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동의보감] 롱다리와 숏다리

2000 04/05(수) 19:33

‘롱다리와 숏다리.’ 얼마전까지만 해도 방송이나 신세대사이에서 흔히 듣던 말이다. 롱다리는 키가 큰 사람을, 숏다리는 키가 작은 사람을 빗대어 부르는 말이다.

옛날에는 키가 크면 ‘싱겁다’며 좋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요즘의 신세대에게는 롱다리가 선망의 대상이다. 더욱이 프로농구 선수나 미스코리아, 슈퍼모델 등 롱다리들의 화려한 잔치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숏다리의 비애’는 더욱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롱다리 신드롬’이 키 작은 사람은 물론, 그리 작지 않은 사람까지도 주눅들게 하고 있다.

그래서 최근에는 이같은 추세에 부응하듯 키가 커지는 약, 키 커지는 기계 등도 호황을 누리고 있다. 옛날 같았으면 “그저 팔자려니”하고 포기했던 사람들이 “키가 커질 수만 있다면…”하는 심정으로 병원을 기웃거리고 각종 광고에 관심을 쏟고 있다.

한창 성장기에 있는 어린이 또는 청소년이 어른과 구분되는 가장 큰 특징은 ‘자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특성에도 불구하고 또래의 아이보다 신체의 발육이 늦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이처럼 발육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를 발육부진이라고 한다.

발육부진은 자칫 소홀히 여겨 치료를 하지 않거나 치료시기를 놓칠 경우 왜소증을 유발할 수 있으며 특히 겉으로 드러나는 신체상의 문제 외에 지능이나 사회성의 발달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증상에 따른 적절한 치료가 반드시 필요하다.

임상적으로 볼 때 발육부진의 유형은 잘 안먹는 아이와 음식물 섭취는 충분하나 신장과 체중이 증가하지 않는 아이 등 두 가지로 나타난다. 먼저 식욕부진으로 잘 안먹는 아이의 경우를 보면 흔히 ‘입이 짧다’는 표현처럼 산해진미의 음식물을 앞에 놓고서도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대개 이런 유형의 아이들은 음식물의 섭취량이 적을 뿐더러 식사시간이 돌아와도 식욕을 느끼지 못한다. 때문에 식사시간이 되면 으레 부모와 밥그릇을 놓고 한바탕 전쟁을 치르는데 이런 아이의 경우 편식에 따른 심각한 영양 불균형으로 기초 영양소 부족을 초래, 체내 저항력이 저하되고 이로 인해 감기를 비롯한 잔병치레가 계속 이어지는 악순환을 거듭하곤 한다.

발육부진의 또다른 유형으로 음식물을 잘 먹기는 하지만 신장과 체중이 증가하지 않는 아이가 있다. 이런 유형의 아이들은 영양소가 풍부한 음식물을 잘 먹기는 하나 활동량이 많아 에너지 소모가 과다한 경우다. 즉, 인체의 성장을 위해서는 활동에 필요한 일정량 이상의 영양소를 섭취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이다.

발육부진은 대개 이러한 유형으로 나타나는데 주된 원인은 한방에서 말하는 중초, 즉 소화기능의 약화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소화기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에 식욕을 느끼지 못하고 식욕부진으로 음식물 섭취가 줄어드는 만큼 발육이 부진함을 보이는 것이다.

따라서 발육부진 치료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소화기의 기능을 강화시켜 주는 것이 선결요건이다. 소화기의 기능이 약화돼 음식물의 흡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성장발육에 필요한 영양소가 부족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허약해진 기를 보충해주고 소화기를 튼튼하게 해주는 ‘보중익기탕’ 또는 ‘익기보혈탕’을 사용하는데 입에 쓴 탕약을 싫어하는 아이의 경우 환약으로 조제한 ‘익기건비환’ 등을 꾸준히 복용하면 치료에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흔히 아이들이 입맛을 잃었다거나 허약하다고 느낄 때 또는 발육이 부진하면 대부분의 부모들은 으레 녹용이 가미된 보약을 먹이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은데 이는 발육부진의 근본적인 치료방법은 아니다.

물론 일반적으로 허약한 아이들에게는 녹용이 가미된 보약은 효과가 있다. 그러나 소화기의 기능이 저하된 아이의 경우 약물의 소화흡수 능력조차 떨어질 수밖에 없어 녹용이 가미된 보약도 한갖 무용지물일 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약 복용에 앞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발육부진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 그에 따른 적절한 치료를 시행하는 것이다. 한창 성장시기에 있는 아이 또는 청소년이 성장치 못한다면 그에 따른 치료가 필요한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근본원인을 찾아 이를 제거해주는 적절한 치료를 해주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서보경·동서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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