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유죄, 발목잡힌 '고질라 빌'

예상대로 마이크로소프트(MS)가 ‘유죄판결’을 받았다. 미 연방지법의 토머스 펜필드 잭슨판사는 지난 4월3일 “MS가 ‘윈도’의 독점력을 행사, 경쟁을 가로막음으로써 독점금지법을 위반했다”고 판결했다.

1998년 5월 미 연방 및 19개 주정부가 소송을 제기한지 2년 남짓만에 MS는 ‘소프트웨어업계의 고질라’라는 명성에 걸맞는 ‘독점 꼬리표’를 달게 됐다. 어떤 벌을 받느냐가 남았을 뿐 외견상 MS의 운명은 기로에 선 것으로 보인다. 잭슨판사는 별도의 심리를 거쳐 최종제재를 결정할 예정이다.

그는 이 공판을 60일이내에 마무리짓기로 하고 잠정적으로 4월24일을 첫 기일로 정했다. 잭슨판사는 “경제를 왜곡시키거나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상급심으로 보내겠다”며 속전속결 의사를 피력했다. 독점금지법에 따르면 원고(정부), 피고(MS) 어느 쪽이나 사건을 항소심을 건너뛰어 대법원에 보내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초읽기에 몰린 MS는 떨고 있을까. 정부측이 요구하는 제재안을 보면 MS는 최대 수익원인 윈도의 소스코드를 경쟁업체에 공개하는 것에서부터 회사의 강제분할 까지 감수해야 할 형편이다.

빌 게이츠 회장은 그러나 “상식은 우리의 편이며 회사가 쪼개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어 항소의사를 분명하면서 “분사와 같은 극단적인 조치는 판결범위를 넘어선다. 우리가 반드시 승리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판결 이틀뒤 백악관에서 열린 신경제회의에 참석, 기술진보에 따른 미국경제의 낙관론을 펴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빌 게이츠 "반드시 승리한다" 여유

이런 자신감은 오랜 소송경험과 정치판 수읽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MS에게 반독점 소송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자사의 컴퓨터 운영체계(OS) 사용권을 빌미로 컴퓨터 제조업체에 소프트웨어 설치 제한을 강요한 혐의로 피소됐다가 1994년 화해를 통해 극적으로 빠져나온 경험이 있다.

최근에도 10억달러 이상을 요구하며 반독점 소송을 제기한 칼데라측과 1억5,000여만달러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MS는 또 대선을 앞둔 공화, 민주당에 각각 30만달러와 21만달러의 정치헌금을 제공, 이들에게 무시할 수 없는 존재다. 공화당의 대선주자 조지 부시 텍사스 주지사는 “가격담합과 독점가격 외에는 독점금지법을 적용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펴고 있어 그가 당선될 경우 MS의 입지는 달라질 수 있다. 유사 사례도 있다.

IBM의 경우 대법원까지 가는 13년간의 반독점 소송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인 1982년 끝냈다. 당시 소송은 “10여년간의 기술변화로 심리의 실익이 없다”는 이유로 각하됐으나 정치적인 입김이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MS가 그리 호락호락하게 당하지만은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MS의 위력은 막강하다. 잭슨판사의 판결문에서도 이를 읽을 수 있다.


소비자선택 중시하는 '미국정신' 표출

원고측의 26개 주장중 23개를 받아들인 판결은 조목조목 MS의 독점행위를 적시했다. 요지는 윈도에 웹브라우저인 ‘익스플로러’를 무료로 끼워 팔아 상거래를 제한하는 한편 세계시장의 95%를 점유하고 있는 윈도의 독점적인 지위를 이용해 웹브라우저 시장의 독점을 기도했다는 것이다.

잭슨판사는 물론 “기술우위에 기초한 독점은 합법”이라고 전제했다. 그러나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잠재적 경쟁자의 등장을 방해하는 것은 위법”이라고 판시했다. MS는 컴퓨터 제조업체로 하여금 윈도 프로그램의 변형이나 익스플로러 대신 경쟁제품 네스케이프의 탑재를 불허했다.

IBM조차 법정에서 “MS가 경쟁사 소프트웨어를 채택하지 말도록 협박했다”고 증언할 정도였다. 그 결과 MS는 1995년까지 시장을 선도했던 네스케이프를 잠재우고 윈도 98의 경우 개당 25만원을 받을 만큼 수익을 톡톡히 챙기게 됐다.

MS에 대한 이번 독점판결은 소송 결과를 떠나 의미있는 조치로 해석되고 있다. 미국 신경제의 주역으로 막대한 국부를 창출해온 MS의 단죄는 무분별한 확장보다는 공정경쟁, 그리고 소비자의 선택을 중시하는 미국 정신과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다.

“독점은 경쟁을 막아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합리적인 분배구조를 왜곡한다.자유경쟁이 시장경제를 발전시킨다”는 취지의 독점금지법은 미국 경제를 키워왔다.

미국은 1890년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 철도회사들과 결합해 석유수송망을 장악, 시장의 90%를 점유하자 이 법의 모태였던 ‘셔먼 독점금지법’을 제정, 스탠더드 오일을 34개로 쪼갰다. 미 경쟁당국은 지금의 MS처럼 시장점유율 보다는 철도회사와 결합(익스플로러 끼워팔기), 비 참여기업에 대해 차별적인 가격 적용 등을 문제삼았다. AT&T의 분할도 비슷한 사례에 속한다.


극적 화해 가능성도

MS의 반독점 소송은 항소심과 상고심 등 정상적인 절차를 따르면 2002년 6월께야 끝난다. 새로운 이슈가 불거지거나 특별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더 늦춰질 수도 있다. 일각에선 MS가 설사 분할되더라도 영향력이 약화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윈도의 기술을 보유하고 지금의 막강한 자본력이 유지되는 한 3~4개로 쪼개진 ‘베이비 MS’를 제압할 기업이 많지 않다는 점 때문이다. AT&T에서 쪼개진 회사의 주가가 상승했듯 MS의 주주들 역시 분할 자체로는 손해를 보지 않을 수 있다고 워싱턴타임스는 지적했다.

또 미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 최신호는 MS를 ‘난쟁이 소국에 붙잡힌 걸리버’로 묘사하며 소송의 영향력을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잇단 소송은 MS의 발목을 잡아 빛의 속도로 발전한다는 정보화 시대에 뒤쳐지게 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MS의 반독점 소송은 미국 내에서 그치는게 아니다.

유럽연합(EU)을 비롯, 각 국에서 소송을 제기했거나 할 움직임이다. MS의 주가는 소송 여파로 크게 흔들리고 있다. MS가 판결직전까지 익스플로러의 분리 등을 조건으로 법정밖 화해에 매달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시간끌기’가 MS에게 반드시 유리하지는 않은 셈이다. 정부측 역시 화해의 가능성은 열어놓고 있다.

정희경·국제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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