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넘어 '문화'로… 인터넷 게임의 세계

서울 J고교 1학년 K(16)군은 2주일전 부모님으로부터 ‘한달간 인터넷 접속 금지’라는 가혹한(?) 벌을 받았다. 반 친구들간에 벌이는 스타크래프트 경연대회를 앞두고 밤새 게임에만 몰두, 부모님과의 약속을 어겼기 때문이다.

인터넷 게임 마니아인 K군에게 ‘인터넷 금지’ 처분은 그 어느 것보다 견디기 힘든 벌이다. K군은 요즘 학교에 가거나 잠자리에 누우면 게임 장면이 눈에 아른거릴 정도다. K군은 아직 부모님에게는 말씀을 안드렸지만 장차 인터넷 게임을 전문으로 하는 프로게이머로 나설 계획이다.


대중문화 주류로 자리잡은 컴퓨터게임

인터넷의 빠른 보급과 함께 국내 인터넷 게임 시장이 폭발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 기세는 1970년대 말~1990년대 초의 컴퓨터 오락 게임 수준이 결코 아니다.

하나의 인터넷 게임에 수십만명의 커뮤니티(동호회)가 형성되고 게임 실력 자체가 대학 진학은 물론 하나의 직업으로까지 이어지는 시대가 되고 있다. 예전에 심심풀이 오락 정도로 인식됐던 컴퓨터 게임이 이제는 어엿한 대중문화의 한 주류로 당당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국내에 컴퓨터 게임이 처음 도입된 때는 1970년대 말. 당시만 해도 컴퓨터 게임은 아주 기초적인 아케이드 게임 수준을 넘지 못했다. 움직이는 목표물을 쏴서 떨어뜨리는 슈팅 게임의 일종인 ‘스페이스 인베이더’는 1970년대 말 중고생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이때부터 전자오락실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사업도 생겨났다. 그후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한차원 발전시킨 ‘갤러그’가 학생은 물론 직장인 사이에서 큰 히트를 쳤다. 1990년대 초에는 위에서 떨어지는 바를 쌓는 ‘테트리스’가 또한차례 전국을 강타했다. 이후 퍼즐, 폭탄, 당구, 고스톱, 야구와 축구 경기 같은 유사 컴퓨터 게임이 속속 등장했으나 대부분이 소위 말하는 ‘전자 오락’의 수준을 넘지 못했다.

그러다 1990년대 중반 탄생한 인터넷의 보급은 컴퓨터 게임 시장에 일대 혁신을 몰고 왔다. 이전까지의 컴퓨터 게임이 단순히 프로그램된 기계와 인간의 대결 구도였던 반면 인터넷 게임은 ‘인간 대 기계의 대결’, ‘인간 대 인간의 대결’, 더 나아가 ‘인간 상호간의 협력을 통해 기계와의 대결’이라는 다각적인 구도로 변화 되기에 이르렀다. 인터넷이라는 네트워크를 사이에 두고 무한한 가상의 무혈 전쟁이 펼쳐지는 것이다.


인터넷 보급, 컴퓨터 게임의 일대혁신

국내에 인터넷 게임이 본격적으로 펴지기 시작한 때는 대략 1995년부터. 그때부터 인터넷을 이용한 네트워크 위에 보다 치밀해진 스토리, 대용량의 그래픽 기법이 가미되면서 인터넷 게임 발전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당시 마니아들에게 가장 인기를 끌었던 게임은 블리자드사의 ‘디아블로’. 롤 플레잉 게임인 ‘디아블로’는 지금까지도 사실상 네트워크 게임의 효시로 일컬어지고 있다. 국내산으로는 그래픽 머드게임인 ‘바람의 아들’이 출시돼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

‘바람의 아들’은 멀티미디어를 이용한 그래픽 사운드를 채용, 등장 인물의 감정 변화가 문자로만 표시되던 ‘단군의 땅’, ‘쥬라기 공원’과 같은 PC통신의 머드게임을 제치고 인터넷 게임의 강자로 부상했다. 단순히 문자에 그치던 것이 이제는 화면과 사운드까지 가미된 3차원 입체 영상으로 발전한 것이다.

