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렇지 않게 볼 수도 있다. 올해(72회) 아카데미영화제도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새천년의 시작이니 뭔가 새로운 것을 기대했다면 실망을 넘어 구역질을 느낄 수도 있었다. 새로운 천년에도 아카데미는 피부색에 대한 차별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럴 생각이 없었다. 공정한 심사에 따른 결과일 뿐이다”라고 말하면 할 말은 없다. 더구나 아카데미영화제는 칸이나 베를린처럼 세계영화제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대종상처럼 미국의 국내영화제에 불과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든 무슨 상관이냐”고 반박한다면 그만이다. 단지 그들의 잔치에 세계가 호들갑스럽게 들뜨고 관심을 가지는 것이니까.

그렇다해도 세계 영화의 지배자임을 자처하고 영화로 인류의 즐거움과 정의와 질서와 꿈과 희망을 대변하듯이 행세하는 할리우드인 만큼 그들의 선택은 곧 세계 영화의 이념과 가치를 결정한다. 그런 점에서 올해 아카데미는 더더욱 퇴행적이었다.

아카데미가 백인들, 특히 그들의 주체세력인 유태인의 잔치이고 그나마 가뭄에 콩 나듯이 유색인종에 대한 배려가 눈에 띠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새천년이니까 그나마 그 얄퍅한 정치적 제스쳐라도 기대했다. 그러나 결과는 ‘앞으로의 100년도 할리우드는 백인의 세상’임을 선포하는 것으로 끝났다.

전무(全無). 흑인이나 유색인종은 단 한사람도 시상대에 서지 못했다. 할리우드로 진출한 홍콩의 주윤발과 몇몇 흑인배우가 시상자로 들러리를 서긴 했지만 정작 그들은 어느 한 부분에서도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

후보부터 그랬다. 겨우 세 사람. 감독상 후보였던 ‘식스 센스’의 나이트 샤말란, 남우 주·조연상 후보였던 덴젤 워싱턴과 ‘그린 마일’의 마이클 클락 던칸. 흑인의 남우 주연상 수상은 까마득하다. 1963년의 시드니 포이티에. 그것도 이전에 그가 숱하게 연기했던 인종차별에 대한 영화가 아닌 ‘들백합’으로였다. 아리조나 사막에서 한무리의 수녀가 교회를 짓기위해 고용한 방랑자 역을 맡은 그는 백인(수녀)의 ‘흑인 포용’이자, 흑인의 ‘정직한 노동’에 대한 찬사였다.

그로부터 37년이 지난 올해 덴젤 워싱턴은 인종차별이란 가장 근본적인 무기로 수상에 도전했다. 할리우드 도박사들은 그를 1순위로 꼽았다. 시상식 하루전 월스트리트저널이 심사위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출구조사에서도 그의 수상은 확실했다.

그러나 두껑을 열어보니 ‘아메리칸 뷰티’의 케빈 스페이시였다. 흑인배우는 인종차별로 아카데미의 인종차별에 도전하지 말라는 것일까. 1992년 ‘말콤 X’도 개봉되자마자 뉴스위크가 특집을 실어 흑백갈등을 풀어줄 영화라고 떠들었고 덴젤 워싱턴을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결과는 지금과 마찬가지였다.

샤말란 감독도 같은 영국 출신의 신출내기 샘 멘데스에게, 마이클 클락 던칸은 ‘늙은 백인’ 마이클 케인에게 패했다. 인도 언론들은 “5개 부문 후보에 오른 샤말란 감독의 ‘식스 센스’가 모두 탈락하자 인종차별적 편견”이라고 비난했다.

영국의 신문조차 “오스카상은 정치, 경제, 지정학적 이유로 오염돼 왔다”고 쏘았댔다. 외국어 영화상까지 스페인 알모도바르 감독의 ‘내 어머니의 모든 것’에게 돌아간 것까지 곱지 않게 보인다.

아카데미는 아직도 ‘유색인종은 영화에 명 프로듀서도 나오지 않았고 평생 영화에 공헌한 배우나 감독도 없다’고 생각한다.

‘소년은 울지 않는다’의 힐러리 스웡크에게 여우 주연상을 주어 육체적 성차별이나 정복에는 박수를 보내지만 인종차별에 대한 도전은 허락하지 않는다. 성이야 뒤바꿔 살 수도 있지만 피부색을 바꿀 수는 없다는, 아카데미의 지독한 백색 우월주의. 거기에 대고 “우리도 한번 외국어 영화상을 받았으면…”하고 바라는 사람들, 아니면 “아카데미 수상작이니 믿어도 돼”라고 말하는 사람이 왠지 불쌍해 보인다.

이대현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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