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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 향한 정계개편 시동

‘선거는 뚜껑을 열어보아야 안다’는 속설은 역시 진리였다. 새천년의 첫 ‘한국의 선택’도 막상 뚜껑을 열자 여론조사 기관과 전문가의 전망을 비웃기라도 하듯 한나라당쪽으로 표가 쏟아졌다.

KBS MBC 등 주요 방송사가 실시한 출구조사에서는 민주당이 한나라당을 10여석 차이로 따돌리고 원내 제1당 자리를 차지할 것으로 예측됐으나 개표 결과는 오히려 민주당이 무려 18석이나 뒤지는 여소야대(與小野大) 현상으로 나타났다.

중앙선관위가 발표한 제16대 총선의 최종 개표 결과에 따르면 한나라당은 원내 과반수(137석)에서 4석 모자라는 133석(지역구 112석, 비례대표 21석)을 얻었고, 민주당은 115석(지역구 96석, 비례대표 19석), 자민련 17석(지역구 12석, 비례대표 5석), 민국당 2명(지역구 1석, 비례대표 1석), 한국신당 1석, 무소속 5석 등으로 집계됐다.

이같은 결과는 김대중 정권의 중간평가를 내세운 한나라당이 납세·병역·전과 공개를 통한 상대의 후보 검증 전략과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막판 ‘회심의 카드’에도 불구하고 여유있게 승리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민주당은 당초 한나라당과 10~15석 차이로 제2당이 될 경우 무승부, 5~10석은 선전, 5석 이내의 경우 승리 등으로 내부 기준을 정했던 것으로 알려져 18석 차이의 제2당은 명백한 패배라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의원뺏기싸움 불가피전망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14일 총선 결과와 관련한 기자회견에서 “이번 선거는 유권자 혁명을 이룩한 위대한 국민의 승리이자 지난 2년동안 김대중 정권의 거짓과 독주, 그리고 국정파탄에 대해 국민이 준엄한 심판을 내린 것”이라고 평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한나라당 역시 정국주도권 장악에 필요한 과반의석의 확보에 실패, 집권세력과의 치열한 ‘의원 뺏기 싸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전세는 일단 한나라당이 유리하다. 우선적으로 ‘무늬가 같은’ 민국당 의원 2명을 영입하고 ‘좌초’ 일보직전으로 몰린 자민련으로부터 2~3명의 의원만 끌어오면 과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민주당도 한나라당의 움직임을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선제 공격’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원내 제1당 달성에 실패한 민주당으로서는 정치·경제 개혁 완성, 남북 정상회담 추진 등 김대중 정권의 집권 후반기 개혁과제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소속과 야당 당선자 흡수에 나서야 할 형편이다.

호남지역에서 당선된 박주선, 이강래 후보 등 친여 무소속 4명을 흡수한 뒤 자민련과의 공조복원이 ‘최선의 카드’이지만 한나라당의 방해공작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따라서 한나라·민주 양당은 16대 국회 개원 전부터 물밑의 ‘의원뺏기 싸움’으로 대치국면을 형성하다가 정계개편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갈 가능성이 있다.

이와 관련,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민주당은 향후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적인 개최와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해 원내 장악력 제고가 시급한 과제”라면서 “우선 16대 국회의장 자리를 놓고 여야가 한바탕 큰 싸움을 치를 것”으로 예상했다.


의원뺏기싸움 불가피전망

정계개편의 와중에서 여당이 빼들 카드는 크게 2가지다. 선거법 위반이나 병역 비리 문제를 파고들어 정치권 전체를 사정정국으로 몰아가는 방법과 국가적 대사인 남북 정상회담을 명분으로 정치권을 설득하는 것이다.

폭발력이 큰 것은 선거법 위반 문제 처리. 이번 총선 운동과정에서 선거법 위반혐의로 선관위에 의해 고발·수사의뢰된 사건이 무려 214건에 달해 경우에 따라서는 무더기 재선거 사태가 예상되고 있다. 고발·수사의뢰된 사건이 114건이었던 15대 총선때는 당선자가운데 김허남 후보 등 7명이 당선 무효되거나 재판도중 자진사퇴, 재·보선을 실시했었다.

