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들이 보는 ‘자산증가효과’(wealth effect)는 보통 사람이 생각하는 외계 생물과 마찬가지다. 분명히 있다고 확신하지만 입증할 수는 없고, 또 그것이 얼마나 크고 위험한지 여부를 알아낼 단서도 갖고 있지 않다. 그만큼 모호한 존재이지만 절대로 틀리지 않기로 유명한 앨런 그린스펀(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가차없이 금리를 인상하면서까지 대항에 나설 정도로 무섭다.

자산증가효과는 간단히 말해 순자산 가치의 증가분보다 더 많이 소비하는 성향이다. 개인적으로는 늘어나는 부(富)가 가져올 수도 있는 이 문제를 고민하며 뜬눈으로 밤을 새지 않을 것이나 워싱턴에서는 그게 큰 문제가 된다.

과소비는 바로 인플레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플레는 나쁘다. 그래서 자산증가효과를 막는 방법은 바로 순자산 가치의 증가 자체를 공격하는 일이다. 주식시장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는 그린스펀 의장이 내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그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0


금리인상으로 인플레 견제

그린스펀 의장은 지난주 연방기금 금리를 6%로 끌어올렸다. 9개월만에 5번째 인상이다. 그는 재할인율도 인상했다. 앞으로도 더 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뒤따라 은행들도 기준 금리를 9%로 올렸다. 5년만에 가장 높은 금리 수준인데 소비자에게는 신용카드 및 은행대출 비용이 더 늘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금리인상으로 주식시장이 한때 위축됐으나 곧 회복됐다. 다우존스 공업지수는 4.9% 상승한 상태에서 그 주일을 마쳤고, 책임을 느껴야 할 나스닥도 3.4% 올랐다. 그것은 ‘그린스펀식’ 해결방식을 더욱 강화시킬 뿐이다. 미국 경제는 지난 반년동안 위험할 정도로 강력했던 게 분명하다.

국내총생산(GDP)은 FRB가 올해 과속성장의 한계로 설정했던 3.5%보다 높은 4.1%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같은 무서운 성장률은 그린스펀 의장이 금리인상을 합리화하고자 할 때 가장 자주 인용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GDP의 팽창이 떤 면에서는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1998년보다 빠른 4.1%에 달했으나 원유가 영향을 제외하면 인플레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과열에 대한 불안감이 팽배한 가운데 주택 같은 분야에서는 성장완화의 징후도 있다.

그런데 왜 금리를 더 올려야 하나? FRB는 주가가 올라 일반 가정의 소비를 부추기는 현상을 우려하고 있다. 각 가정이 소비에 나서면 생필품은 부족해지고 나아가 소비자 물가를 천정부지로 밀어올려 과열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이것은 흥미로운 이론이다. 이것은 또 아직 미성숙 단계인 경제팽창의 흐름을 막고 그린스펀 의장의 명예에 먹칠을 하면서, 조지 부시 전대통령이 1992년 대선에서 경제문제로 고배를 들었듯이 앨 고어 부통령의 대선 열차를 탈선시키는 출발이 될지도 모른다.


소비 부추기는 주가상승

증시는 분명히 미국인의 ‘부의 증가’에 크게 기여했고 과소비를 부추겼다. 그린스펀 의장은 증시에서 1달러가 오르면 레스토랑, 휴가, 커텐 등 실물경제에서 3~4센트의 추가 소비가 이뤄진다는 장기 연구결과를 인용하곤 한다. 증시에서 수조 달러의 새로운 부가가치가 생기면 수십억 달러가 개인 소비로 환원되고 1~2%의 국내생산 증가에도 기여한다.

문제는 그같은 추산이 올바른지 여부도 분명하지 않다는 점이다. 설사 맞다고 하더라도 경제학자들이 말하듯이 과거 수년간 자산증가효과가 인플레를 유발하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대규모 기술투자에서 나오는 생산성 향상으로 노동자들은 추가소득에 따른 소비를 상쇄할 만큼 생산성을 올려 궁극적으로 소비자 가격의 오름세를 막게 된다.

생각해 보자. 사람들은 돈이 생기면 하는 일중 하나가 차를 바꾸는 것이다. 그래서 자동차 판매는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새 자동차의 가격은 여전히 떨어지고 있다.

메릴린치의 수석 경제학자 브루스 스타인버그는 그린스펀이 제기한 이슈에 근본적으로 공감하지 않는다. 그는 “증시에서 얻은 수익 1달러중 1~2센트만 안락함을 추구하는데 쓰여지고 있다”고 말한다. 주가지수가 새로운 고점을 돌파하면 사람들은 증시에서 얻은 수익에 대해 매우 신중하게 되고 그 수익이 영원할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은 적다고 그는 지적한다. 그들도 FRB처럼 천정부지로 오르는 하이테크 주식에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소득이 생기더라도 신중하게 소비를 늘리고 있다.

에드 야데니 도이체 뱅크 수석 경제학자는 “사람들은 증시에서 얻은 소득을 은퇴대비용 구좌에 넣고 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미국의 베이비붐 세대, 즉 40~50대 사람들은 은퇴후 생활보장에 큰 우려를 갖고 있어 소득을 소비하기 보다는 갖고 있고 싶어한다. 그래서 베이비 붐세대를 겨냥한 시장은 죽어가고 있고 11조달러 규모에 달하는 은퇴후 산업의 일부 분야는 1990년이후 연 18%씩 성장하고 있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증시는 부자들의 세상

자산증가효과의 다른 면은 없을까. 우선 자산증가는 아주 제한돼 있다. 주식거래를 하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절반에 불과하고 수익을 은퇴후 대비용이나 연금계좌에 넣는다. 스스로 부자라고 느끼지만 소비는 봉급정도에 그친다.

FRB의 자료는 증시에서 자산증가는 부자에게만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연봉 2만5,000달러 이하인 가정은 거꾸로 재산이 줄어들고 있다고 느낀다. 59%에 이르는 가정은 1998년부터 3년간 재산이 1%이상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린스펀이 폭발장세의 증시에 주목, 경제성장 속도를 늦추기 위해 지금까지 금리를 올려 대응한 것은 과민반응의 위험을 안고 있다. 금리인상이 경제에 체감되려면 1년이 걸린다. 지난해 6월에 이뤄진 첫 금리인상마저도 경제에 완전히 반영되지 않았고 나스닥을 표적으로 삼은 것도 그린스펀이 너무 했다는 비난에서 벗어나기 힘들게 만든다.

자산증가효과를 단기 상쇄시키려는 FRB의 희망은 지난주 증시폭등으로 물거품이 됐다고 하이 프리퀀시 이코노믹스의 수석 경제학자 이안 쉐퍼슨은 말했다. 올해 말까지 총 0.75%의 금리인상이 있을 것으로 그는 예상하고 있다. 그 정도면 염려하던 자산증가효과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호황이 그 궤도에서 멈추지 않기를 희망할 뿐이다.

정리:이진희 주간한국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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