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그릇 역사기행②] 무안(下)

2000 04/05(수) 19:40

일본 차도의 중흥조'센리큐'와 무안(務安)찻그릇

남녘 봄바람 냄새의 유혹에 따라 영상미술가 양승철선생과 함께 남도 찻그릇 역사기행에 나섰다. 옛 선인의 흔적인 사금파리 무덤을 찾아나선다는 것은 설레임과 그리움의 연속이다.

무안군이 한일 도자기 교류사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몽탄면 일대가 도자기를 만들 수 있는 양질의 ‘무안점토’가 무진장으로 매장되어 있어 이 점토층을 따라 15세기 초반부터 조선 분청사기 요지들이 수십 군데, 하나의 벨트를 형성하면서 찬란한 찻그릇 문화를 꽃피우게 된 것이다.

이번 찻그릇 역사기행에 남도 차향이 녹아 있는 목포 차인회의 허송재회장이 기꺼이 동행을 해주셔서 참으로 기뻤다. 무안군 몽탄면 대치리과 달산리, 해제면 유월리, 청계면 대봉리, 석진면 사천리, 현경면 동산리 등의 고도요지들을 답사하면서 봄 들꽃이 핀 사금파리 무덤에서 무수한 차 그릇의 파편을 통해 옛 사기 장인들과 무언의 대화를 하는 법열을 느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들 중요한 문화유적은 오늘날 우리에게 정작 버림을 받고 있어 연구자의 한사람으로 부끄러운 심정을 금할 길이 없다. 급속한 산업문명의 발전과 그에 따른 생활형태의 변천으로 이러한 귀중한 고도요지들이 날이 갈수록 파괴되고 잊혀져가고 있다는 것은 비극이다. 몽탄면 몽강리 영산강 하구엔 석산포란 아기자기한 포구가 지금도 있다.

이곳 산등성이를 따라 대숲 아래 점등이란 마을이 있는데 필자의 답사결과 500년전 분청사기와 300년전 옹기를 굽던 마을이었다. 지금도 대숲 사이로는 그릇을 구울 수 있는 점토가 대량 매장되어 있고 500년전의 무안 찻그릇의 파편과 옹기 파편이 무수히 흩어져 있다.

꿈여울 석산포구, 지나버린 영화는 간 곳 없다. 스산한 대숲 아래서 2백살도 더 들어 보이는 늙은 당산나무 한 그루가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듯 가마터에서 포구를 내려다보고 있다. 뒤쪽에는 300년 묵은 옛 꿈여울 도요의 가마가 그 영욕의 세월을 아는지 모르는지 허물어져 가고만 있다.

오늘날 무안군에는 몽평요의 정철수선생과 무안요의 김옥수선생이 옛 무안 찻그릇의 전통을 재현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무안 인근 붉은 들판은 봄의 전보와 함께 마늘과 양파가 한창 자라고 있다. 농심은 수입 마늘과 양파 때문에 한층 더 어둡고 늙어만 가고 있다.

일본 차도(茶道)의 중흥조 센리큐(千利休)는 16세기초 차의 그윽한 맛을 느껴 “초옥(草屋)의 작은 차실에서 차를 마시는 것이 최고의 맛과 멋”이라 하였다.

센리큐는 귀족들이 세속적으로 즐겨하던 화려한 서원차(書院茶) 보다는 좁은 공간, 찌그러져 가는 초당에서의 차도(茶道)를 통하여 차분하고 한적한 멋과 이상을 실현하고 나아가 진정한 삶의 의미와 깨달음을 얻고자 하였던 것이다.

차도에 사용하는 찻그릇도 화려한 중국 송나라의 청자 찻그릇이 아니라 조선의 남도 무안지방에서 구운 소박한 무안 찻그릇(분청사기)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무안 찻그릇은 미시마(三島)라 하여 중세 일본 차인에게 특별히 사랑을 받았으며 ‘중세 일본 차도사’에 빼놓을 수 없는 명기다.

현암 최정간·도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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