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잉창치룰 전파 명분, 중국행

2000 04/05(수) 18:48

“돈 좀 있다고 유세 떠네.” “이렇게 당하고도 출전을 해야 하나. 보이콧하자구.”

한국기원이 조용할 턱이 없었다. 출전선수도 달랑 조훈현과 조치훈 두명만 불러 우리나라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더니 어찌 어찌 결승까지 올라가니 이제는 결승전 5판을 모조리 중국에서 치르겠다고 횡포다. 이건 한국을 바둑 약소국으로 전락시키려는 ‘음모’라고 한국측은 믿게 된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것은 우리의 자격지심이었다. 우리가 주최하는 유수의 세계대회는 한·중·일을 번갈아 가며 치러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열리는 경우가 흔하다. 그 결과 한국측이 약간 이득을 보기도 한다.

스폰서가 뭔가. 쉽게 말해서 봉이 아닌 것이다. 그들도 거금을 들였을 때엔 그만한 수지타산을 계획한 것이고, 그것은 바로 대만 거부 잉창치의 바둑 열정을 100만 달러와 바꾸고자 한 것이다.

대만인이지만 잉창치의 고향은 대륙 상하이(上海)였다. 그 역시 사업가여서 한창 세계적 주목을 받는 중국땅을 하나의 ‘골드랜드’로 인식했고 자신의 고향인 중국에서 그의 족적을 남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따라서 잉창치기금에서는 중국에서 결승을 치러 중국인에게 기억에 남을 만한 감흥을 던져주고자 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 것은 아주 소박한 바람이었다. 결승대국자가 중국의 네웨이핑과 한국의 조훈현이 아니더라도 그들은 처음부터 중국행을 고집했을 것이다.

게다가 잉창치는 자신이 고안한 잉창치룰을 세계적으로 전파하고 싶은 욕구가 강했다. 보급차원에서도 그들은 꼭 중국행을 결행해야 할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사실 잉창치룰은 한국과 일본에서 통용되는 룰에 비해 상당히 합리적인 룰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보급을 위해서는 바둑돌 수와 바둑판이 세트로 갖춰야 하는 치명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었다.

잉창치는 또 상하이에 대단위 바둑용품 공장을 세워 1만원선이란 싼 값으로 전 세계에 보급할 계획을 실행중에 있었다. 조훈현과 네웨이핑이 중국에서 만나야할 이유가 충분했던 것이다. 그리고 많은 중국인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조훈현이 무릎을 꿇어줘야 할 이유도 있었던 것이다. 더욱이 네웨이핑은 대륙의 실력자 덩샤오핑과 브리지 게임을 즐길 만큼 정치적으로도 거목이 아니던가.

“양선생, 5국을 모조리 다가져가는 건 심하지 않소. 기금측의 소망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상식선에서 결정이 되었으면 싶소.”

“그동안 원만한 진행을 위해 한국측에서 큰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재고해보겠습니다.”

잉창치 기금의 실력자 양후가는 합리적인 사람이었다. 결국엔 스스로 무리한 요구였음을 시인하고 1~3국을 중국에서, 4~5국을 싱가포르에서 열기로 최종 결정을 바꿨다. 좋은 말로는 절충안을 낸 셈인데, 중국측에서는 어차피 3:0으로 이겨버리면 마찬가지라는 당치않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싱가포르까지 갈 이유가 없다고 본 것이다.

대회 시작을 고작 사흘 앞두고 진통 끝에 대국장소가 결정났다. 제1,2국은 항주에서, 3국은 영파에서 열기로 했다.

드디어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다. 중국에서의 3번기가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 틀림없었다. 네웨이핑은 내리 3연승으로 가져갈 기세였고 조훈현은 적지의 어려움은 잘 알지만 2승1패를 거두고 싶다는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그렇게 결전의 날은 밝았다. <계속>


<뉴스와 화제>

* 농심신라면배 한국우승

한국이 제1회 농심신라면배 국가대항전에서 중국의 막판 추격을 따돌리고 바둑최강국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3월26일 서울에서 속개된 농심신라면배 최종 14국에서 한국팀 주장인 이창호 9단이 중국팀 주장인 마샤오춘에게 200수만에 백으로 불계승을 거두며 최종우승을 이끌었다.

대회 종반 중국팀의 부주장인 창하오가 조훈현 유창혁 등을 내리 꺾고 3연승, 상당한 기세를 올렸으나 한국의 마지막 주자 이창호가 일본팀 주장인 조선진과 중국팀 주장인 마샤오춘을 연파하며 극적인 우승을 거머쥐었다.

신라면배의 전신이던 진로배에서 5연패를 달성한 바 있는 한국은 이로써 단체전에서는 무적임을 입증하였다.

* 형제기사 이상훈 이세돌 초강세

형제는 용감했다. 형제기사 이상훈 3단과 이세돌 3단이 최근 각 기전에서 맹활약하여 화제가 되고 있다. 형 이상훈 3단은 신인왕전에서 최종결승에 올라 생애 첫 우승을 기다리고 있다. 또 동생 이세돌 3단은 올초부터 내리 17연승을 거두며 무패 행진을 하고 있는데 최근 6개 기전에서 잇달아 본선에 오르는 등 맹활약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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