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경제전문가·기관, 경기과열·고성장 드에 '엘로카드'

이번에도 한국 경제가 먼저 샴페인을 터뜨린 것일까. 1999년말 이후 연 10%가 넘는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며 순항중인 한국 경제의 앞날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바다 건너 외국에서 잇달아 터져나오고 있다.

모건스탠리, 골드만삭스, 도이치은행 등 한국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는 외국계 금융기관은 물론이고 노벨상 수상자인 미 컬럼비아대 로버트 먼델 교수 등은 최근 한국 정부에 일제히 인플레 방지책을 촉구하고 나섰다. 요컨대 이들은 모두 ‘한국 경제가 과열국면으로 치닫고 있으며 금리인상이나 환율절상 등으로 인플레 압력을 사전에 차단하지 못한다면 또다시 위기상황에 직면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긴축정책 필요성 제기

모건스탠리는 ‘한국 경제의 연착륙’이라는 보고서에서 “한국은행이 가능한 한 빨리 예상보다 강한 긴축정책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모건스탠리는 “한국경제가 지난해 4·4분기 13%라는 7기록적인 성장률을 보이는 등 1999년중 경제성장률이 10.7%에 달해 경기과열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고 밝혔다.

모건스탠리는 지난 3년동안 고정투자가 연 평균 1%정도 증가하는데 그친 반면 생산설비는 노후화하고 철강, 유기화학, 전자부문 등 대부분의 제조업이 완전가동 수준에 도달해 현재와 같은 성장추세가 지속될 경우 생산설비 부족 현상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또 2000년중 재고, 소비, 투자 등이 모두 호조를 보여 경제성장률이 7.7~8.7%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모건스탠리는 따라서 “한국 정부는 기업부채 감축 등 기업구조조정을 촉진하기 위해 높은 성장을 선호하겠지만 경제의 연착륙을 위해서는 한국은행이 이른 시일내에 강한 긴축정책을 실시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골드만삭스 역시 3월29일 ‘신흥개도국 경제’라는 보고서에서 “한국의 강한 성장국면은 아시아 지역 등에 대한 수출호조와 국내 수요회복 등으로 스스로 진정되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골드만삭스는 “한국이 과열없는 경제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금년중 0.5~0.75% 포인트의 콜금리 인상과 원화절상을 병행하는 정책대응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골드만삭스는 “한국은 교역조건 개선, 외국인 투자자금 유입증가 등에 힘입어 단기간 내에 외환위기를 극복했으나 이 과정에서 과잉 유동성이 공급돼 자칫 지난 1980년대 후반과 같은 자산가격 인플레이션(거품경제의 붕괴)이 초래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로버트 먼델 교수도 3월31일 “한국 정부는 엄격한 인플레 목표를 갖는 통화관리 정책과 충분한 외환보유고를 확보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99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먼델 교수는 아·태 경제협력체(APEC) 서울 포럼에서 “한국 경제는 앞으로 통화관리 정책에서 문제점이 발생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며 “뚜렷한 목표를 갖는 통화정책, 특히 대만이나 싱가포르 일본처럼 엄격한 인플레 목표를 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 "과열상황 아니다" 주장

그렇다면 한국 경제는 어떤 상황에 처해 있길래 외국인들로부터 우려의 소리를 듣고 있을까. 또 정부 당국은 어떤 인식을 하고 있을까. 우선 재정경제부 등은 ‘아직까지는 경기가 과열상황은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예상보다 경기 상승속도가 빠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 인플레이션 압력이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과열을 진정시키기 위한 정책을 추진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달 말 통계청이 발표한 ‘2월중 산업활동동향’은 한국 경제가 외부의 우려와는 달리 안정성장 국면에 직면했음을 보여준다. 통계청에 따르면 2월중 산업생산의 전월 대비 증가율이 마이너스 0.9%를 나타내 경기의 상승속도가 완만해지고 있다. 또 지난해 11월이후 3개월째 80%대를 유지했던 제조업 평균가동률도 78.9%로 떨어지고 현재의 경기상황을 나타내는 동행 종합지수 순환변동치 역시 1월보다 0.1 포인트 감소했다. 즉 지표상으로는 경기과열에 대한 외국인의 우려가 ‘기우’에 불과하다는 결론도 가능하다.

하지만 “한국 경제가 안정 성장국면에 진입했다”는 정부 당국의 주장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모든 여건이 불안전하다.

특히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책 당국이 국민으로부터 ‘인기’가 떨어지는 긴축정책을 애써 기피하면서 3월중 수입 규모가 사상최대치(142억 2,000만달러)를 기록하는가 하면 국제유가의 급상승으로 여전히 인플레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 금융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4월말 이후 은행합병, 투신권 구조조정, 공공요금 추가인상 등 총선 이후로 애써 미뤄놨던 각종 경제현안과 최근 고개를 들고 있는 노동계의 임금인상 요구가 한꺼번에 터져 나올 경우 경제의 균형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 거품경제도 위협요인

한껏 부풀어 오른 미국 경제의 거품도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또다른 요인이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모건스탠리는 최근 한 보고서에서 “미국 증시가 어느 정도는 버블 상태라는 것이 월가의 일반적 분위기며 이같은 상황에서 외국자본의 철수 분위기가 감지될 경우 미국 주가가 급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또 템플턴 펀드의 투자분석가인 마크 모비우스(Mark Mobius)도 “최근 인터넷 관련주가 급등락을 반복하고 있는 것은 대폭락의 전주곡”이라고 경고했다. 3월말 현재 다우존스 인터넷지수는 3월12일 519.91을 기록한뒤 15%이상 폭락한 상태이다.

국제금융센터는 또 지난달 30일 윌리엄 맥더너프(William J. McDonough) 미 뉴욕연방은행 총재의 말을 인용, 미국 경제의 거품붕괴 가능성을 경고했다. 국제금융센터는 “1999년 미국 경제의 경상수지 적자규모는 3,389억달러로 1998년(2,324억달러)에 비해 45.2%나 증가했는데 역사적 경험으로 볼 때 이런 수준의 적자는 장기간 지속될 수 없다”고 밝혔다. 국제금융센터는 따라서 “미국 경제에서는 곧 거시경제의 조정이 이뤄질 것이며 이 과정에서 자칫 주가폭락이 초래될 수도 있다”고 정리했다.

국제금융센터의 예상대로 미국 경제의 거품이 꺼진다면 한국 경제에 대한 파급효과는 실로 엄청나다. 우선 외환위기 이후 나타난 한·미 주가의 동조화 현상으로 국내 증시의 주가폭락이 불가피하며 미국 수출이 위축되고, 경상수지 적자를 줄이려는 미국의 통상압력이 높아질 것이 명약관화하다.

결국 한국 경제는 비록 외형상으로는 안정적 성장국면에 진입한 것으로 보이지만 속으로는 국내외 모두에서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형국이다.

조철환·주간한국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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