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서 완벽한 묘기를 펼쳐 관객의 우뢰와 같은 박수를 받을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여류 곡예사 김영희(37)씨는 동춘서커스단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보배다. 30년 경력의 그녀는 의자탑쌓기, 동물조련, 줄타기, 고난도 체조 등 서커스단 내에서 가장 많은 묘기를 펼치는 특급 곡예사다.

경남 김해에서 평범한 집안의 딸로 태어난 김씨가 서커스에 뛰어든 것은 7세때 동네에 온 유랑극단을 보면서. 당시 김씨는 호기심에 매일 공연장 주변을 맴돌았고 이를 본 극단 직원이 “잔심부름을 하면 공연을 보여주겠다”고 제의, 그때부터 청소 등 잡일을 도맡으며 극단을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극단과 유랑 생활 1년여간 김씨는 단하나의 기술도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무대 밑에 몰래 들어가 곡예사들을 따라하며 어깨 너머로 기술을 익혔다. “어느날 요가 묘기를 하는 팀이 밤새 떠나버려 극단이 난리가 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대신 하면 안될까요’라고 당돌하게 제의했고 서툴지만 혼자 익힌 기술로 무사히 공연을 마치면서 정식 곡예사의 길에 들어서게 됐습니다”라고 회상했다.

김씨에게는 초등학교 2학년생인 아들 상현이가 있다. 예전에는 함께 유랑 생활을 했으나 상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서 떨어져 살고 있다. 상현이는 아버지와 인천에서 살고 있다. 보통 한달에 4~5일 정도 밖에 가족을 만날 시간이 없다. “남편과 아들에게 따뜻한 밥 한그릇 손수 못해주는게 가슴이 아픕니다. 특히 관객 중에 상현이 또래의 아이가 보이면 속으로 눈물을 흘리곤 합니다.”

김씨에게 타박상과 골절, 인대 부상은 일상적인 일이다. 위험성이 높은 묘기를 하다 보면 이런 정도의 부상은 감수해야 한다. 김씨는 17세때 큰 그네를 타다가 목숨을 잃을 뻔했다. 실수로 떨어지면서 의식을 잃고는 며칠간을 혼수상태에 있다 깨어났다.

“가장 슬플 때는 관객이 없을 때입니다. 저희는 정말 목숨 걸고 묘기를 펼치는데 텅빈 객석을 보면 힘이 쭉 빠집니다. 관객이 묘기에 감동해 박수를 보낼 때는 쌓였던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쫙 풀립니다. 아마 그런 맛 때문에 아직도 무대를 떠나지 못하는 거지요.”

그녀의 방은 무대 바로 뒤에 있는 한평 남짓한 컨테이너 박스. 오래된 화장대, 다소 낡은 무대 의상, 벽에 걸린 가족사진, 먹다 남은 컵라면…. 두 다리를 뻗기도 힘들어 보이는 좁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그였지만 무대를 향한 그녀의 열정은 그 누구보다 뜨거워 보였다.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