현재 인터넷 게임은 주인공의 캐릭터를 설정해 커뮤니티상에서 스토리를 전개해 나가는 롤 플레잉 게임과 ‘스타크래프트’, ‘삼국지’시리즈와 같이 전략을 세운 뒤 사람이나 컴퓨터를 상대로 대결을 벌이는 시뮬레이션 게임, 그리고 ‘인디아나존스’, ‘툼레이더’같이 스토리 전개를 따라가는 어드벤처 게임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새로운 직업으로 각광받는 게이머

인터넷 게임이 청소년과 직장인 사이에서 열풍처럼 번져감에 따라 인터넷 게이머가 새로운 직업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보통 ‘프로게이머’라고 불리는 이들은 인터넷 게임회사가 주최하는 대회에 출전, 상당한 상금과 명성을 얻고 있다.

현재 국내에는 배틀탑이 주관하는 한국인터넷게임리그(KIGL)와 골드뱅크의 코리아프로게임리그(KGL), 그리고 프로게임 리그 전문업체인 프로게이머 코리아오픈의 PKO트라이엄프리그 등 3개 리그가 있다. 이들은 분기별로 우승자를 가린 뒤 연말이나 연초 최총 챔피언 결정전을 치러 국내 최강자를 선발한다.

인터넷 게임 리그가 성행하면서 벤처기업과 일반 대기업도 광고 홍보와 이미지 제고를 위해 잇달아 프로팀을 창설하고 있다. 현재 데이콤, 삼성물산, 한국통신프리텔, 하나로통신, KTB 등 기존 대기업과 한글과컴퓨터, 인츠닷컴, 네띠앙, 배틀탑, 세화인터넷, 조이포유, 청오정보통신과 같은 인터넷 기업이 총 30개의 프로게임팀을 운영되고 있다.

이들 프로팀은 보통 2~5명의 프로게이머를 채용, 각종 리그에 대표로 출전시킨다. 프로게이머는 대개 1,200만원 정도의 연봉을 받고 있는데 출퇴근이 자유롭고 오직 인터넷 게임만 하면 된다. 국내 각 게임 최고수의 경우 약 2,400만원의 연봉을 받는다. 프로야구나 프로축구처럼 몇몇 프로게이머는 자신의 스케줄을 관리할 매니저까지 두고 있다.


게임전략 가르치는 사설학원도 등장

이처럼 인터넷 게임이 유행하면서 인터넷 게임 전략을 가르치는 사설학원까지 생겨나고 있다. 올해 2월초 ㈜게임라이트가 서울 방배역 부근에 ‘인터넷게임 아카데미’를 개설하자 무려 300명에 달하는 수강생이 몰려 관계자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대학에서도 컴퓨터게임 관련학과 개설이 붐을 이루고 있다. 숭의여전이 1998년 처음 컴퓨터관련 게임학과를 연데 이어 상명대, 호서대, 청강문화산업대 등이 관련 학과를 만들었다. 올해에도 대구미래대와 극동정보대 등 4개 대학이 추가로 컴퓨터학과를 신설할 예정이다.

지난 3월26일 KIGL 춘계리그에서 스타크래프트 여자부 우승을 차지한 김혜섭(19·여) 프로게이머는 “처음에는 단순히 재미가 있어 시작했는데 지금은 대학 진학도 포기할 정도로 이 직업에 흠뻑 빠져 있다”며 “나이가 들어도 게임 시나리오 작가나 베타 테스터 등 관련 직종으로 나갈수 있어 비전은 매우 밝다”고 말했다.

이제 인터넷 게임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다. N세대의 의사 소통 수단이자 그들만의 생활 양식, 더 나아가 21세기를 규정할 가장 뚜렷한 문화 형식의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송영웅 주간한국부기자


송영웅 주간한국부 heros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