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 안에선 인생의 희로애락이 펼쳐진다. 배우들은 고상하게, 혹은 사랑스럽게, 혹은 치고받고 싸우며 인생을 연기한다. 개그맨도 마찬가지. 시청자를 조금이라도 더 웃기기 위해 자신의 스타일이 망가져도 전혀 개의치않는다.

한 드라마, 한 작품에 출연하는 동안 이들은 한솥밥을 먹는 식구가 된다. 이들은 무대 뒤에서 서로 배려하고 아끼는 가족이나 다름없다. 그들이 무대 뒤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살짝 엿보았다.


SBS TV <불꽃>

작가가 악명높은(?) 김수현이다 보니 연 들은 초긴장 상태다. 대작가 김수현에게 간택됐다는 뿌듯함에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도 하지만 대본에 씌어진 대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대사를 읊어야 하는 탓에 여기저기서 불경 외는 소리가 들린다.

겉으로는 ‘아랫것’들만 호들갑을 떤다. 강부자 정혜선 박근형 백일섭 등 베테랑은 이상하게 여유만만. 하지만 알고보면 대사 외우느라 전날 밤을 꼬박 새우고 와 졸음을 참고 있는 것이다. 강부자는 대사량이 많은 날에는 가슴 울렁증까지 보인다고 동료에게 털어놓았다. 후배 앞에서 책잡히지 않기 위해 더 노력하는 것이다. 주인공 이영애는 아예 개인 분장실에 박혀 일체의 외부 접촉을 거부하며 집중한다. 다른 드라마를 할 때는 보지 못했던 모습이다.

반면에 긴장을 돌파하기 위한 자구책도 보인다. 정혜선은 괜시리 떡을 5상자나 해와 여기저기 돌리며 분위기를 돋우고, 장서희는 선배들에게 차를 실어나른다. 오후 5시면 출출한 배를 달래려고 떡볶기와 만두를 사와 나눠먹는데 서우림은 떡볶기에 오뎅이 없으면 툴툴댄다.

김수현 작가가 분장실을 방문하는 모습도 재미있다. 시청률을 몰고다니는 작가지만 <불꽃>은 아직 활활 타오르진 않는다. 초반엔 MBC TV <진실>에, 현재는 MBC TV <나쁜 친구들>과 접전중이다. 그래서인지 김 작가는 분장실에 와서 은근히 분위기를 살핀다. 강부자에게 “여론조사 해봤어?”라고 넌지시 묻기도 하고 배우들이 주눅들까 염려되는지 젊은 사람의 연기를 칭찬하기도 한다. 대작가도 시청률이 신경쓰이긴 매한가지인 모양이다. /윤고은 기자


KBS 2TV <개그 콘서트>

한주일을 무사히 넘겼다는 안도감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일요일, 녹화 D-1일이 닥친다. 일주일 내내 연습을 했건만 왜 이리도 만족스럽지 못한지.

‘개그 콘서트 사람들’에게 일요일은 악몽같은 날이다. KBS 본관 희극인실 맞은편 분장실에서 내일 공개녹화를 위한 오디션이 열리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준비한 아이디어를 잘 포장해 PD 작가 스태프가 모두 모인 자리에서 보여주는 리허설을 이들은 ‘오디션’이라 부른다.

오후 2시 면도하는 것을 밥먹는 것 보다 싫어하는 박중민 PD가 들어온다. <개그 콘서트>를 맡은 이후 발 뻗고 자본 적이 없다는 그는 오늘도 수심에 가득한 얼굴이다. 이어서 빨간 운동화를 선호하는 김미화, 복부 과다돌출 현상으로 기성복을 입어본 적이 없는 110㎏의 거구 백재현이 이어 들어온다. 한주일 내내 열심히 딴 짓에 열중한 심현섭 김영철 김준호 김경희 김지혜 김대희 모두 벼락치기에 몰입하고 있다.

결국 오늘도 역시 아무도 대본을 외워오지 않았다. 열받은 박 PD는 연신 다리를 떨고 있다. 분노가 폭발하기 직전이다. 하지만 출연자들은 대본에도 없는 애드리브로 연신 그를 웃긴다.

일요일 밤 11시가 다 되어서야 연습은 끝이 난다. 김미화를 제외한 최고참 백재현이 후배들을 불러놓고 다그치고 있다. “웃기려고 태어났어? 그러면 점잖게 웃겨서 박수받을 생각하지마. 관객이 박수칠 여유도 없이 자지러지게 만들어야지. 그게 개그맨이야!”

그 상황은 결코 웃기지 않다. 오히려 비장함이 느껴질 정도이다. / 오태수 기자


KBS 1TV <태조 왕건>

“이제 날이 풀렸으니 찍을만 하겠네.”

KBS 본관 D스튜디오 출연자 대기실. KBS 1TV <태조 왕건>에서 궁예 역을 맡은 김영철이 불쑥 한마디를 던진다. 왕건역의 최수종이 “아휴, 그걸 말로 다해요. 추울 때 촬영하면 특별수당을 받아야돼요”라고 받아친다.

지난 겨울 철원성 전투장면을 찍기 위해 영하 10도가 넘는 혹한을 견딘 기억이 새로울 것이다. 엑스트라들이 추위를 견디다 못해 일부는 도망가고 일부는 방송사로 찾아와 항의까지 했던 그날.

미륵을 자처하는 궁예는 승려처럼 대머리에다 어릴적 상처로 애꾸눈이다. 최수종이 김영철의 반짝거리는 머리를 신기한 듯 쳐다보며 묻는다. “형, 머리는 어떻게 관리해?” “야, 매일마다 전기 면도기로 깎고 있다. 요즘 면도기 좋더라. 맨들맨들하지.”

이번엔 김영철이 장난을 건다. “수종아, 근데 니 이름이 왕건이 뭐냐?” “왕건이 어때서요?” “국물 건더기 중 제일 큰 걸 ‘왕거니’라고 하잖아” “나 원 참.” “수종아, 그런데 왕건처럼 보이려면 살 좀 찌우는게 좋지 않을까?” “형, 난 원래 살이 안찌는 체 이야. 아휴 매일 밤마다 생수 한병씩을 비우든지 해야지 원….”

“왕건 준비해 주세요.” FD가 끼어들지 않았다면 이들의 대화는 끝이 안났을지도 모른다. /이상목

일간스포츠 연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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