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총선바람이 채 소멸하기도 전에 정가에 남북정상회담의 태풍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분단과 6·25전쟁 이후 처음 이뤄지는 남북정상회담이 정치 경제 사회 등 우리 사회의 각 분야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올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당장 정가에서는 투표를 3일 앞두고 이뤄진 남북정상회담 개최 발표가 남북문제를 선거에 이용한 ‘신북풍’(新北風)이 아니냐는 공방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 발표가 선거결과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와는 별개의 문제다.


야당 ‘신북풍 모의설’제기

한나라당과 자민련 민국당 등 야당측은 정부·여당이 선거에 이용하기 위해 치밀하게 북한과의 물밑 접촉을 벌여 투표 직전에 극적으로 북한과 합의를 이끌어냈을 것이라면서 사전 ‘신북풍 모의설’을 제기하고 있다.

야당측은 또 그 과정에서 북한과 모종의 거래가 있었을 것이라며 북한에 무엇을 당근으로 제공했는지를 밝히라고 요구하고 있다. 한나라당 정형근의원은 “DJ정권이 그냥 총선을 치를 것으로 보지 않았다”면서 “이미 1월쯤 DJ정권이 총선전에 북한과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성사시키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말했다.

정의원은 4월10일 정부의 공식발표 하루전에 정부의 남북관련 중대발표 움직임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측은 “김대중 대통령의 베를린선언 이후 북한과의 접촉이 순조롭게 진행돼 결실을 맺은 것이며 총선전에 발표일을 맞추기 위해 북한과 거래를 한 것은 아니다”라고 펄쩍 뛰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그동안 사안의 성격상 접촉과정을 공개하기 힘들어서 밝히지는 못했다“면서 “그러나 박재규 통일부장관 등의 언급을 통해 북한과 모종의 접촉이 이뤄지고 있음을 시사해왔기 때문에 밀약설은 성립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여권 내부에서도 투표일까지 ‘3일’을 못참고 발표를 한 것은 정치적으로 오해를 살 여지가 충분하다며 발표를 밀어붙인 경위에 대해서 의구심을 표출하는 인사들이 적지 않다. 일부 인사들은 발표 전날 “발표시기가 좋지 않다”며 연기를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북한과 공동발표를 하기로 합의돼 있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취소가 불가능한 상황이기도 했다.

이와 함께 남한의 정치상황에 밝은 북한이 정상회담 발표가 남한의 총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을 알면서도 투표일 직전의 발표에 응해준 배경에 대해서도 해석이 분분하다.

북한은 앞으로 전개될 남북경협 등에서 남한당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해 DJ정부에 나름대로 성의를 다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선거 이후의 정국 상황이 좋지 않을 경우 여권 내부에서는 정상회담의 발표시기를 총선전으로 잡은 것을 놓고 책임론이 대두할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치·사회·경제분야에 큰 변화예상

어쨌든 투표 3일전 남북정상회담개최 발표로 총선은 뒷전으로 밀려났으며 올 상반기 동안 정국은 남북문제를 중심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당초 총선후 치열할 것으로 예상됐던 금권·관권·역관권 등 부정타락선거 공방도 조명을 받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3개의 야당이 연합해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제동을 걸고 나설 경우 상황은 상당히 복잡해질 가능성이 있다. 야당은 선거결과가 수습되는 대로 즉시 국회를 소집해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물고 늘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 이번 총선에서 여당의 성적이 좋지않을 경우에도 정상회담 개최까지는 상당한 정치적 시련이 예상된다.

하지만 남북정상회담 개최가 워낙 파괴력이 큰 사안이어서 정치권의 제동이나 정쟁적 접근이 힘을 받지 못할 가능성도 높다. 특히 미국·일본과 북한의 수교협상도 빨라질 것으로 보이며 정상회담 개최를 전후해 이뤄질 남북교류 및 경협확대 등 정치 사회 경제분야에서 걷잡을 수 없이 전개될 엄청난 변화는 국내정치에서 정쟁의 요소를 극소화할 개연성이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언급했듯이 ‘중동특수’에 비길 수 없을 정도의 ‘북한특수’가 현실화할지의 여부도 국내 정치상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바야흐로 정치권을 비롯한 우리 사회 전반이 남북정상회담 개최가 몰고올 태풍권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다.

이계성 정치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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