엄격히 적용하겠다고 밝혔다”면서 “따라서 당선무효 비율이 15대 때에 비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부터는 검찰이 기소하지 않는 선거사범에 대해 선관위가 직접 재판을 요구하는 재정신청이 가능해졌기 때문에 당선무효 사례가 더 많아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회창 총재가 “선거법 위반 문제를 국면전환용이나 야당탄압용으로 부당하게 이용하는 일이 있어서는 결코 안된다”고 쇄기를 박고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민주당 총재인 김대중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인위적인 정계개편 보다는 야당에 대한 설득과 사안별 공조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적지않다. 여권의 인위적인 정계개편은 곧바로 야당의 반발을 초래, 한나라당에 의한 역(逆)정계개편론이 제기되면서 ‘정국경색’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민주당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16대 대선구도까지 염두에 둔 이회창 총재측의 ‘정권 흔들기’ 전략. 이번 총선에서 공천후유증을 말끔히 털어버린 이회창 총재로서는 대권고지 선점을 위해 밖으로는 현 정권에 향해 ‘강공 드라이브’를 걸면서 ‘안방’을 굳건히 다지는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래서 영남권의 반DJ 정서를 파고들어 현 정권을 계속 공격하면서 자연스럽게 당권을 재장악하는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를 노리고 조기전당대회를 추진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한나라당권다툼, 대선정국부를수도

변수는 영남권의 민심이다. ‘영남(사람들)이 화났다’는 표현이 정확할 4·13 총선의 표 흐름으로 볼때 TK(대구·경북)의 차세대 주자인 강재섭 의원과 PK(부산·경남)의 강삼재 의원이 확실한 지역기반을 그대로 두지는 않을 것 같다.

두 사람이 반DJ로 똘똘 뭉친 영남 민심을 타고 비주류의 김덕룡 부총재와 손을 잡는다면 이회창 총재 진영으로도 무시하지 못할 세력이 된다. 영남을 잃고서는 차기 대권이 어렵다는 점을 이번 총선을 극명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결국 두 세력의 당권 다툼은 한나라당을 일찌감치 ‘대선 정국’으로 몰아가게 되고 김대중 정권은 ‘레임덕 현상’을 막기 위해 전력을 투구해야 할지 모른다. 여기에다 충청권에서 바람을 확인한 이인제 민주당 선대위원장이 여권에서 차세대 선두주자의 역할을 주장하고 나서면 정국은 더욱 복잡하게 돌아갈 전망이다.

총선후 정국경색을 점치게 하는 또다른 요인은 그동안 여야대치 국면에서 ‘캐스팅 보트’를 행사하면서 완충역할을 해온 자민련의 몰락이다. 55석의 의석으로 공동정권의 한 축을 구성했던 자민련은 교섭단체조차 구성할 수 없는 ‘난파’ 직전에 몰렸다.

그나마 일부 의원이 정계개편의 와중에서 제 살 길만을 찾아 흩어질 수도 있다. 40년간 정치무대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김종필(JP) 명예총재의 수습카드가 주목되지만 “충청권에서 JP는 이미 갔다”는 평가가 나오는 만큼 별다른 묘책을 내놓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자민련이 JP를 중심으로 뭉친다면 돌파구를 찾을 수도 있다. 한나라당의 133석과 민주당의 119석(친여 무소속의원 4명의 민주당 입당 경우) 사이에서 산술적으로 절묘한 줄타기가 가능하다. 또 DJ가 내각제 등을 매개로 JP에게 새로운 공조를 요청한다면 자민련이 제 역할을 찾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안팎의 정계은퇴 압력에 시달리게 될 JP로선 일단 민주당에 의한 흡수통합의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대여투쟁을 강화하는 것으로 돌파구를 모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진희 주간한국부 차장 jinhlee@hk.co.kr

입력시간 2000/04/20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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