측의 행위는 즉각 시정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불도저로 밀어버리고 싶지만...”

서로 서면으로 입장을 되풀이한 용산구와 미군측은 3월23일 한미 친선협의회를 갖고 대화를 시도했으나 첨예한 입장차이만 확인했다. 이날 미군측은 “증개축 문제는 조만간 한국 정부를 통해서 답신이 갈 것”이라며 더이상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 용산구를 아예 협상 대상으로도 보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이에 성장현(成章鉉) 용산구청장은 인사말을 통해 “3월31일까지 미군측이 불법 증개축 건물을 자진철거하지 않을 경우 중장비와 철거반을 동원, 강제철거할 수 밖에 없다”며 강경한 의지를 밝혔다.

친선협의회 자리가 일순 싸늘해졌다는 것이 참석자의 전언이다. 구청 관계자는 “우리 국민은 한두 평만 불법 건축물을 지어도 강제철거에 나서는데 미군은 말 한마디 없이 모두 10개층의 건물을 지어도 아무런 제재가 없다면 말이 되겠느냐”며 “미군기지 안으로 들어가서 건물을 밀어내고 싶은 심정이지만 기지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면 포크레인 등 중장비와 철거반을 동원, 기지 정문 앞에라도 가서 우리의 강경한 의지를 보여주겠다”고 밝혔다.

용산구가 이처럼 강경한 입장을 천명하고 나선 것은 미군측의 고자세가 용산구민과 공무원을 더욱 자극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용산구는 증개축 건물의 철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하고 미군측에 “모양새만 갖춰주면 사후승인 형식으로 증개축을 인정하겠다”는 제의까지 내놓았다

미군측이 용산구에 양해를 구하는 형식을 취하면 용산구도 이를 인정하겠다는 것이었다. 다만 앞으로는 기지내에서 건물을 증개축할 때는 용산구와 사전에 상의를 해달라는 조건이 붙었다. 그러나 미군은 이러한 용산구의 양보에도 ‘조만간 한국 정부를 통해서 답신이 갈 것’이라며 고자세로 일관, 용산구의 자존심을 무시하며 더욱 화를 돋우었다.


불법주정차 과태료 96%가 미납

용산구와 주한 미군이 두번째로 갈등을 겪고 있는 부분은 미군 및 미 군속의 불법 주정차 과태료 미납문제.

용산구에 따르면 1994∼1999년 미군 소속 차량의 주정차 위반건수는 모두 9,540건으로 총 3억8,588만여원의 과태료가 부과됐다. 그러나 불법 주정차 과태료를 납부한 미군 차량은 겨우 386건에 1,558만원으로 납부율은 4%에 불과하다. 미군은 불법 주정차를 일삼고도 100명중 96명은 과태료를 내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처럼 미군 및 미 군속이 불법 주정차 과태료를 내지 않고 있는 것은 SOFA 규정상 강제집행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SOFA 제14조는 ‘미합중국 군대 구성원 및 군속, 그 가족까지의 재산에 대해 각종 조세를 부과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미군 소속 차량이 과태료를 체납할 경우 국내 체납 차량처럼 압류 등을 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이때문에 미군은 과태료를 체납한 채 출국하고 있고 차량을 매매할 때에도 미군내 ‘SOFA 차량등록사업소’에서 이전등록 등을 자유롭게 하고 있다. 국내 체납 차량의 경우에는 지자체가 자동차를 압류해 놓기 때문에 매매나 이전등록 등이 자유롭지 않다. 특히 일부 미군은 과태료 고지서를 한국 방문 기념품 정도로 여겨 출국할 때 가지고 가는 사례도 있다.

그러나 용산구는 불법 주정차 과태료는 조세가 아니므로 SOFA 규정과 상관이 없어 미군 소속 차량도 반드시 납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군측은 이에 대해 “과태료도 일종의 조세 성격이 강하다”는 입장을 보이면서 버티다가 최근 미군 및 미 군속을 상대로 불법 주정차를 하지 말도록 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밝혀 한발 물러섰다.

용산구는 나아가 미군 소속 차량의 불법 주정차 과태료 문제를 전담 처리하는 부서를 별도로 설치, 미군측과 용산구간 긴밀한 업무 협조체계를 유지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또 부내 내에서 발간되는 영문판 일간지에 한국 도로교통법규 해설을 게재해 불법 주정차로 인한 과태료 납부가 당연한 의무임을 널리 홍보해갈 방침이다.

한편 용산구는 미군 소속 차량의 과태료 고지서가 현재 한글로만 표시되어 있어 고지서를 받은 외국인이 무슨 내용인지 몰라 납부치 못하는 것을 개선하기 위해 영문 고지서를 새로 제작, 조만간 대체 송부키로 했다.


아리랑택시 부지반납도 외면

용산구와 주한 미군의 3라운드는 아리랑택시 부지의 전용 및 반환과 맞물려 벌어지고 있다.

문제의 땅은 용산구 이태원동 34의87 외 3필지 약 3,317평. 원래 국방부 소유의 잡종지였으나 현재 주한 미군측이 군사목적으로 무상 제공받아 사용하고 있다. 문제는 미군이 이 땅을 미군 및 군속 전용 택시인 아리랑 택시측에 차고지로 임대, 부당한 임대료 수입을 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미군측은 연간 총매출액의 6.8%를 임대료로 징수하고 있어 자기 땅도 아니면서 매년 3억∼4억원의 부당 임대수익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이 부지는 용산구로서는 포기할 수 없는 노른자땅이다. 이태원 관광특구의 초입에 위치하고 있어 이태원 관광특구 개발을 위한 주차공간 확보에 최적지기 때문이다. 용산구는 이때문에 이미 이곳에 주차타워, 관광버스 주차장, 관광특구 상징조형물, 관광안내센터 등을 설치하겠다는 복안까지 세워놓고 미군측과 협의에 나섰으나 미군측의 소극적 태도로 답보 상태를 되풀이하고 있다.

지난해 5월 1차 실무협상 이후 2차 협상을 열기위해 지난 2월까지 두 차례나 구청장 명의의 공문을 보냈으나 미군측은 묵묵부답이다. 지금까지 협상 결과 용산구는 기존 시설 규모에 상응하는 공간을 별도로 확보해 제공하겠다는 입장이나 미군측은 시설 대 시설, 부지 대 부지의 1:1 교환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윗 용산구’와 ‘골리앗 주한 미군’의 대결은 21세기 동반자 관계의 한미관계를 새로 설정하는데 있어 하나의 실험대가 되고 있다. 결국 용산구와 주한 미군의 문제는 재판권 행사문제 등 불평등한 SOFA 규정의 개정과 맞물려 있다는 것이 전문가의 지적이다. 용산구의 ‘전쟁’이 SOFA의 개정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박일근·사회부기자 ikpark@hk.co.kr


(C) COPYRIGHT 1999 THE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